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일 월요일, 대학로 뮤디스홀에서 20대의, 20대에 의한, 20대를 위한 <20‘s 정책 Choice>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연극패 맥놀이의 연극 공연, 20대가 디자인한 정책 소개, 박원순 님과의 이야기 시간 이렇게 3가지 꼭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날씨는 썩 좋지 않았지만 반짝이는 눈을 한 20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뮤디스홀 객석을 채웠다.


 첫 꼭지였던 연극 <20대로 산다는 것>은 현재 20대가 겪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무대로 올려 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식상하게 느껴지진 않을까 싶은 내용이었지만, 알면서도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함을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구직자가 된 한 20대가 회사 면접을 하는 것이 기본 얼개였다. 연극의 한 편에는 표정도 평가항목이니 기분 나빠도 웃으라고 윽박지르며, 상사의 말에 복종하고 불평하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회사가 있다. 또 다른 한 편에는 언제나 열심히 살지 않았던 적이 없는 우리의 자화상 같은 한 20대가 있다. 결코 쉽게 웃어넘길 수 없는 아픈 이야기는 취직 앞에 늘 약자일 수밖에 없는 가련한 20대의 공감을 얻어내기 충분했다.


 

 다음 순서는 오늘 행사의 핵심인 <20‘s 정책 Choice> 시간이었다. 20's party는 지난 1월부터 FGI(Focus Group Interview)를 통해 공통적으로 나온 의견을 정리하여 총 10가지의 정책으로 구체화시켰다. 20’s party 측은 20대가 88만원 세대라는 이름 안에 갇히기 훨씬 전부터 나왔어야 할 정책이라고 밝히며, 20대인 나와 친구들이 비로소 직접 목소리를 냈기에 변화는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0년 20대가 말하는 정책 요구’란 이름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정책은 다음과 같다.


① 입학이 쉬운 국립 명문대
② 반값 대학 등록금 실현, 취업후학자금 상환특별법(ICL) 전면수정
③ 반값 대학생 기숙사 신축
④ 단 하루를 일해도 고용보험과 산재 보험 적용(알바노동인권 보호)
⑤ 군장병을 위한 복지카드
⑥ 차별금지법 재개정을 통한 이력서 차별금지 시행
⑦ 백수탈출 지원금 지급(실업부조, 취업장려 수당)
⑧ 대기업 부럽지 않은 중소기업 사원복지
⑨ 청년 소기업 창업 지원기금 조성
⑩ 2030 비정규직 50% 축소
⑪ 투표시간 연장을 위한 공직 선거법 개정


 정책 수립 과정에 20대들이 직접 참여했던 덕분일까. 공감 가는 정책이 많았다. 20대만의 기발함이 살아 있는 정책도 있었다. 터무니없이 올라가도 규제할 만한 방안이 없는 암울한 현실에서 반값 등록금을 외치고, 이력서 차별금지를 강력히 주장하며, 알바 노동 인권도 마땅히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일 수 있는 건- 이 정책을 생각해 낸 이들이 바로 20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이 자리에서 발표한 정책에 모두 호평을 하지는 않았다. 몇몇 참가자들은 이 정책들이 정말 실현이 가능한지, 나아가 현재 이슈가 되는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과연 반영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인지 의구심을 품으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한빛(숙명여대 영문과) 양은 “‘입학이 쉬운 국립 명문대 만들기’가 결국은 수많은 서울대를 양산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혁신적인 입학제도로 뽑는 것이 아니라 자격시험과 내신으로 선발하는 구조라면 커트라인이 높아져 입학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에 20's party 측은 공고하게 서열화 되어 있는 지금의 사립대가 아닌 프랑스의 파리대학 제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답했다. 답변을 듣고 한빛 양은 다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도 사립대학 힘이 센데 공립 명문대를 지향하는 현재의 정책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보는지’ 질문했다. 그러나 20‘s party의 똑 부러지는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이후에도 두어 가지의 질문이 더 있었는데 주최 측에서 명확한 답을 해 주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사회 디자이너라는 말을 만들어 내고, 지금까지 시민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 온 박원순 변호사와의 담소가 행사의 말미를 장식했다. 강연과 시민사회 활동으로 꾸준히 대학생들과의 교류를 이어 온 그는 재치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편안한 이야기 시간을 주도했다. ‘20대! 세상을 디자인하라!’라는 부제 아래 이루어진 토크에서 박원순 변호사는 ‘꿈을 잃어버려 무엇인지 기억이 안 난다’고 토로하는 20대들에게 더 원대한 꿈을 가지라고 권했다. 그는 ‘꿈꿀 게 없어서 대기업 취직, 공무원 시험에만 신경을 쓰는 것인가.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그래서 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꿈을 꾸면 안 되나?’ 하고 반문했다. 그는 20대가 당장은 눈앞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새로운 길을 개척해 그쪽에도 시선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대학생이 잠자면 나라가 잠듭니다.”라는 그의 말은 자리에 참석한 20대들의 뇌리에 박히는 따끔한 메시지였다.



 <20’s 정책 Choice> 행사는 20대가 주도해 기획하고 판을 벌여 다른 20대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었다. 정치적 무관심의 대명사로 일컬어졌던 20대가 앞장 서 유권자로서의 권리 행사에 나섰다는 것도 특이할 만한 사항이었다. ‘뭐가 바뀌겠어?’라고 체념했던 모습만을 기억한다면 과거의 이미지를 당장 지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삶의 질이 어떤지 가늠해 보고 어떤 정책을 펴야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지 고민하는 20대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요구하는 10가지 정책이 모든 20대의 입맛을 맞출 수 있는 완벽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시작은 반이란 말도 있지 않던가. 이제 20대들은 꼼꼼한 분석도, 실현 가능성을 따져 보는 것도 무시하고 선심 쓰듯 20대에 대한 공약을 던지는 기성 정치인들을 그저 바라보고 있지만은 않는다. 오늘 있었던 <20‘s 정책 Choice>이 20대가 어느새 현명하고 적극적인 유권자로 급부상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자리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