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국지>는 중국 한나라 왕족의 후손이었던 나관중이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그린 대하소설이다. 역사적 인물이나 시대적 사건은 진실이고, 세부적인 일화들은 허구로 그려낸, 요즘말로 하면 faction (fact+fiction)이다. 나관중은 여기서 멸망한 한나라의 왕족이었던 유비를 성군이자 주인공으로 그려내고, 그에 맞서는 조조를 악당으로 그려낸다. '한나라 중심주의'가 소설에 반영된 것이다.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나관중의 역사관'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역사교과서 논란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꾸면서 벌어졌다. 이러한 변화가 뜻하는 것은 단 하나의 통일된 역사관만을 주입시키는 게 아니라, 다양한 역사관이 교육의 현장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의도다. 역사를 국가 주도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나관중과 같은 개인에게도 해석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이번 논란의 근본적 원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국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일각의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한 가지 교과서만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교과서만이 진리’라는 인식을 주면서, 오로지 교과서의 내용만을 절대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교과서의 해석이 저절로 ‘권위’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교과서의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보면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길은 막힐 수밖에 없다.

역사는 조상들이 어떤 식으로 사회를 발전시켜왔는지, 또 어떻게 부조리를 극복해나갔는지 말해주는 증거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나 왕의 업적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맥락을 짚어주고,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가르쳐야 될 학문이기도 하다. 국정제는 국가가 정한 하나의 역사관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겠다는 의도가 은연중에 숨어있었고, 실제로 이전 정권에서는 정권의 홍보나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데 이용되기도 했다. 국정 교과서로 돌아가는 것은 ‘역사를 현재를 비춰주는 거울’로서, 입체적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능력을 키워줘야하는 역사교육의 궁극적 목표와도 거리가 있다. 단순히 기존의 교과서와는 역사적 쟁점들을 해석하는 방향이 다른 교과서가 나온다고 해서, 그것을 막기 위해 다시 국정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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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 사실 자체의 왜곡 또는 검증되지 않은 사료를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해석의 영역에서는 다양한 역사관의 자유를 보장하는 게 옳다. 그것이 검정제의 취지에도 맞다. 역사적으로 검증되고, 통계수치가 뒷받침되는 하나의 역사관을 국민정서에 안 맞는다고 배척할 수는 없다. 식민지근대화론이나 이승만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적혀있는 교학사 교과서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교학사 교과서의 근본적 문제는 ‘부실한 내용’이지, ‘다른 역사관’때문은 아니다. 소수의견의 역사관이라고 해서 배제할 이유는 없다. 세간의 주목을 덜 받고 있는 부분이지만 고대사 같은 경우에는 학자들 간의 이견차가 상당하다. 특정 부분을 다른 교과서와 다르게 썼다는 이유만으로 교과서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각각 다른 역사적 해석을 담은 교과서들이 공존하는 것은 오히려 권장돼야 한다. 물론 터무니 없는 내용을 담거나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과서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함량미달의 교과서는 법적 규제가 아닌, 교육현장에서 자체적으로 도태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 실제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교과서 선정을 철회시키는 현상만 보더라도 이는 현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이를 위해 교사, 학생, 학부모들이 교과서 선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