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국정원 국조특위 정상화와 국정원 개혁 등을 요구하며 장외투쟁을 나선 지 10일 째, 민주당 소속 의원의 대다수가 장외에서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여전히 문재인 의원은 바깥에서 지켜보는 모양새다. 문재인 의원이 이렇게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이면에는 자칫 새누리당의 ‘대선 불복’ 프레임 공격에서 집중포화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짙게 배어난다.

물론 신중한 행동은 필요하다. 국정조사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급박한 시기엔 조그마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법이다. 그러나 지나친 신중함으로 문재인 의원은 움직여야 할 때를 놓친 것은 아닐까. 최대의 힘으로 날카롭게 찔러야 할 ‘때’를 말이다.

국정조사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국정원 사건의 핵심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경찰청장의 증인채택마저 꼬투리를 잡으며 뻐팅기던 상황.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선언한 것은 새누리당의 이런 배째라식 태도를 당해 낼 재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장내의 힘으로는 부족하니 장외에서 국민의 힘을 보태고자 했던 것이다.

장외투쟁을 선언한 민주당이 국정원 개혁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등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 ⓒ 연합뉴스


장외투쟁을 벌이면서 원세훈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청장의 증인채택은 이뤄졌지만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권영세 주중 대사의 증인 채택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김무성·권영세는 관권선거가 국정원 선에서만 이뤄진 것인지, 새누리당의 핵심 인사들과도 커넥션이 있었던 것인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인물들이다.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민주당은 상당히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했고, 게다가 이와 관련한 방대한 양의 녹취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문재인의 신중함은 독이 됐다. 김무성·권영세를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주장을 스스로 약화시킨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권선거가 사실로 확정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대선불복을 외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그런데 대선 불복으로 비춰질 것을 염려해 선뜻 장외투쟁에 나서지 못한다는 것은 김무성·권영세의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입장과는 모순되는 태도다.

또한 문재인 의원이 이렇게 신중한 태도를 취하지 않아도 이미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동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대선불복 프레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즉, 문재인 의원이 가만히 있다 해서 공격을 하지 않을 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질을 흐리고 물타기를 하는 것이 새누리당의 목적이라면 그 프레임에 맞게 장단을 쳐주는 것이 아니라 더 세게 정면으로 돌파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국정원 사건은 여야의 정파 싸움이 아니다. 민주와 반민주 세력의 싸움이다. 가치관의 싸움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근본을 흔든 ‘엄연한 잘못’이 존재하는 싸움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잘못을 숨기고 덮으려 부단히 애를 쓴다. 새누리당의 물 흐리기가 심해질수록 이들은 더 큰 국민적 비판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의원은 더 당당하고 과감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물 흐리기 전략에 맞춰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략을 깰 수 있을 만큼의 동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현 상황은 뒤로 물러나 수를 세고 있을 때가 아니다. 문재인 의원의 과감한 행동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