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나온다. 장소는 산부인과. 여주인공은 낙태를 하려고 한다. 주변은 온통 여자뿐이다. 그녀와 그녀를 위로해 주러 온 친구들 그리고 다른 손님들까지. 모두 여자뿐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분명 섹스는 남자와 했을 텐데 그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가고, 여자들만 남아 있는가. 이 의문에서 소셜스터디의 네 번째 의제가 시작된다. 

 
먼저, 플레이어 소개 해주세요.
 
슬아(이하 ‘슬’): 안녕하세요. 저희는 소셜스터디 처음 기획할 때부터 함께 고민을 시작한 멤버들이구요. 개인적으로는 평소 여성의 몸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관련 책자 모으는 게 취미랍니다. 그리고 한국여성민우회라는 여성단체 여성건강팀 활동가이슈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영지(이하 ‘영’) : 네, 저는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있는 김영지라고 합니다.


‘당신의 섹스는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섹스는 안녕하십니까?’는 어떤 의제인가요?
 
영: 제목에서 드러나는 그대로 ‘섹스’에 대해 이야기 할 거에요. 더 제대로 이야기하자면 그것과 연관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할 거죠. 그간 이야기 되지 않았던 것들을요.

: 6·7월에 걸쳐 진행하는 일정을 계획하고 있어요. 우선 ‘공유되지 않은 불안, 낙태’라는 소제목이 있어요. 워낙 오픈해서 얘기하기엔 섹스 자체가 개인적인 건데 그걸 뭘 얘기하나 하는 생각들이 강하다 보니까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불안인 낙태에 대한 얘기도 꺼리게 된 거죠. 사회적으로 공유된다고 하더라도 중절을 선택했던 여성들의 이유, 맥락들은 삭제된 채 ‘낙태’를 했다는 행위 자체만을 문제 삼아 비난하고, 처벌하고 있잖아요. 어떤 남자들은 본인이 동의하지 않았다며 이별을 막기 위한 협박의 도구로 ‘낙태죄’를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구요. 

한국은 낙태가 불법이니 누구나 원치 않은 임신상황에 놓일 수 있는 일이지만 상상하지 않는 거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낙태를 경험했지만 이야기 하지 못하고 있단 생각도 들고요. 사회적으로 제일 문제적 존재라고 여겨지는 게 결혼하지 않은 채 섹스 하는 우리 세대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던져진 질문이 ‘당신의 섹스는 안녕하십니까?’라는 것이고요.

‘당신의 섹스는 안녕하십니까?’에서 다루게 될 내용은요?
 
슬: 시작은 가볍게 주제에 대해 영화나 영상에서 다뤄진 내용을 살펴보려고 해요. 본격적으로는 불안한 섹스로 인한 임신-낙태, 그 가운데서의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 낙태의 상황에서의 존재/무존재, 여성운동에서의 ‘낙태죄’에 대한 운동들, 법과 제도 속의 낙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요. 마지막은 ‘다 커서 받는 성교육’? 이런 느낌으로 불안하지 않은 섹스를 하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을 함께 제대로 알아보자는 거죠. 여튼, 섹스-임신-출산 혹인 낙태가 분절적이지 않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어요. 
 
: 사실 단편적이고 개인적이고 보이는 일로 치부하기 쉽지만 낙태는 굉장히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들과 밀접하기도 해요. 여성의 낙태행위에서 여성의 몸이란 다양한 힘들이 각축을 벌이는 곳으로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 관점에서 다뤄볼거에요. 깊진 않더라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공부해보려구요. 그러다 보면 다음 고민 지점들도 자연스레 생겨나겠지요. 

낙태와 관련된 규정들은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요. 사실 낙태법에 대한 논쟁자체도 아직 한국사회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죠. 해외를 보면 엄청난 논쟁과 대립을 거친 뒤 큰 폭의 법 재개정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반해서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해외의 법과 제도 부분도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었어요. 
 



의제의 제목이 굉장히 직설적인 것 같아요. 이렇게 지은 이유가 있나요?
 
영: 섹스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상 직설적이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여기에다 “안녕하십니까”를 덧붙인 것은 이게 일상적인 행위잖아요. 그래서 일상적으로 안녕하냐고 묻는 차원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안에서 불안이라는 것도 이야기 할 수도 있도록. 이게 사실은 굉장히 담백하게 뽑은 거예요. 

슬: 사실은 더 ‘불안’하게 만들려고 했어요. 불안을 직시해야 휘말리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하하 (생각하셨던 다른 타이틀은?) 처음에는 ‘섹스하고 계십니까?’였어요. 그래서 그냥 (섹스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던 거였는데, 단순히 ‘섹스하고 계십니까?’라고 묻다보니까 나의 모든 성적행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로 보여서 제목을 바꾸기로 했죠. 오히려 안부를 묻는 식으로? 혹은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넣어볼까 아니면 영화제목 따서 섹스 후에 오는 것들 이라는 식으로 가볼까 얘기 했었죠.


낙태에서 섹스로. 비(非)일상에서 일상으로. 

낙태라는 여성의 담론에서 섹스라는 남녀공통의 담론으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요?
 
슬: 그게 연결되지 않는 게 굉장히 신기한 거잖아요. 인공수정이 아닌 이상 임신의 상태에 도달하게 하는 섹스는 남녀 간의 이뤄져야 되는 상황인데 ‘낙태’한 여성은 있지만 ‘낙태’한 남성은 없단 말이에요. 분명 시작은 같이 했는데 마지막에는 사라지는 거죠. 여성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긴 하지만, 그 상황을 함께 직면해야죠. 왜 사라지는 걸까요? 혹은 나는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러다 본인이 불리한 상황이 오면 과거 여자친구나 와이프가 “낙태를 했다”라는 사실을 걸고넘어지면서 협박을 하고요. 아 갑자기 화가나네요. 물론 싸우자는 건 아니에요. 일부 이상한 사람들일 거라고 믿어요. 암튼, 낙태를 결정하는데 남성의 동의를 얻어야만 수술이 가능한 부분은 없어져야 하지만 그 상황을 정확이 인지하고, 외면하지 않고, 잘 겪어내야 하는 책임의 주체에서 남성이 빠지는 것에 대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함께 한 섹스로 오는 것들이니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동의하는 분들도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간 낙태가 여성들만의 이야기가 된 이유는 뭘까요?
 
슬: 우선은 여성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계적으로 보는 거죠. 여성의 몸 안에서 일어나니까 ‘그건 여성문제야. 너희 문제지.’라고 보는 시선이 있는 거죠. 사실, 사회에서 낙태. 임신중절은 있지만, 임신 중절한 여성은 없어요. 드러낼 수는 없는 이야기죠. 형법에선 여성과 의사를 처벌해야 된다고 명시되어있으니까요. 인구억제정책으로 낙태를 했던 여성들도 이야기하기를 꺼려해요. 그래서 낙태를 사회적 이슈로 가지고 나오는 것도 한참 걸린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낙태고발정국이었던 2010년 이때 의사들이 동료 의사를 고발하면서 주목받긴 했지만요. 이제는 더 나아가서 낙태가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일부 운이 나쁜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 우리 모두의 문제로 들고 나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어요. 저희 소셜스터디 멤버 중에 남자분이 그 지점을 얘기하기로 했답니다. 


 

남성플레이어는 ‘여성의 문제’를 어떻게 ‘모두의 문제’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영: 플레이어들끼리 회의를 했을 때 제일 재밌었던 부분이 그거예요. 딱 섹스를 했을 때 첫 느낌. 여성은 불안하다. 남성들은 즐겁다. 이게 먼저 나오거든요. 시선이 되게 다르잖아요. 이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 남성플레이어의 입으로 얘기해주는 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도 많이 공감했거든요. 인식의 차이를 짚어줄 수 있지 않을까. 남성 스스로가 남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무래도 다른 남성들에게 더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도 들구요.  

앞서 말한 ‘남성의 낙태’란 어떤 의미 인가요?
 
슬: 제가 있는 단체에서 임신중절 경험이 있는 여성들을 인터뷰 했었는데, 그때에 늘 등장했던 게 상대 파트너가 어떻게 행동했느냐는 점이예요. 그 자리에 동행하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지만 챙겨준다고 챙겨줘도 그게 만족스럽지 않죠. 나의 기분, 나의 상태를 회복시켜주는 데 사실 한계가 있잖아요. 이번에 소셜스터디에서는 그것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입장으로서, 여성을 케어해주고 기분을 맞춰주는 남성 말고 자신이 생각했을 때 낙태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좀 돌아보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 플레이어 멤버로는 남성이 한 명밖에 없지만 사실 스터디 자리에 더 많은 남성분들이 참여해서 얘기했으면 좋겠다는 게 저희의 바람 중 하나예요. 그래서 ‘잘 얘기해야 될 텐데, 잘못 말해서 비난받지 않아야 될 텐데’라는 불안감은 내려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다른 방식으로의 의제확장에는 어떤 것이 계획되고 있는지?
 
슬: 이번 소셜스티디에서는 낙태는 있지만 낙태한 여성은 없는 그 상황을, 그 여성들을 드러낼 수 있길 바라요. 제가 민우회에서 활동하면서 만났던 여러 사례들을 통해서, 소셜스터디 멤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죠. 그리고 또 섹스와 임신중절이 별개의 것이 아니다. ‘굉장히’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체감도의 보편성을 이끌어 내고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남성의 문제로 확장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어요.

영: 또 소위 ‘불건전한‘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식의 확장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 여성들을 드러내는 게 선행되어야 될 것 같아요.) 

슬: 아직 사회적으로 여성들의 경험의로 ‘낙태’를 바라보고 해석하고 지속적으로 얘기되고 있진 않지만 그간 여성단체에서 을 드러내는 작업들을 계속해서 시도했던 부분이 있거든요. 최근에는 민우회에서 인터뷰 했던 내용들을 모아서 『있잖아… 나, 낙태했어』라는 책을 내기도 했구요. 그래서 이제는 여성운동의 의제로만 가지고 가고 있었던 부분을 좀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룹으로 가지고 오고 싶어요


                                            있잖아...나, 낙태했어(출처 : 여성민우회)

영: 저희의 방점은 약간 그 다음단계에 두고 있다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경험을 드러내는 방식은 기존의 운동에서 잘 하고 있는 게 있고, 그거랑 약간 좀 다르게, 남성을 포함시키고 일상적인 어투로 더 많이 이야기 하려고 하고 있어요. 2,30대 일반 청년들이 들었을 때 그냥 편안한 언어로, 예를 들면 ‘섹스는 안녕하십니까’이란 (일상적으로) 던져질 수 있는 질문들 같이. 

 낙태한 여성을 드러내기 위한 활동이 있었지만, 공론화가 많이 안 된 것 같아요. 여성과 남성의 주제로 공론화 시키려고 할 때는 전 단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 같은데, 의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요. 이 의제와 관련한 넥스트 엑팅으로 어떤 것을 계획하고 있나요?

슬: 뭔가 액션으로 연결되기 전에 우선은 더 많은 화자를 끌어들여야 할 것 같아요. 우선은 더 많은 남성을 말하는 화자로 추가시키는 것이 관건이겠죠. 그리고 비슷한 또래들이 주제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려면 미디어 부분에서도 같이 이야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주 짧은 영상을 제작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어요. 직접 만드는게 어렵다면 이 주제로 만들어지고 있는 영상물을 함께 보는 영화상영회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영: 처음부터 저희가 너무 많은 걸 정하고 가면 또 다른 분들의 말랑말랑한 생각을 담아낼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많이 열어두고 있어요. 그리고 더 많은 화자가 생김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부터가 시작이겠죠. 많은 이야기가 삭제되지 않은 채 보편과 공감으로서 인식된 것. 그래야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 될 준비가 않을까요?
 
슬: 뭐가 됐든, 그게 나의 문제로 왔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그게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로 왔을 때 나의 대답. 각자의 대답을 갖게 하는 것. 정리해 볼 수 있게 하는 것들이 넥스트 엑팅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