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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혹시 ‘문화백화현상’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대다수에게 생소할 이 단어는 거칠게 말하자면, 문화 없이는 거리도 없음을 뜻한다.

지난 금요일, 기자는 상수동에서 ‘맘 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들의 모임(이하 맘상모)’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남균 대표 예술가를 만났다. 그는 ‘문화백화현상’을 처음 제안한 현역 예술가이자 문화 기획자, 그리고 카페 갤러리 <그문화>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바쁜 사람이었다. 약 1시간 동안 진행 됐던 인터뷰에선, 문화백화현상과 상인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하 임대법)의 모순점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Q. 반갑습니다. 김 대표님. 목소리완 다르게, 직접 뵈니 카리스마가 넘치시는 외모입니다. (웃음)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들어가기 앞서, 일단 ‘맘상모’에 대한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과찬이십니다. (웃음) 일단, 맘상모는 점차 심화되고 있는 소상공인과 임대인 간의 임대차 분쟁에 대해 더 효율적인 대응의 필요성을 느끼고, 저를 비롯해 다른 소상공인들과 변호사, 시민운동가 분들이 주축이 되어 내년 1월 정식 발족을 준비 하고 있는 시민단체입니다.

아시다시피, 상인들은 계약과 관련해선 대체로 ‘을’의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을’이 겪는 서러움이란, 굳이 설명 드리지 않아도 아마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전까지 상인들은 ‘을’로서 ‘갑’의 횡포를 막아낼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나마 보호법이 2002년에 생기면서 약간의 방어막이 생기긴 했지만요.

그런데 이 법이 좀 이상하게 제정됐습니다. 새누리당, 당시 한나라당이 이 법 제정에 반대하면서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법을 갈기갈기 뜯어 놓았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법 구조 자체에 심각한 모순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환산 보증금(본래의 보증금 이외에 월차임이 있는 경우 그 차임액에 100을 곱해 보증금으로 합산하여 환산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서울의 경우, 환산 보증금이 3억 이상 되는 사람들이 전체 자영업자의 약 75%정도 수준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보호법은 3억 이상의 환산 보증금을 가지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보호대상으로 포함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법 자체가 실효성을 현저히 잃고 있다는 거죠. 

대한민국 자영업자 인원은 거의 700만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딱히 기술을 구비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가게를 열기 위해 대부분 선택하는 곳은 상권과밀지역입니다. 일단 ‘목’이라도 좋아야 하니까요. 문제는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똑같이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경쟁에서 밀린 사람들은 도태가 됩니다. 안타깝게도 도태되는 사람들이 대다수고요. 웃기는 건,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이 환산보증금 이상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보호법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몇몇 상인들 사이에서 이런 열악한 현실에 맞서야겠다는 문제의식이 생기기 시작했고, 저 역시 이 문제의 핵심이 보호법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맘상모’라는 단체를 만들기로 결의했죠.

Q. 활동하시는 회원들은 대부분 어떤 분인가요?

아무래도 자영업자가 가장 많죠. 연령대는 30대 중반 이후가 제일 많습니다. 사실 자영업자는 성격이 참 애매합니다. 가장 가난해질 수도 있으면서, 가장 부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예전이라면 장사하는 사람들은 굳이 투쟁, 이런 걸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과 같은 무한 경쟁 체제에서는 본전 뽑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옛날엔 2년이 손익분기점처럼 여겨졌었죠. 2년만 버티면 성공한다, 이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2년이 넘어도 성공은 커녕 살아남기도 힘듭니다. 게다가 상권 과밀 지역 같은 경우는 기하급수 적으로 임대료가 증액되기 때문에 상인들의 부담이 실로 엄청날 수밖에 없죠. 회원들은 대개 이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Q. ‘문화백화현상’이란 개념어를 처음으로 제안하셨습니다. 하지만 좀 생소한 단어인데요. ‘문화백화현상’에 대해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문화백화현상은 사실 ‘도심공동화 현상’에서 영감을 얻은 개념입니다. 도심공동화 현상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어떤 도시가 있고 그 도시가 발전하면서 임대료와 집값이 상승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 비싸져 버리면, 도시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도시가 아닌 외곽으로 빠져 나가게 돼버리죠. 그러면 중심 시가지가 아니라 외곽 지역의 인구가 도리어 많아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바로 ‘도심공동화 현상’이라 말합니다. 문화백화현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예술가들이 어떤 터를 거처로 삼아 이주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몰려들며 공간은 발달합니다. 예술가와 유동인구간의 특수한 관계가 있는 공간이 형성되죠. 이 때 바로 자본이 침투합니다. 소상공인들이죠. 다시 유동인구가 증가합니다. 그러다 거기에 돈 냄새를 맡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합세합니다. 머지않아 그 공간은 프랜차이즈의 각축장이 됩니다. 자연스레 임대료가 상승하게 되겠지요. 권리금 역시 상승하면서 소상공인들의 부담은 점차 늘어나게 되죠. 그리고 비싸진 땅을 차지/점유하기 위해 소송과 분쟁이 증가합니다.

그러다보면 집값에도 영향이 가겠지요. 버텨낼 수 없는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딴 터로 이주를 시작합니다. 이윽고 예술가들이 전부 빠져 나가게 되면 그 자리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동시에 대부분 낮은 연령을 타기팅 하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덕에 30대 이상의 구매력 있는 연령층의 이탈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호객행위 같은 것들이 등장하게 되죠. 즉, 포화 상태로 인한 공멸 체제의 시작인 것입니다. 어느 순간엔 아무리 팔아도 이윤이 남지 않는 상황이 찾아옵니다. 프랜차이즈들이 연쇄적으로 철수하기 시작하죠. 유동인구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요. 빈 점포의 등장과 함께 건물주들의 부도가 연쇄적으로 시작됩니다. 결국 거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죠.

Q. 혹시 대표님이 기억하시는 ‘문화백화현상’의 최악의 사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신촌과 이대입니다. 문화로 넘쳐흘렀던 곳이 이제는 술집과 호객행위들로 가득한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비유하자면 영혼을 빼앗겨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죠. 이제 거기엔 육체, 그냥 ‘거리’만 있습니다. 사실 예전의 이대나 신촌 앞에는 소규모의 극단들과 극장이 많았습니다. 많은 예술가들 역시 대학의 자유로운 풍취를 느낄 수 있었기에 그 곳으로 많이 이주 했었죠. 한 때 이대와 신촌은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90년대 후반까지도 예술가들의 이주는 계속됩니다. 그러나 이 곳 역시 임대료가 높아지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갑자기, 그리고 한꺼번에 이탈하기 시작하죠. 거리에는 퇴락의 그림자가 찾아듭니다. 안타까운 건, 그 당시 거의 끝물에 들어섰던 몇몇 가게들이 지금까지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여기 들어갈 때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라도 본전은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으니까요.

Q. 참 공감 가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화백화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여러 차원에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법을 바꿔야 합니다. 보호법 10조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재건축을 하게 되면 (무조건)쫓아낼 수 있다. 말이 안되는 얘기죠. 재건축은 그야말로 ‘갑’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사항인데. 지금은 저희가 재건축을 ‘사전 고지하지’ 않으면 쫓아낼 수 없도록 바꿔두었습니다.

또 건물들이 경매 넘어갈 경우 보증금의 1/3까지만 임차인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걸 지금은 1/2로 바꿔놓았습니다. 현재는 시행령도 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환산보증금의 액수를 3억에서 4억으로 1억원을 늘리던지, 아니면 아예 폐지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지금 법은 마치 절름발이와 같습니다. 특히나 3억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에겐 더 그렇습니다. 보호법의 대상이 아니니까요. 외국의 케이스만 보아도 현재의 법이 얼마나 임차인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엔 차지차가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게 원래 태평양 전쟁 때 징병 된 남자들이 자신의 처자식을 위해 요구 제청한 법인데, 한 마디로 아이와 부인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임대차관계에 보호 해달라, 뭐 이런 법입니다. 내용을 조금만 살펴봐도 대한민국의 보호법과 얼마나 다른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일단 임대차보호기간의 제한이 없습니다. 또한 임차인을 함부로 내쫓을 수도 없고, 심지어 임차료를 함부로 높일 수도 없습니다. 만약 임차료 높였을 경우 임차인이 법원에 이의신청을 제기하면 판결이 날 때까지 임대료를 높여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임차인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법입니다. 일본에선 마음대로 임차인을 내쫓을 수 있는 경우는 딱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천재지변으로 건물이 무너졌을 때.

Q. 법 이외에 다른 차원에서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요?

개인 차원에서의 인식 전환도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임대인이 노력할 것은 딱히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죠. 임대인이 자발적으로 권리를 할애해 준다면 좋겠지만, 이익에 약한 게 사람 심리인 이상 그건 꽤나 힘든 일입니다. 중개인 역시 이익 앞에선 눈이 멀기 쉽고요.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임차인 스스로 변하는 것입니다. 장사도 곧 문화입니다. 임대료가 높아지면 서비스도 하락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문화가 사라지게 됩니다. 이발소를 대다수는 문화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 30년 정도 하면 그건 문화가 됩니다. 카페, 룸살롱, 이런 것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문화백화현상이 생기면 그 속에서의 다양한 스토리들이 전부 깨져버립니다. 이대나 신촌처럼요. 그러니 이런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임차인들이 스스로 위와 같은 법률적 지식과 대처방법들을 숙지해 횡포에 맞설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Q. 마지막으로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을 소상공인들에게 한 마디 하신다면.

간단해요. 뭉쳐야 산다. 꾸준히 문제제기 하시고, 우리의 피해를 알려서 공론화 시켜야 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속성들 중에 공유를 안 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경쟁 대상 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피해가 있는 순간은 반드시 알려야 됩니다. 공유해야 됩니다. 네트워크, 연대를 만들어서 집단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