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자주 나는 한국의 대의민주주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국민을 대신하여, 국민의 표를 받아 선출된 이들이 국회의원이다. 그들은 금빛 배지를 검은 양복의 왼쪽 가슴에 달고 국회라는 곳에서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을 벌인다. 이름하여 대의민주주의다. 그러나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벌이는 의정활동을 보고 있자면 과연 국민을 위한 입법활동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아니 도대체 저들이 국민을 ‘대신’할 자질이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뉴스1 지난 18일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 사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지난 18일 전체회의에서 한 개의 놀라운 법안을 통과시켰고, 한 개의 불가사의한 법안을 거론했다. 통과한 법안은 ‘공교육 정상화 촉진·선행교육 규제 특별법’이다. 법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선행학습 금지법의 연장선으로 여겨진다. 법안 내용을 보면 선행학습 금지법의 목적은 사교육이 낳는 폐단을 바로잡아 공교육을 살리고, 서민 가계도 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교육에 대한 애틋한 목적을 위해 제정한 이번 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은 학교장이 선행교육을 ‘감독’하고 선행학습을 ‘예방’하도록 교육한다거나, 교육과정을 앞서는 범위에서 평가하지 않는 것 등이 전부다.

이번 법안이 놀라운 이유는 이 법안을 추진한 국회의원들의 사고실험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과연 선행학습이란 것을 ‘감독’하고, 심지어 ‘예방’하며, 시험에서 교과과정에 앞선 내용을 평가하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교육과정에 선행하는 학습을 ‘무너진’ 공교육이 ‘규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확신의 근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나아가 이번 법안이 “사교육 참여율 69.4%에, 총사교육비 지출규모 19조에 달하”고 있다는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실효적인 방법인지 의뭉스럽다. 법안은 당장 8월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이번 법안으로 사교육의 폐단이 해소되고, 서민 가정이 마음 놓고 공교육에 자녀의 교육을 온전히 내맡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사태를 안일하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날 전체회의에서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의 발언은 나를 더욱 미궁 속으로 밀어 넣었다. 김 의원은 경주의 리조트 붕괴로 부산외대 학생들이 겪은 참사를 예방하기 위한 법률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추진될 법안의 내용은 도통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보도에 따르면 법안이 담을 내용은 학교 행사를 사전에 교육부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교육부가 안전지침을 제작해 제공하는 것 등이라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그들은 사태를 너무나 낙관하고 있다. 학생과 대학이 학교행사를 교육부에 의무적으로 보고하고, 교육부가 안전지침을 전달한다면, 이번과 같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정녕 교문위의 의원들은 생각하는 것일까.

아직 사고 원인이 종합적이고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아니라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붕괴된 코오롱 경주 리조트의 부실공사가 사고의 핵심적인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런 보도를 충분히 접했을 것으로 보이는 김 의원이 제시하려는 법안은 이런 원인을 정확하게 빗나간다. 사전 보고 의무화와 안전수칙 전달이 시설 관리의 부주의와 기업의 부실공사를 방지하는 것과는 전연 상관이 없다. 사태의 원인에 대해 충분한 조사도 없이 무작정 법으로써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국회의원들의 태도는 국회의원들의 규제 법안 만능주의적 태도를 드러낸다.
 
교문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법안과, 논의될 법안을 보면 국회의원이 얼마나 ‘물’이고, 또 학생(다수의 경우에 국민)들을 얼마나 ‘물’로 보는지 확연하게 알 수 있다. 그들은 문제의 원인조차 제대로 분석하고 제시하지 못한다. 공교육 붕괴의 원인을 온전하게 사교육 시장의 비대화에서만 찾고, 공교육의 부실함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부산외대 학생들이 겪은 참사의 원인을 시설과 기업에서 찾지 않고 상부에 보고하지 않아 생긴, 학생들의 문제로 치부한다. 그들이 제정하는 법안은 국회의원이 우리를 대신하여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삶을 위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9대 국회의 법안 통과율이 11%라고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