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소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해 여러 종류의 감정 섞인 시선이 닿은 건 꽤 오랜만이다. 개봉하기 전부터 ‘별점테러’를 맞고, ‘외압설’이 나돌았을 만큼 이슈였던, 그래서 더욱 기다려졌던 영화, ‘변호인’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고인이 된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이야기라고 한다. 영화 출연진들은 공식 석상에서 노 대통령을 가리켜 ‘그분’이라 칭했다. 관람객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영화 접하기를 차단당하지 않았으면 해서다. ‘삶’에 관한 영화라고도 했다. 그러나 조금 다른 의미의 ‘선입견’이 이것이 ‘정치’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영화의 뚜껑을 개봉한 순간 깨달았다. 이것이 우리 일상에 관한 영화임을.

속물 세법 변호사 송우석은 돈이 없어 고시 공부를 포기했던 경험을 가진 고졸출신이다. 이 때문인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변호사의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돈이 되는 일이면 뭐든지 한다. 그래도 작은 '정’은 있는지 고시 공부하던 시절, 돈 안 내고 도망쳤던 국밥집에 7년 만에 찾아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때 그 도망간 ‘문디자슥’이 저였노라 고백한다.

송우석의 이러한 면모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와의 말다툼에서도 볼 수 있다. 부산지역 신문 기자인 윤택은 돈만 밝히는 송우석에 TV 속 데모하는 아이들을 보라고 말한다. 한 번이라도 저들이 데모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일갈한다. 송우석은 자격지심으로 무장한 채 ‘좋은 대학 갔으면 공부나 할 것이지 데모질이나 한다’고 맞받아칠 뿐이다.

돌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이끼 같던 송우석을 변화시킨 한 사건이 터진다. 국밥집 아들 진우가 ‘빨갱이’라는 혐의를 뒤집어쓴 채 경찰에 끌려간 것이다. 1981년 반정부 대학생들을 처벌하고, 이를 본보기로 삼으려는 협박 수단이었던 국가조작사건, ‘부림사건’이다. 그들의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 ‘난쏘공’, ‘역사란 무엇인가’ 등의 책을 어린 노동자들을 위해 읽어줬다는 것이 이유였다. 진우의 엄마와 함께 찾아간 피고인 접견실에서 넋이 나가 중얼거리는 멍투성이의 진우 몸을 보고 송우석은 결심한다. 그의 변호인이 되기로.

수상한 시대, 미디어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딴 나라 이야기쯤으로 여기던 송우석이 변화하는 시점은 바로 이곳이다. 우리 주변 인물들이 겪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송우석은 주변 인물을 통해 느낀다. 결국 그 하나의 사건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매우 일상적인 이야기임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증인이 말하는 국가는 무엇입니까?”

눈 돌아가는 것만 봐도 빨갱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고문경찰 차동영은, 그 판단의 근거로 ‘국가’를 든다. 이에 그를 증인으로 세운 채 송우석은 묻는다. 그리고 답한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법정씬’에서 송우석과 차동영이 주고받는 대화는 우리 사회 전체에 던지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지난 며칠간, ‘진우’ 같은 학생들이, 서로에게 안녕하냐고 물었다. 그들의 질문에, 몇몇 이들은 팩트의 오류가 있다며, 학생들을 가리켜 ‘종북 빨갱이’라고 답했다. 영화는 다른 답을 제시한다. 국민의 안녕이 국가의 안녕이고, 내 이웃의 안녕이 국가의 안녕이라고. 그리고 온 마음이 멍투성이로 변한 아이들을 묵묵히 보듬고, 변호한다. 

영화 속 사건의 결말도 알고 있었고, 송우석이라는 캐릭터의 실존 인물이 겪었던 영화 밖에서의 험난한 여정도 알고 있었다. 모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대신 더욱 요동치게 만들었다. 현실로의 회귀는 영화를 보는 내내 꽤나 많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결말’이 중요하지 않은 영화, 과정으로도 충분히 묵직하게 빛이 나는 영화. 오랜만에 여운이 긴 영화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