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과거연재/청춘의 음표 (10)

[청춘의 음표] 도망치고 싶던 시기에 위안이 되어준, 이상은의 '새'

청춘의 음표에서는 ‘한 명의 20대로서 살아가는’ 고함20 기자들의 삶 속에, 한순간 운명처럼 다가온 노래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당신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한 곡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노래가 감정의 기억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곡은 오랜만에 듣더라도 당시 상황을 재현해내는 힘을 가진다. 나의 경우, ‘american idiot’을 들으면 중학생 시절 불안했던 학원 버스 안의 감정이 느껴지고 ‘똑똑똑’을 들으면 역에서 집까지 경쾌하게 걸었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2012년도 초였다. 새내기 시절이 끝났고 입대 전 마지막 학기였다. 모든 게 어수선했고 하루하루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대학에 들어와 해내고 싶었던 목표들은 사그라져 갔고 수중에 ..

[청춘의 음표] 김윤아의 'Girl Talk', 내겐 너무 따뜻한 냉소

김윤아의 2집이 나온 것은 2004년, 내가 중3 때의 일이었다. ‘팬이야’가 수록되어 있었던 자우림 4집을 접하게 된 이후로 그들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던 나는, 그녀의 두 번째 솔로 앨범이 발매되었다는 소식에 곧바로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던 CD점으로 향했다. 자우림의 곡들도 그렇게 밝지는 않았지만, 김윤아의 앨범의 표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음악들이 내뿜었던 약간은 음산한 기운에 뭔가 매혹되었던 기억이 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라는 이해가 갈 듯 말 듯한 어떤 의미에서는 철학적이기도 한 제목의 트랙으로 시작하는 이 앨범에서 김윤아는 사랑이라는 로맨틱해야 할 단어를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라고 이야기하며, 대신 ‘증오는 나의 힘’에서 ‘증오는 증오를 낳고’ 라는 언어를 ..

[청춘의 음표] 1tym 'one love', 날카로운 첫 팬질의 추억

2000년 11월, 이미 늦가을을 넘어 초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꼈던 어느 날의 초저녁. 나는 동네 속셈학원 수업을 어영부영 마치고 얼른 튀어나와 셔틀버스 맨 구석 자리에 잽싸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버스기사 아저씨가 얼른 센스있게 히터를 틀어주길 바라며 시린 손으로 가방 속에 있던 워크맨을 꺼냈다. 그리고 또다시 냉큼 가방 속을 뒤져, 곱게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음악 테이프 하나를 조심스레 집어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워크맨 이어폰을 귀에 꼽고 다니던 같은 반 짝꿍이 소개해 준 가수의 앨범이었다. 이름이 '치범'이라 '납치범'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던 그 친구는, 언행이 꿈떠서 평소에는 하는 짓이 그다지 미덥지 못했지만, 자신이 즐겨듣는 노래를 추천해 줄 때만큼은 언제나 믿음직스러웠다. 테이프 자켓을..

[청춘의 음표] 에픽하이 'my ghetto', 애증이라는 이름의 서울

청춘의 음표에서는 ‘한 명의 20대로서 살아가는’ 고함20 기자들의 삶 속에, 한순간 운명처럼 다가온 노래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당신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도시는 나에게 특별하지 않았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이 나왔을때만 해도 그랬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아파트'가 있는 중소도시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서울은 동경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친근한 장소에 가까웠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지하철을 타고 공연을 보러 다녔고, 나는 대도시를 별장이라도 있는 양 들락거렸다. 10대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는 '서울특별시'를 스스로와 가깝게 여겼던 치기일 것이다. 청소년기를 보내온 도시를 떠나려고 할 때 서울은 비로소 목적이 되었다. 가족들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고 어떻게든 지금보다 많은 자유..

[청춘의 음표] 전람회 '기억의 습작', 우리 기억을 흘려보내며

청춘의 음표에서는 ‘한 명의 20대로서 살아가는’ 고함20 기자들의 삶 속에, 한순간 운명처럼 다가온 노래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당신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1년, 2년, 3년, 그리고 4년. 가끔 상상하곤 했다. 네가 없는 나를. 너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내 생활을. 어떨까. 웃기게도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이미 내 깊숙이 파고든 너와 헤어진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는 마음, 그리고 동시에 해방이라는 마음이. 절대로 내가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3년 전 날카로운 상처를 주고받은 이후로 오히려 우린 서로에게 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언뜻언뜻 보이는 불협화음은 당장 표면적으로 불거지는 문제는 아니었기에, 쉽게 덮어버리곤 했다. 그런 내가 헤어..

[청춘의 음표] 언니네이발관 ‘아름다운 것’, 첫 이별은 썼다

청춘의 음표에서는 ‘한 명의 20대로서 살아가는’ 고함20 기자들의 삶 속에, 한순간 운명처럼 다가온 노래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당신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처음 이별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만 만나자’는 다섯 글자가 달콤함을 주고받던 카톡 창을 차갑게 만들었다. 이러한 비참함을 맛보지 않으려고 지난날 고백 한 번 안 해오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 그 순간이 잊힐 리 없다. 얼굴은 온통 눈물과 콧물로 범벅되었으면서도 속으로 다짐했다. ‘딱 한 번만 붙잡자’고. 이 시간만 버티면 지난 사랑의 떠올림도 곧 사그라질 거라는 흔한 진리 따위는 5명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고 난 뒤에야 되새긴 말이었다. 이별 후 시간이 견디기 힘들어 닥치는 대로 친구들을 만났다. 혼자 나를 내버려 두기엔 ..

[청춘의 음표] Sentimental Scenery 'Harp song', 너무나 당연했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

청춘의 음표에서는 ‘한 명의 20대로서 살아가는’ 고함20 기자들의 삶 속에, 한순간 운명처럼 다가온 노래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당신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지독했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될 만큼 더운 여름이였다. 아스팔트 도로 위로 신기루는 아찔하게 흔들거렸다. 하지만 날씨 불평할 새도 없이 통풍도 안되는 옷을 입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온몸에서는 땀이 물줄기처럼 흘러내렸다. 가끔씩 허락되는 담배를 필 수 있는 시간에나 날씨만큼 뜨거운 담배를 물고 더운 연기를 내뱉으면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마저도 빠르게 줄어 가는 담배를 원망하다가, 나는 또 개미처럼 일을 했다. 눈깜빡할 사이에 도로 위 아지랑이가 수그러드는 저녁이 되면 스피커에서 노래가 나왔다. "계룡산 정기 품고 일어선 우리, 계백의 살..

[청춘의 음표] 브로콜리너마저 '울지 마', 세상에 지친 사람들을 향한 위로

청춘의 음표에서는 ‘한 명의 20대로서 살아가는’ 고함20 기자들의 삶 속에, 한순간 운명처럼 다가온 노래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당신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네 언니 입술 부르튼 것 좀 봐. 스트레스가 심했나 봐.” 아빠의 말은 동생을 향하고 있었지만 걱정스런 눈빛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2010년 겨울, 나는 그 해의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있었다. 나는 세 번째 수능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성적표는 나오지 않았지만 가채점 결과로, 무엇보다도 직감적으로 ‘망했다’는 걸 느꼈다. 죽음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루 종일 잠을 자도 입술의 물집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밤, 잠이 오지 않아 텔레비전을 켰다. 마침 TV에서는 브로콜리 너마저라는 인디밴드가 2집 앨범 졸업의 신곡..

[청춘의 음표] 015B '이젠 안녕', 다음 무대의 조명이 켜질 때까지

청춘의 음표에서는 ‘한 명의 20대로서 살아가는’ 고함20 기자들의 삶 속에, 한순간 운명처럼 다가온 노래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당신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무대 조명이 모두 꺼졌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이내 관객들 박수소리가 들렸다. 고된 길을 달려와 공연을 마무리한 후배들은 인사로 관객들의 박수소리에 화답했다. 여름이 끝날 무렵부터 가을의 초입까지, 이 무대를 만들려고 애를 썼다. 그랬던 무대가, 끝이 났다. 그날 있을 공연의 연출자로 무대에 올랐어야 했던 나는 멀찌감치 객석에 앉아, 까맣게 소거되는 대형 스크린을 그저 쳐다보고만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며칠 전, 윗선으로부터 무대에 설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다소 유별나고 주제넘은 연출자였고, 그 점이 윗분들의 심기를 몇 번이고 건드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