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별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만 만나자’는 다섯 글자가 달콤함을 주고받던 카톡 창을 차갑게 만들었다. 이러한 비참함을 맛보지 않으려고 지난날 고백 한 번 안 해오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 그 순간이 잊힐 리 없다. 얼굴은 온통 눈물과 콧물로 범벅되었으면서도 속으로 다짐했다. ‘딱 한 번만 붙잡자’고. 이 시간만 버티면 지난 사랑의 떠올림도 곧 사그라질 거라는 흔한 진리 따위는 5명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고 난 뒤에야 되새긴 말이었다.
이별 후 시간이 견디기 힘들어 닥치는 대로 친구들을 만났다. 혼자 나를 내버려 두기엔 곧 닥쳐올 공허함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공연을 보러 가자는 친구의 말에 흔쾌히 알겠다고 답한 것도 그 모든 것을 떠올리지 않기 위한 최대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친구와 밥을 먹고 애써 꾹꾹 눌러왔던 이별 이야기도 넌지시 했다. 입 밖으로 내뱉지 않기엔 마음은 온통 이별로 가득 차 있었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었던 셈이다.
쌀쌀한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장 안은 사람들의 열기로 들끓었다. 처음 온 '락페'에 대한 낯섦과 어제의 이별 후유증 때문인지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뉴스에서만 보던 공연장 실신녀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 길로 친구한테 귀띔한 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왔다.
멍하니 뒤에서 공연장을 보고, 또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매번 노란색 알림배너로 가득했던 핸드폰 사이드바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깨끗하기만 했다. 그 때 이별 소식을 뒤늦게 전해 받은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고, 나는 또 한 번 닥쳐오는 현실감에 엉엉 울며 공연장 밖을 나섰다. 날씨가 얼마나 추웠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갔던 것 같다. 또 한바탕 울고 난 뒤 갈 곳이 없어진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다시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그대의 익숙함이 항상 미쳐버릴 듯이 난 힘들어. 당신은 내 귓가에 소근대길 멈추지 않지만’
그때 흘러나온 노래는 추스렸던 마음을 또 한 번 흔들었다. 좋아서 뛰는 사람들 사이로 눈물만 뚝뚝 흘린 채 서 있었다. 그동안 되새기지 않았던 가사들이 마음에 훅하고 끼쳐왔다.
언제부턴가 할 말이 없어지고, 지루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외면하려고 짐짓 모른척했지만 마음은 숨길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서운한 울음들이 튀어나왔던 날들이 잦아졌다. 그 모습에 상대방은 또 질려 하고, 그러한 날들이 계속될 뿐이었다. 사랑은 이미 끝났는데 내가 붙잡으면 붙잡을 수 있다고 그렇게 상상하고 진단했던 시간이 ‘그만 만나자’는 다섯 마디 말 앞에 무너져 내렸다.
‘사랑했다는 말 난 싫은데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 하네. 난 나를 지켰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동안의 진심 어디엔가 버려둔 채'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것은 사라지는 것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붙잡을 수 없는 마음이 허공에 흩어져 사라져갔다. 그 과정은 당신과 내가 함께했던 아름다운 시간을 버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의 연애와 또 한 번의 이별을 겪었다. 그렇게 나는 이별에 익숙해져 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아픈 것은 당시 그 사람과의 연애가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을지라도, 이별은 ‘이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익숙함이 힘들어지는 때, 그때가 다시 온다 하더라도 나는 같은 마음으로 이 노래를 들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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