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음표에서는 ‘한 명의 20대로서 살아가는’ 고함20 기자들의 삶 속에, 한순간 운명처럼 다가온 노래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당신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지독했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될 만큼 더운 여름이였다. 아스팔트 도로 위로 신기루는 아찔하게 흔들거렸다. 하지만 날씨 불평할 새도 없이 통풍도 안되는 옷을 입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온몸에서는 땀이 물줄기처럼 흘러내렸다. 가끔씩 허락되는 담배를 필 수 있는 시간에나 날씨만큼 뜨거운 담배를 물고 더운 연기를 내뱉으면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마저도 빠르게 줄어 가는 담배를 원망하다가, 나는 또 개미처럼 일을 했다. 눈깜빡할 사이에 도로 위 아지랑이가 수그러드는 저녁이 되면 스피커에서 노래가 나왔다.

"계룡산 정기 품고 일어선 우리, 계백의 살신 보국 이어나갈"

그렇게 이등병 짬찌끄레기의 하루 일과는 영내에 울려퍼지는 군가를 들으며 마무리됐다. 미처 사회인의 티를 벗지 못한 7월의 어느 날, 그때의 나는 내가 군대에 있어야하는 이유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나 가는 것이기 때문' 이라는 보편적인 이유도, '나라를 지켜야하는' 사명감의 이유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국가 특수적 이유도, '군인의 아들이기에 면제란 있을수 없는 일'이라는 가족적 이유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군인인 내 처지가 슬펐다. '이등병 길들이기'를 하는 선임들이 미웠고, 종종 내게 건네지는 주변의 호의도 의심을 했으며, 바깥에서 자유롭게 지내고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면 화가 났다. 그렇게 내 주변은 온갖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선임이 큰 인심이라도 쓰는 양, "형이 전화시켜줄게. 전화하러 가자"며 날 공중전화로 끌고 갔다. 입대전 인턴을 할 때 좋아하던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취업을 했다고 했다. 대기업이란다. 상투적인 대화가 오갔고, 청소시간이 되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중대의 쓰레기통들을 모아서 하나하나 분리수거를 했다. 냉동과 컵라면, 과자냄새, 음료수 냄새가 뒤섞여 내 코를 찌를 때 갑자기 욱했다. 불과 몇 개월전 같은 회사를 다니던 누나는 연봉 몇천을 받는 우아한 커리어 우먼인데, 나는 월 십만 원도 채 못받고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이등병이라는 생각에 치졸하게도 화가 났고, 괜히 쓰레기통을 발로차며 애꿎은 화풀이를 했다.

청소가 끝나니 아까 그 선임이 또 대단한 선심을 쓰는 양 사이버 지식정보방(이하 '싸지방')을 가자고 했다. '내 중학교 후배인 주제에, 학교다닐 땐 나한테 말도 못걸었을 놈이‥' 속으로만 꿍얼거리며 싸지방에 가서 싸이월드를 했다. 내 홈피 방명록에 쓰인 친구들의 글에 답을 하고, 친구들의 미니홈피에 즐거워 보이는 사진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 파도를 탔다.

갑자기 옆에 있던 선임이 "야, 너 음악이나 들어라"라며 이어폰을 던져줬다. "이병 OOO. 감사합니다." 이등병에게는 이어폰이 허락되지 않는 부대였다. 이어폰을 처음 본 사람처럼 신기한 눈으로 이어폰을 한동안 쳐다봤다. 이내 떨리는 마음으로 본체에 연결했다. 내 홈피로 서둘러 돌아갔다. 예쁘장한 친구의 일상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Harp song'은 감각적인 비트와 우수한 멜로디로 유명한 센티멘털 시너리의 첫 정규앨범에 포함된 음악이다. 

 
'따닥' 
내 홈피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단순한 효과음이 너무나 청명하다. 'Harp song - Sentimental Scenery' 라는 문구가 홈피의 배경음악 리스트에서 왼쪽으로 흐른다. 순간 들려오는 익숙한 기계음이 반복된다. 베이스가 둥둥둥둥. 다음에 나오는 하프소리가 내 마음을 긁는다. 그리고는 가수의 목소리. 짧은 가사가 끝나고 흐르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부대 안에서 허락된 노래는 군가와 인기가요뿐이였다. 여자아이돌 그룹의 몸짓은 황홀했지만, 청각을 위한 노래가 아닌 시각을 위한 노래였다. 오롯이 나의 취향만을 고려해 담겨있던 나의 홈피의 배경음악이 몇 개월 만에 내 귀에 울려퍼지던 순간, 그 순간만큼은 날 둘러싸고 있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긍정했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까마득히 남은 전역날까지의 군생활도 왠지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에게 당연했던 것들이 군대 안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내 주변에 언제나 존재할 것이라 생각해서 방종했던 부모님의 사랑, 친구들과의 시간, 애인과의 만남, 그리고 언제나 귀에 들리던 음악들이 그랬다. 치열하고 치졸했던 이등병 시절, 'Harp song'을 처음들었던 순간부터 나에게 너무나 당연했지만 사실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씩 재발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