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벼룩시장이 열렸다. ‘길고양이를 위한 벼룩시장’이다. 행사의 주최 모임인 ‘길고양이 기금 모임’은 지난 2012년 황인숙, 선현경, 지영 세 명의 발기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들은 적어도 길고양이를 주운 사람들이 금전적인 부담 때문에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까운 지원 체계’ 마련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3년 1월부터 기금을 모으기 시작했으며 현재 길고양이 기금에서 3차 구조 지원금이 지급되었다.

홍대 마음산책에서 길고양이를 위한 벼룩시장이 열렸다. 모인 금액의 전부가 길고양이 구조에 사용될 예정이다. ⓒ고함20


지난 9월 28일, 길고양이를 위한 벼룩시장이 열린 홍대 ‘마음산책’ 앞은 벼룩시장의 물품을 구경하는 이들로 붐볐다. 이들은 저마다 신중하게 물품을 살펴보며 생각보다 훨씬 싼 가격에 놀라기도 했다. 실제 원가 20만 원 짜리 재킷이 2,500원에 팔리는 등 저렴한 가격이 대부분이었다. 구경 온 이들을 위한 고양이 엽서와 증정품도 한쪽에 마련되어 있었다.

벼룩시장의 풍경을 개인 카메라로 꼼꼼히 담고 있던 임종원씨는 얼마 전 키우던 고양이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임씨의 핸드폰 배경화면에는 그의 고양이 사진이 그대로였다. 그는 하얀 털이 잔뜩 묻은 고양이 방석을 품에 끌어안은 채 말했다. “오니까 마음이 아프죠. 제 고양이가 흰 고양이잖아요. 방금 고양이 방석을 샀는데 이게 우리 고양이가 쓴 방석 같아요. 흰 털이 남아있으니까. 생각나서 그냥 사봤어요.”

임종원씨가 끌어안고 있던 보라색 방석 사진 (오른쪽 사진) ⓒ고함20

행사장에는 모임 회원들 외에 블로그와 SNS를 통해 온 사람들, 그리고 길을 지나다 들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각각의 장소에서 모였지만 ‘길고양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았다.

‘길고양이 개체 수가 증가하면서 지역사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보호를 반대하는 이들과 캣맘들의 갈등이 깊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돌보는 것은 비위생적인 길고양이 확산에 일조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길고양이 돌보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http://goham20.com/2974 고함20 - 블루프린트)

행사에 참여한 모임 회원 김문정씨는 현재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캣 맘이다. 고양이를 처음 주우면서 길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녀에게 불거지고 있는 길고양이 돌보는 문제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길고양이 문제는 항상 있어왔다고 말한다. “공원에서 고양이들한테 밥을 줄 때, 사람들이 안지나다니는데도 주지 말라고 하면서 무조건 싫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피해를 줘서가 아니라. 특히 나이 많으신 분들이나 근처의 집주인 같은 사람들이 싫어하죠.”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이 그녀를 길고양이 기금 마련 모임으로 이끈 셈이다.

벼룩시장 물품을 남자친구와 함께 꼼꼼히 구경 중이던 강수영씨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블로그 지인의 홍보로 후원이나마 조금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얼떨결에 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진 않는다고 했다. “길고양이들도 생명이고 한 번 밥을 주기 시작하면, 누군가가 나한테 밥을 준다고 생각을 해서 먹이활동을 소홀히 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이사를 하거나 집을 며칠 비우는 등 제가 매일 줄 수 없을 때에도 고양이들은 저만 기다리고 있을 거 아니에요. 밥 주기를 시작하려면 그것에 대한 최소한 마음가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어 벼룩시장에 온 소감을 묻는 말에 “좀 더 물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조금 들어요. 또 그런 밥 주시는 분들, 활동하시는 분들 보면 고양이 생각만 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이랑) 서로 안 맞을 때가 있는데, 이런 기회가 늘어나서 그런 부분은 서로 해소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길고양이를 위한 벼룩시장에서 판매된 물품들이다. 물품은 모두 회원들과 일반 사람들에 의해 기부되었다. ⓒ고함20

길고양이에서 마련된 기금은 오로지 ‘길고양이’를 위해서만 쓰인다. “구조된 길고양이가 심하게 다쳐서 큰 수술을 요한다고 하면 금액 자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특히 이러한 고양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벼룩시장 모임도 하게 되는 거죠. 기존 NGO 단체들 쪽에선 보통 운영비로 8~90%를 사용하는데 저희는 각자가 각출해서 운영비를 충당해요.” 회원 김정기씨는 길고양이 기금 모임이 이러한 기존 단체의 운영형태에 회의감을 느껴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특별히 다음 계획이 정해져 있진 않다고 말했다. “모임 자체가 활성화되는 과정 중에 있으니까 방향성을 잡는 중이에요. 고정적으로 바뀌지 않는 부분은 기부금에서 운영비가 쓰이지 않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일호프 같은 걸 해볼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아무래도 날씨가 추워지니까 외부행사 자체는 하지 않으려고요.”

길고양이 기금 모임은 어떤 거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하지 않는다. 이들이 NGO 단체가 아닌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의 작은 모임을 지향하는 것은 ‘지속적’인 모임이 되길 바라서였다. 지금껏 ‘발기인의 추천’으로 회원을 받았던 방식에서 ‘회원 추천’으로 회원을 받도록 바꾼 것도 기금 모임이 좀 더 ‘지속적’으로 운영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회원 김정기씨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