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 이미 늦가을을 넘어 초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꼈던 어느 날의 초저녁. 나는 동네 속셈학원 수업을 어영부영 마치고 얼른 튀어나와 셔틀버스 맨 구석 자리에 잽싸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버스기사 아저씨가 얼른 센스있게 히터를 틀어주길 바라며 시린 손으로 가방 속에 있던 워크맨을 꺼냈다.

그리고 또다시 냉큼 가방 속을 뒤져, 곱게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음악 테이프 하나를 조심스레 집어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워크맨 이어폰을 귀에 꼽고 다니던 같은 반 짝꿍이 소개해 준 가수의 앨범이었다. 이름이 '치범'이라 '납치범'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던 그 친구는, 언행이 꿈떠서 평소에는 하는 짓이 그다지 미덥지 못했지만, 자신이 즐겨듣는 노래를 추천해 줄 때만큼은 언제나 믿음직스러웠다. 테이프 자켓을 펼쳐 들어 어제 그 노래의 넘버를 찾았다. 그리고 넘버에 맞춰서 빨리감기 버튼을 눌렀다. 몇 날 며칠 부모님을 졸라 산 '신상' 소니 워크맨이었던 만큼, 내 워크맨에는 각 트랙에 맞추어 자동 멈춤 기능이 있었던 덕분에 금세 6번 트랙까지 무사히 테이프를 돌릴 수 있었다. 이윽고 빠르게 돌아가던 릴 소리가 멈추고, 나는 어제 처음으로 들었던, 그리고 듣는 내내 너무나 황홀했던, 그때 그 노래로 다시 빠져들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어제는 납치범의 이어폰 한쪽을 꼬옥 부여잡은 채 노래 한 소절, 가사 한 구절이라도 놓칠 세라 애가 탔다면, 오늘은 당당하게 내 소유의 이어폰을 두쪽 모두 내 귀에 꼽고 온몸과 마음 가득히 그 노래로 채울 수 있었다는 것…그렇게, 13살 소녀에게 그 노래,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른 네 남자는 엄연한 하나의 사랑 'one love' 로 승화되었다. 

오글거려 미칠 것 같다고? 무려 13년 전의 그 순간을 지금도 낱낱이 기억하다니 변태같다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팬심fan心의 시작은, 언제나 그런 법이니까.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은 영원할 것만 같던 H.O.T, 젝스키스, S.E.S, 핑클의 아이돌 4대 천황 체제가 점차 허물어지고 새로운 아이돌 그룹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특히 신화, GOD 등의 신인 보이 그룹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그동안 H.O.T와 젝스키스의 양대축으로 구성되었던 보이 그룹 경쟁 구도가 다변화되기 시작했다.

원타임 역시 그
러한 시류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그룹 중 하나였다. 다만 동시기에 활동했던 여느 아이돌 그룹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었다면 데뷔 초부터 적극적으로 프로듀싱 전반에 참여했다는 것이었다. 나를 정신 못 차리게 했던 타이틀곡 one love만 하더라도 테디가 작사·작곡한 노래이며, 그밖에도 후속곡 '쾌지나 칭칭', '악(惡)'도 각각 테디와 송백경이 작사·작곡했다. 자신들이 만든 노래를 당당하게 타이틀곡, 후속곡으로 내놓다니! 요즘에야 프로듀싱에 나서지 않는 것이 오히려 새삼스럽지만, 그때로서는 당시 아이돌 그룹답지 않은 신선함이었고, 그때까지 그 어느 아이돌에게도 쉽사리 고개 숙이지 않았던(?) 나에게 있어서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아이돌이지만 아이돌답지 않다는 것, 그것은 아이돌 팬이지만 평범한 아이돌 팬이기는 원치 않는, 한창 허세어린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있는 13살짜리에게 안성맞춤인 가수였던 셈이다.

감성적 희열과 이성적 검열(?)까지 무사히 마친 뒤, 나는 본격적인 팬질에 들어갔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앨범 자켓을 들고 다니며 모든 노래의 가사는 물론이요, 작곡·작사한 사람의 이름까지 달달 외우는 것으로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PC통신을 통해 하라는 컴퓨터 학원 숙제는 진작에 때려치우고 온라인 팬클럽에서 오고 가는 온갖 글과 사진을 감상하느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시작했다. '팬픽'이라는 신문물을 접하게 되면서 본의 아닌 성교육(!)을 받게 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맛보는, 실로 유익하고 황홀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온라인 활동만으로 온전한 팬질의 기쁨을 누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면서 은근슬쩍 오프라인으로 팬질의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안방 전화기로 원타임 사서함(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각 회사 내지 팬클럽에서 일정 기간동안의 가수 스케쥴을 녹음 형식으로 정리하여 팬들에게 알려주는 사서함 시스템을 운영하곤 했다)을 연결해 스케쥴을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어떻게든 '오빠들'이 출연하는 TV·라디오 프로그램을 본방사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쥐꼬리만한 용돈을 어떻게든 아껴서 그 당시 문방구에서 팔던 가수 사진들 중 원타임 사진들을 싹쓸이하는가 하면, 어쩌다 친구들이 아이돌 가수들을 다룬 잡지를 가져오면 원타임이 나오는 부분만을 찢어서 가져가고 싶은 마음에 그 친구에게 온갖 애교와 재롱을 선사했다.

이따금 주말에는 친구와의 약속을 핑계로 집을 
뛰쳐나와 무모한 '합정동 나들이'를 감행하고는 했다. 소속사 건물 앞에서 검은색 풍선을 든 채 어슬렁거리는 연륜있는 언니팬 무리들만을 멀찍이서 확인한 채 금세 돌아와버리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어린 나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주말 오후,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학원에서 친하게 지냈던 여자아이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한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의 촬영 감독으로 일하시는 아버지를 둔 그 아이는, 매우 다급한 소리로 내 이름을 연발하며 지금 공개방송에 와 있는데 자기 옆에 원타임의 대니가 있다고 외쳤다. 당황스럽다 못해 어이가 없어서 잠시 멍하게 수화기를 들고만 있던 중에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뒤섞여 왠지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그동안의 힘겨웠던 팬질의 나날들이 쓰나미처럼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오빠들을 향한 진심이 헛되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온 몸의 전율을 애써 견뎌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런데 그 순간, 너무나 허망하게도, 전화가 끊겨버렸다.  

나중에 학원에서 만난 그 친구는 나를 위로하면서 내 이름이 받는 사람으로 적힌 대니의 싸인을 건네주었지만, 이미 싸인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조금씩 팬질의 근본적 한계에 대해 고뇌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눈물겹게 오빠들을 사랑했는데 눈꼽만큼의 보답도 받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나는 오빠들을 떠나 보내기로 결심했다. 팬질의 정도에 비례하여 어김없이 세월도 흘러 어느덧 초딩의 외피따위는 벗어버리고 중학생도 됐겠다, 자존심 강한 사춘기 소녀로서는 꿋꿋이 감내하기 어려운 고민이었기에. 그렇게 약 2년간의 서투르지만 절절했던 첫 팬질은 막을 내렸다.

아, 물론 그렇다고 아예 팬질 자체를 끊었다는 건 아니다. 그후로도 나는 여러 가수와 배우들을 전전하면서 팬덤 활동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어렵잖게 팬질을 할 수 있는 물리적 여건에 십여년 간의 연륜이 합세하니, 이제는 상대 가수나 배우에 대한 팬으로서의 나의 존재감 어필이 식은죽 먹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팬질을 그만둔 뒤에도 틈틈이 근황을 눈여겨보는 경우는, 단언컨대 원타임 외에는 없다. 그때만큼의 절절함은 사라졌지만, 송백경과 오진환이 식당을 냈다는 소식에, 대니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에, 테디가 한예슬이랑 사귄다는 소식에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아마도 여느 팬질에는 비할 바 없는, '첫' 팬질만이 지닐 수 있는 특별함 때문이리라. 그래서 오늘도 나지막이 외쳐본다. 1tym 4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