누구나 한 번쯤 낙서를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 심심해서 낙서를 한다. 낙서의 내용은 그때그때 생각나는 내용을 즉흥적으로 적거나 그리는 것이 보통이다. 삶 속에서의 발견, 억제된 욕구의 분출, 사회를 향한 메시지... 다양한 낙서의 주체들만큼 그 내용도 다양하다. 낙서에는 우리 시대 사람들의 사상과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과연 2013년 우리 사회의 낙서는 어떤 메세지들을 담고 있을까. 

화장실, 은밀하면서도 공개적인 공간의 양면성

화장실은 가장 은밀한 공간이다. 특히 공중 화장실은 더욱 그렇다. 집이 아닌 공적 장소의 일부에서 신체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은밀하기에 개인적인 공간이다. 화장실 내부에서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며, 그 누구도 다른 이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회의 룰이다. 동시에 공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사용하고 나온 자리에 일면부지의 타인이 들어가서 일을 본다. 내가 행한 은밀하고 개인적인 행위의 흔적이 또한 남들에 의해 공유되는 것이다. 
 

"심심하냐? 화장실은 인터넷도 잘 안되고 답답하지?" ⓒ고함20.


화장실 내부의 낙서에는 이러한 양면적인 공간성이 묻어나고 있었다. 은밀한 공간성은 생리적 배설뿐만 아니라 낙서를 통한 정신적 배설로 이어졌다. 그 어느 곳보다 성과 욕망에 대한 낙서가 많은 곳이 화장실이었다. 
 

"대화 5분 무료" ⓒ고함20


단순히 배설의 욕구를 표출하는 것에서 나아가 화장실을 통해 신체적 욕망을 해소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양지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되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의 욕구가 많이 담겨 있었다. 

"내 나이가 25일때, 나는 호모임을 깨달았다. 남자가 좋다. 멋진 남자의 근육이 나를 흥분시킨다." ⓒ고함20



한편 공유의 공간이라는 특성은 낙서를 통한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개인적인 공간답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거대한 담론이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소한 삶의 담론이 녹아들어 있었다. 그 중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자’고 외치는 낙서였다. 뜬금없지만 강렬한 이 낙서 아래로 여러 이용자들의 댓글이 달리며 하나의 게시판을 형성했다. 

"LOVE YOUR SELF. I WANT TO BUT I CAN'T THEN LOVE OTHERS FIRST WE LOVE YOU. I LOVE YOU GUYS TOO" ⓒ고함20.



지하도, 지극한 일상의 자랑 무대

지하도의 낙서들 역시 지하도라는 공간이 담고 있는 특성을 담아내고 있었다. 지하도는 사람들이 적게나마 꾸준히 왕래하는 공간이며, 동시에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시선의 사각지대이기도 하다. 화장실과 마찬가지로 은밀하면서도 공개적인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지만, 노골적인 욕망의 표출이나 지속적인 피드백의 장은 될 수 없었다. 

대신 개인들의 소소한 자랑거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장 많은 것은 커플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하트와 함께 적은 것이었다. 자신들의 사랑에 대해 자랑하고, 스스로 확인받고 싶어하는 심리를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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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 낙서 외에도 ‘게임 레벨 몇을 찍었다’는 등 아주 소소한 자랑거리를 적어놓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자신의 불안하고 복잡한 심리를 짧게 표출한 경우들도 있었다. 이 경우 역시 자신의 심리 상태를 타인과 공유하고자 하는 낙서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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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에 낙서하면 세상이 본다

담벼락과 대로변의 낙서들은 공간 특유의 개방성 탓인지 사회 공동체 차원의 담론적 이야기들이 많았다. 특히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특정 대중 정치인에 대한 비방이 많았다. 명동의 어느 한 담벼락에는 보수 정치인들을 공격하는 낙서 바로 옆에 진보 정치인들을 공격하는 낙서가 유사한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 싸잡아 비난하는 낙서도 있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친일ㅇ 매국놈"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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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익명 게시판의 원형

여러 장소에 남겨진 낙서들은 대체로 그 공간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화장실과 같이 다소 은밀한 공간에서는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욕망이 표출되는 낙서들이 눈에 띄었다. 한편 지하도와 담벼락과 같은 곳에는 타인 혹은 사회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화장실과 같은 은밀한 공간에서도 낙서는 어느 정도 타인을 향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낙서들은 그 소재와 표현에서 온라인상의 익명 게시판의 글들과 유사한 성격을 띠었다.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는 소위 ‘뻘글’부터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비난까지. 낙서들을 한데 모으자 익명 게시판을 현실로 옮겨놓은 듯 했다. 몇몇 낙서는 실제 게시판처럼 댓글이 달리며 소통의 장을 이루기도 했다. 

최근 낙서를 보기 힘들어진 것에는 온라인 게시판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과거 낙서가 담당하던 익명의 배설 창구가 온라인의 익명 게시판으로 옮겨가면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낙서를 할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화장실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만들어낸 변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