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을 '사귀다가' 전학을 가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부모가 아닌 학교의 간섭 때문이다. 고등학교에서 시행되는 '생활벌점제'의 벌점 항목에 '이성교제를 금지한다'가 명시된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일명 '교제 금지'로 불리는 이 벌점조항 덕분에 이성교제를 하던 학생들은 졸지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었다. 전국 2322개 고등학교 가운데 ‘이성교제’ 관련 교칙이 있는 학교는 1190개교에 달한다.

김형태 의원(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은 지난 15일, 신학용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아 발표한 '2009~2013 이성교제 처벌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국 고등학교에서 올해 1월에서 9월 동안 총 431명이 이성과 교제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고 밝혔다. 2009년(224명)에 견줘 두 배 늘어난 숫자다. 특히 서울 지역 고등학교에서는 2009년 당시 16명에 비해 올해 61명으로 처벌받은 학생수가 급증했다. 지나친 사생활과 학습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어른들'은 왜 청소년의 연애를 못마땅하게 여길까. 지난 10월 1일, 교과부는 일선 학교에 ‘임신이나 이성교제 등을 이유로 강제전학, 자퇴권유, 퇴학 등의 징계를 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이 경우 해당사항이 있는 학교에서는 관련 학칙을 수정해야 하지만, 많은 학교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교제 금지 조항이 필수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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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면학분위기 조성'이라는 명분은 어디에 붙여도 자연스럽다. 학생에게 권위를 갖기 위한 수많은 강제적 규칙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면학 분위기를 위해 학생들은 오랜시간동안 머리모양과 색깔을 하나로 통일해야 했고, 교복을 입어야 했다. 또 맞아야 했다. 이렇게 따지면 학교는 학생에 대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체벌부터 사생활 침해까지, 교사가 알 수 없는것은 없다.

이처럼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가 되는 또다른 문제가 있다. '이성교제'의 판단을 교사가 일방적으로 내린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상벌점 기준마련과 체벌 규정 등이 모두 교사와 학교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당사자가 아닌 이가 ‘교사’라는 이유로 교제 성립여부를 결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강요한다. 학교가 학생 간 교제에 대한 칼자루를 쥔 것이다. 학생의 사생활과 인간관계 역시 학교에 종속되어야만 한다는 한국교육의 후진성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우리 교육에서 ‘주체적 사고'는 마이너리그다. 잠시 주목받는 때가 있다 해도 곧이어 ‘논술'이라는 또다른 ‘과목' 의 수식어로 쓰일 때가 부지기수다. 아마도 많은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주체적 사고를 단지 문제 푸는 데 잠깐 필요한 작은 부분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사고는 행동을 통해서도 만들어진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린다는 것에 벌이라는 압박이 가해질 때, 주체적 사고의 회로는 점점 얇아질 수 밖에 없다. 교사들은 정말로, 면학분위기라는 ‘치트키'를 눌러 문제를 생략할 것인가? 인간관계까지 학생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이것을 과연 교육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