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에서 근무 하는 친구가 요즘 계속 울상이다. 바로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엘리자벳때문이다. 녹음과 녹화를 위해 최첨단 장비를 숨기고 들어오는 극성 팬들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단다. 엘리자벳은 옥주현, 김소현, 박효신, 전동석, 박은태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며 예매 오픈 첫 주부터 연일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최고의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그룹 JYJ의 멤버인 김준수다. 배역 이름인 '토드''시아준수'의 합성어인 '샤토드'로 불리며, ‘전 공연 매진이라는 지난 시즌의 인기에 힘입어 이번 시즌에도 합류한 그는 또 한 번의 신화를 쓰고 있다.

얼마 전 예술의 전당 사이트가 처음으로 다운됐다. 이 날은 엘리자벳 3차 티켓이 오픈하는 날이었고, 수많은 김준수의 팬들이 한꺼번에 접속하는 바람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 최근 인터파크 사이트 역시 엘리자벳 티켓이 오픈되는 날이면 해당 링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몇 분 뒤 사이트에 재접속해보면 역시나 김준수가 출연하는 일자만 전부 매진되어 있다. 김준수는 뮤지컬계에 입성한 그 순간부터 매진 왕으로 등극했다. 뮤지컬 모차르트를 시작으로 천국의 눈물’, ‘엘리자벳 시즌1’, 그리고 이번 시즌까지 출연했다하면 일단 매진이다. 같은 배역에 더블 캐스팅이 된 정통 뮤지컬 배우는 단순히 티켓 판매 수로만 비교당하며, ‘가수 출신보다 못한 배우라는 불명예 수식어까지 얻어야 했다.

김준수가 출연하는 공연은 '신의 속도'와 같은 민첩성과 기동력이 아니면 예매가 불가능하다. 전국에 퍼진 팬들이 곳곳에서 피씨방을 빌려 단체로 예매한다는 얘기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기획사나 제작사의 초대권을 얻은 매우 운좋은 사람(물론 이조차도 대부분 팬들의 차지다)이 아니라면 정상적인 루트로는 쉽게 예매에 성공할 수 없다. 때문에 팬이 아닌 일반 관객들은 김준수의 공연을 즐기고 평가할 기회를 갖는 것 자체를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물론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애정 자체를 비난할 순 없지만, 최소한의 매너는 지킬 필요가 있다.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비평이라도 나오면 팬들의 갖은 악플과 신상 털기까지 감수해야 하니 제대로 된 평가 또한 힘들다. 어느 순간 평론가들은 김준수에 대해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마치 평가하길 포기한 듯이.

뮤지컬 배우로서 김준수에게 붙은 여러 가지 수식어는 대개 덮어 높고 예매하는 그의 팬들 덕분에 탄생했다. 인기 좋은 배우의 엄청난 티켓파워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준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배우 조승우가 단연 독보적이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헤드윅은 그 캐릭터가 조승우 자체와 동일시되어 표현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조승우와 김준수 팬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바로 엄정한 평가를 내릴 줄 아느냐.

조승우에겐 매진신화도 있지만, 뼈아픈 흥행참패의 기록 또한 존재한다. 특히 뮤지컬 닥터 지바고는 조승우 스스로 에둘러 인정했을 정도로 작품성에서 많은 지탄을 받았다. 그를 추종하던 팬들 역시 따끔한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반면 김준수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그에게 쏟아지는 평가는 언제나 호평뿐이다. 조그마한 '지적질'도 용납되지 않으며, 마치 교주처럼 추앙받는다. 아무리 유명하고 경력이 오래된 배우도 항상 완벽하다는 평을 받지 못하는데 비해, 김준수에게는 늘 찬사가 쏟아진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뮤지컬을 관람할 수 있는 사람이 '선택받은 소수의 팬'인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뮤지컬 제작사들은 김준수의 티켓파워를 이용하고 있다. 뮤지컬 천국의 눈물이 단적인 예다. 이를 제작한 설 앤 컴퍼니설도윤 대표는 한 강연에서 김준수를 캐스팅한 것은 일종의 보험이었다는 말을 했다. 작품의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김준수가 나오면 매진이라는 걸 제작자 스스로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4층으로 이루어진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 그 가장 구석진 곳까지 매진된 김준수의 공연 예매 상황에, 예술의 전당에서는 김준수 팬 대처요령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친구의 우스갯소리가 어쩐지 달갑지 않다. 휴식과 여유의 상징이 되어야 할 예술공연장이 비상사태에 놓인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김준수가 뮤지컬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올바르게 성장하는 데에는 김준수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팬들의 매너 또한 중요하다. 배우의 위엄은 배우 자신과 팬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엄청난 팬심으로 만들어진 회당 개런티 3000만원이라는 꼬리표는 전혀 위엄 있지 않다. 오히려 위험하다. 실력보다 돈으로 평가되는 배우는 결코 롱런할 수 없다. 김준수의 실력평가에 대한 논란이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팬들의 자제가 필요하다. 김준수가 뮤지컬 배우로서 승승장구하길 원한다면 더 이상의 팬심은 필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