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광고도 VIP 석도 없는 영화제가 있다. 광고가 있다면 영화제 한편에서 노들 장애인 야학 교육 공간 마련을 위한 후원주점과 홈리스 사무실 마련을 위한 컵밥·과일 판매, 그리고 쌍용차 해고자 H-20000 프로젝트 광고가 전부다. 영화상영 중간에 재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리기도 한다. 유일하게 소음이 허락된 영화관. 올해로 18번째를 맞이하는 서울인권영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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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에 따라 영화를 상영하려면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추천을 받거나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이에 서울인권영화제는 표현의 자유를 위배하는 ‘사전검열’이라고 판단하고 1996년부터 무료로 영화를 상영해왔다.

이러한 서울인권영화제가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 건 지난 2008년, 촛불집회에 나갔다는 이유로 영화관 대관을 받지 못하면서부터다. 영화제는 빈곤한 사람도, 장애인도, 여성도, 성 소수자도, 청소년도, ‘누구나’ 인권영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곳에서 ‘사람은 누구나 VI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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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청계광장 한가운데서 서울인권영화제가 열렸다. 인권운동 사랑방에서 주최하던 서울인권영화제는 올해 최초 분리 독립되어 진행됐다. 지나가는 사람이 유난히 많던 청계광장은 개막식이 시작되자 금세 좌석이 차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발을 멈추고 무대 위 ‘인권영화제’에 주목했다.

김정아씨와 박경석씨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은 아프리카 공연예술 그룹 ‘포케니’와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씨가 축하공연을 맡았다. 지현씨는 “돈을 가진 사람, 자원을 가진 사람이 독점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열린 서울인권영화제”라고 말하며 소수자로서 여성들이 살고있는 일상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기존 영화제에선 보기 힘든 ‘수화통역’과 개막식의 모든 대화를 보여주는 ‘문자통역’이 무대 위 화면에 나타났다. 실시간으로 나오는 자막에 오타가 나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또 영화제 기간 내내 활동 보조인을 배치하기도 한다. 아직은 서울인권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서울인권영화제는 기업후원과 정부후원을 받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무대 뒤 배경은 후원자들의 이름으로 가득했다. 서울인권영화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은진, 레고, 일숙씨는 더 많은 이들이 후원에 참여해 뒤에 사람들의 이름을 더 많이 넣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개막식 선언을 시작으로 개막작 ‘村, 금가이’의 상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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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를 슬로건으로 한 서울인권영화제는 23일부터 26일까지 낮 12시에서 저녁 10시까지 26편의 인권영화를 상영한다. 23일 ‘이주_반성폭력의 날’을 시작으로 24일 ‘노동_소수자의 날’, 25일 ‘국가폭력_반개발의 날’의 순서로 이어지며 26일 ‘장애_표현의 자유의 날’ 폐막작 <언론의 자유를 팝니다>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4일간의 영화제를 마치고 나면 29일부터 31일까지 인권중심 사람에서 앙코르 상영회를 개최하고 지역, 공동체, 투쟁현장, 학교에서 공동체 상영회를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