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학사모를 얹는 정관계, 경제계 인사들이 줄을 이었다. 각종 학위수여식마다 정치인, 기업가가 학사모를 쓰고 꽃다발을 품에 안는 광경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들은 ‘지역 경제와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지방의 인재육성 및 교육인프라 구축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므로’ ‘활발한 입법과 정책 활동을 펼쳐’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는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7조에 따르면 “명예박사 학위는 학술 발전에 특별한 공헌을 하였거나, 인류 문화 향상에 특별히 공적이 있는 사람에 대하여 수여”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명예박사 학위는 관행적으로 학문적 업적이 아닌 사회적 명성을 가진 이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그 주체는 정관계, 경제계 인사 등 특권층에 편중되어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실세로서 주목받는 정관계 인사들은 물론, 최근에는 경제계 인사들의 수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박사학위 과정이 있는 대학원을 둔 대학에서는 대학원위원회, 대학원운영위원회 등의 심의를 통해 학위를 수여한다. 그러나 명예박사 학위 수여에 대한 내규는 모호할 뿐, 선정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 자체가 없다. 객관적인 수치나 업적에 의거하지 않고 포괄적인 내용만을 언급하기 때문에 본래의 취지와는 무관하게 다른 목적으로 규정을 이용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94학년도 이후 명예박사 학위 수여 권한이 대학의 자율에 맡겨진 이후로 국내 대학들의 연간 명예박사 학위 수여 수치는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 초까지 총 4404개의 명예박사 학위가 발행되었으며, 국내 대학들이 1년에 수여하는 명예박사 학위는 평균 180여개에 달한다.

▲ 유명인사는 자신의 권력을 확장하고 대학은 기부금을 받는 '윈-윈 게임'
캠퍼스에 건물이 한 동 올라간 뒤면 명예박사 학위가 영수증처럼 따라간다

명예박사 학위수여를 둘러싼 유명인사와 대학 간의 이해관계는 적절하게 맞아떨어진다. 정치인은 자신의 프로필 학력 란에 명예박사 학위라는 한 줄을 집어넣으면서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동문을 확장해 영향력이 뻗는 범위를 넓히려는 것이다. 또한 명예박사라는 학위는 그 자체로 정치적 능력과 경륜을 인정받는 절차적 상징이기도 하다.

반대로 대학 측은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대가로 건물을 신축하거나 연구시설을 조성하는 데에 실리적 도움을 받는다. 예컨대 지난 2009년 전북대는 강재섭 전 국회의원이 전북대 부설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에 152억 원의 예산을 배정해주었다는 공로로 수의학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경제계 인사들의 경우 역시 기업이 대학에 기부금, 연구지원금을 내는 시기와 해당 기업의 인사가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시기가 맞물리는 경우가 많다. 고려대학교의 백주년기념 삼성관 건립 후 이건희 회장이, 연세대학교의 대우관 건립 후 김우중 전 회장이 각각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것도 그 중 하나다.

이러한 이해를 고려해보았을 때 명예박사 학위 수여는 ‘대학과 인사 간의 거래’로 읽힐 수 있다. 명예박사 수여를 통해 유명인사는 자신의 권력을 한층 더 확장해나가고, 대학은 지역 내 위상을 강화하거나 경제적 지원을 받아 실속을 챙기는 것이다. 경제적 지원을 매개로 한 명예박사 학위 거래는 자체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재정난에 시달리거나 새로운 건물을 짓는 대학 측이 기부금을 받기 위해 학위 발행을 남발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실제로 일부 지방 사립대에서 병폐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 일반 연구자는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치열하게 노력하는데
명예박사는 구체적인 기준도 없이 남발... 형평성에 문제점

또한 학문적 관련성을 고려하지 않은 끼워 맞추기식 학위 수여 방식으로 인해, 자신의 학문 영역에서 연구에 매진 중인 다른 일반 연구자들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일반인이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대학원 과정을 이수한 뒤 학위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학문연구에 일정한 능력을 갖춘 이들이 일정한 시간 동한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박사학위를 얻어낼 수 있는데 반해, 명예박사 학위의 경우 수여자가 어떠한 사회적 업적을 이루었는지를 구체적으로 검증하지 않고, 무관한 전공의 학위를 수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대학의 발전을 위한 경제적인 기여에 대해 ‘학위 수여’를 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부적절한 처사다. 거칠게 말해 돈을 통해 사회적 상징자본인 학벌 권력을 사고파는 행위인 것이다. 대학사회가 학문의 전당으로 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객관적인 원칙을 세워 학위를 수여해야 한다. 시류에 편승하여, 경제적 기금을 조성했거나 정치적 실세인 유명인사에게 자의적으로 학위 수여를 남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미국 - 학문과 권력의 유착을 우려해 명예 박사학위 수여 전면금지
독일, 프랑스 - 까다로운 관리로 명예박사의 의미를 최대한 살린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이 설립한 버지니아대는 명예 박사학위 수여 제도를 전면 금지했다. 정치‧경제적인 권력과 대학의 관계가 유착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미국 MIT, 코넬 역시 명예박사 학위 수여를 전면 금지하고 있으며 기타 대학들은 학위 수여 절차를 세분화시켜 대상자에 대한 세밀한 검증을 우선시한다.

이는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독일의 본 대학의 경우 명예박사 학위를 준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총 4차례에 불과할 정도이다. 프랑스 또한 해당 분야의 석학으로 인정받는 전문가에게만 학위를 수여하며, 활발한 학술활동으로 업적을 세웠다고 평가되는 학자에 한해 선정한다.

국내에서도 명예박사 선정에 신중을 기하는 대학이 있다. 바로 포스텍이다. 노벨 화학상을 받은 록펠러대 로데릭 매키넌 교수에게 2006년에 이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이후로 현재까지 총 3명의 인물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당시 총장이었던 백성기 씨는 “연구 성과뿐만 아니라 치열한 도전정신, 인류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리더십 등을 갖춘 인물을 선정하려고 한다”며 “인물 선정이 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 되고 포스텍의 소중한 전통이 될 수 있도록”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명예박사 학위가 학문적 영역에서 능력을 인정하는 인증 학위로 기능할 때에만 순수성과 권위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