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허구로 만들어진 동생 캐릭터,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삼성을 싫어할 순 있어도 거부할 수 없는게 우리의 현실

오늘도 삼성 취업을 목표로 사는 사람들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고 황유미씨의 안타까운 사연, 그리고 딸의 억울함을 풀고자 노력했던 황상기씨의 투쟁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택시에서 숨진 딸, 재판에서의 증언을 약속했다가 배신하는 직원, 산재신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0억을 제시한 일 등은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허구로 만들어진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극중에서 철없는 동생으로 나온 ‘윤석’(유세형 분)의 이야기다.


일자리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던 동생 윤석을, 누나를 죽게 만든 ‘진성 반도체’의 인사팀 직원이 데리고 간다. 아들이 집을 나간 줄만 알았던 아버지 상구(박철민 분)가 진성그룹 본사앞에서 딸의 4주기를 맞아 기습시위를 하던 중, 윤석을 마주치게 된다. 윤석이 ‘진성 시큐리티’의 직원으로서 시위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언뜻 작위적이게 느껴지는 이 장면에서, 나는 절망하고 말았다. 윤석은 나,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삼성을 비판하면서도, 삼성맨이 되고 싶어 하는 게 우리 세대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또 하나의 약속>에서 그리는 이 황망한 현실을 보고 나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삼성에 입사원서를 넣을지 모른다.

 


삼성을 꿈꾸는 20대, 삼성을 비난하는 20대


삼성은 20대에게는 목표이자, 희망이다. 고졸 출신에게는 가장 들어가고 싶은 기업 중 하나이며, 가장 많은 일자리를 주기도 한다. 물론 대졸 출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지방대의 희망’으로 불리고 있기도 하다 다른 기업들이 서류에서 학벌을 볼 때, 삼성은 과감하게 서류전형을 축소하고 삼성직무적성평가 (SSAT)를 통해 학벌에 상관없이 사람을 뽑아왔다. SSAT는 지난해에만 무려 20만명이 봤다. 이쯤 되면 준 공무원시험이라고 부를만 하다. 게다가 삼성은 수많은 기업들 중 하나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1등 기업이다. ‘주류로의 진입’, ‘성공’의 상징인만큼 삼성을 마다할 사람은 많지 않다.


<또 하나의 약속>에서 진성 반도체 입사가 결정된 후 윤미(박희정 분) 가족의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기업에 들어갔다”며 기뻐하는 아버지 상구와 “돈을 많이 줘서 노조가 없대요”라며 밝게 웃는 윤미의 모습이 나온다. 삼성을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선을 잘 드러내주는 부분이다. 분명 지금도 수많은 다른 집에서 이러한 광경이 반복되고 있을 것이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만 91명의 백혈병과 암 환자가 발생했고(2012년 6월 30일 기준, 현재는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측) 황유미씨가 산재판정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수많은 젊은이들은 삼성 반도체에 면접을 보고 입사를 하고 있다. 삼성 반도체에 지원하는 이들이 삼성 반도체에서 백혈병 환자가 유독 많이 나왔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삼성 반도체를 선택한 이유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고, 또 삼성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희망이 컸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다른 곳이라고 딱히 더 나을 게 없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굳이 삼성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는 20대도 있다. 유·무형의 자본이 있는 젊은이들이다. 돈, 전문적 지식, 사회적 명예, 학력, 인맥 등 내세울만한 자본이 있는 20대는 굳이 삼성이나 삼성계열 취업을 경우의 수로 두지 않아도 될 만큼의 여유는 있다. 삼성이 ‘대학별 총장추천제’를 결정하고 그 인원을 대학별로 나누자,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고대 공감대’가 “삼성의 추천, 마음만 받겠습니다”라며 총장추천제에 저항한 것 역시 ‘고려대’라는 학력자본이 없었다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고대 커뮤니티 내에서는 총학생회의 행보에 대한 우려,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물며 지방사립대 학생들 사이에서 “삼성을 거부하자”고 말이 나오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을 가지고 있는 이들 역시 삼성의 직·간접적 자본이 투입되는 모든 부분을 거부하고 부정하며 살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보인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삼성 자본의 힘을 피해갈 수 있는 곳이 드물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약속>의 상영관이 예상했던 것보다 부족하게 잡혔고,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담은 만화 ‘먼지 없는 방’을 주요 일간지 어떤 곳도 광고를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을 보라. 심지어 진보매체들조차도삼성이 최대 광고주이기 때문에 눈치를 보는 게 현실이다. <또 하나의 약속> 속에서도 이러한 삼성의 압박은 잘 드러나고 있다. 진성 반도체에 맞서 싸우는 상구에게, 아내 정임(윤유선 역)의 '형부'는 "자네 때문에 진성쪽에서 우리 회사 제품을 안 받아줘서 아주 힘들어”라며 불만을 터트리고, 무언의 압박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 영화에서도 보여줬지만 황상기씨처럼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병원비나, 빚 때문에 중간에 삼성과 합의한 유족들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삼성은 비판의 대상인 동시에, 목숨 걸고 싸울게 아니라면 ‘받아들여야 할 대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경인일보


삼성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 이다
 

‘나는 취업준비생이고, 대단한 스펙이 없다. 인문계 학생으로서 정규직 취업의 문은 좁다. 사실 내 능력으로 삼성에 들어가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삼성이 나를 뽑아준다면... 무노조에다가 그동안 저지른 부정이 많은 기업이라서 찝찝하긴 하지만, 어차피 다른 기업이라고해서 더 좋은 직장 환경을 제공하고, 윤리적 경영을 한다는 보장이 없다. 최소한 삼성이라는 타이틀과 높은 월급이라도 받기 위해서 나는 순순히 삼성에 들어갈 것이다.’ 

<또 하나의 약속> 엔딩크레딧이 떠오를 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삼성이 너를 뽑아준다면 들어갈거니?”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후에 내린 결론이다. 자괴감이 크게 들고 가슴이 답답했다. 사회학자 엄기호가 쓴 ‘분열적인 삶’에 대한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고, 나도 언젠가는 그러한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전교조 교사가 자기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공교육이 싫어서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학부모가 방학이면 아이를 불러 선행학습과 과외를 시킨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와 카페를 차리고 공동체 운동을 하는 후배는 주식 투자로 생계를 이어간다. 양심적으로 살아가며 많은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친구는 들어가 살만하면서 투자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보러 다닌다. 살기 위해서는 삶이 분열되어야 한다. 이 분열의 빈틈에 적당한 합리화와 죄의식이 뒤죽박죽 엉킨채 우리는 살아간다” - 엄기호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中>



비록 여론의 거센 반대에 의해 취소되긴 했지만 삼성이 정한 ‘대학별 총장추천제 인원’은 이제 대학들마저 삼성의 영향권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증명했다. 삼성의 독단적인 결정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학교가 과연 있을까? 삼성이 TO를 몇 명 내냐에 따라 실질적인 학교의 지위가 다르게 여겨진다. 학교는 삼성에 의해 통제되고, 학교는 또 학생들을 ‘총장 추천제'라는 당근으로 쉽사리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일은 삼성이라는 자본이 ‘드러나지 않은 강제성’을 가지고 있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삼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삼성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삼성이 만들어가는 질서를 거부하긴 힘들다. 이러한 구조가 나와 같이 삼성을 비판하면서도 속으로는 ‘삼성맨이 되길 원하는’ 20대가 발생하게 되는 원인일 것이다.


<또 하나의 약속>은 20대들에게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우리는 삼성으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끊임없이 받는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진정 그것이 거부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거부하는 방법조차 교묘하게 은폐된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