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에서는 라이언 맥긴리 전(展)을 포함하여 필립 할스만, 애니 레보비츠, 로버트 프랭크, 히로시 스기모토 등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또한, 이정진과 김아타 등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한국 작가들도 오랜만에 국내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 이처럼 다채로운 사진전 중에서 어느 전시를 가야 할지 고민인 독자들을 위해 고함20에서 사진에 대한 유독 상반되는 시선을 가진 두 명의 작가를 골라보았다. "사진은 순간의 미학이며, 사진은 진실을 말한다"는 말처럼 사진이 찍히는 순간에 피사체와 작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라이언 맥긴리. 그리고 이 명제를 전적으로 부정하며 사진에 대한 사유, 더 나아가 예술에 대한 사유를 권하는 '히로시 스기모토'.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날, 지리적으로도 그리 멀지 않은 두 미술관을 찾아가 두 작가의 작품들을 비교하며 감상한다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라이언 맥긴리와 히로시 스기모토

라이언 맥긴리는 휘트니 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 등 세계 각지의 유명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던 현대 사진계의 ‘핫’한 작가이다. 한국에서도 그의 첫 개인전 개최 소식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의 인기를 증명하듯 전시회가 열리는 대림미술관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SNS의 타임라인은 다녀온 사람들의 인증샷으로 뒤덮였다. 이렇게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맥긴리 전의 열기는 두 달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그의 사진에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에너지가 가득하다. 특히, 패션계에서의 명성 덕분에 소위 패션피플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히로시 스기모토는 현대 사진의 거장이라 불리면서 2001년 사진계의 노벨상인 ‘핫셀블라드 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는 영국 더 타임스의 ‘1900년 이후 활동한 가장 위대한 예술가 200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사진에 미술과 역사, 과학, 종교, 동서양의 철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관심을 담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넘나들며 예술의 시대적 당위성에 대한 성찰과 사유를 보여준다. 그는 40년에 가까운 활동기간 동안 심도 있는 연작들을 발표하면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베를린 구겐하임 박물관, 도쿄 모리미술관 등의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어 왔다. 

ⓒ대림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두 작가의 사진에 대한 상반된 관점
 
라이언 맥긴리는 그의 작품에서 젊음, 자유, 일탈, 방황, 불안, 그리고 열정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회의 제목이 '청춘, 그 찬란한 기록'인 만큼, 맥긴리에게 있어 사진은 '기록'을 하는 수단으로서 주된 역할을 하고 있다. 친구들과 미국 횡단을 하면서 찍은 [Road Trip] 연작, 뉴욕에서의 일상을 보여주는 [The Kids are Alright] 연작, 그리고 뮤직 페스티벌에서의 기록인 [Irregular Regulars] 연작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친구들과의 시간을 기록하고 그 '순간'의 감정을 빛과 색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사진에 담아낸다. 그렇기에 관람객들은 사진을 통해 직관적으로 그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Highway, 2007, ⓒRyan Mcginley

Somewhere Place, 2011, ⓒRyan Mcginley


반면, 히로시 스기모토의 사진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디오라마(Dioramas)] 연작 중에서 ‘알래스카의 늑대들’을 보면, 스기모토는 하얀 설원에 늑대들이 무리 지은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관람객들은 사진을 보며 “어떻게 작가는 이렇게 늑대들을 가까이서 촬영했을까?” 하며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진은 실제로 박제된 늑대들로 연출한 사진이다. 사진은 찍히는 ‘순간’만을 나타내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그 순간의 전후 맥락은 알 수 없다. 그는 이러한 사진의 특성을 허구성이라 지적하면서 ‘사진은 진실을 말한다’는 명제를 부정한다. 또한, [번개 치는 들판], [극장], [초상], 그리고 [가속하는 부처] 연작 등에서 그는 주제에 대해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을 취하며, 보는 이에게 시간, 역사, 기억, 의식과 지식의 기원을 사유하기를 권한다. 
 

Alaskan Wolves ⓒHiroshi Sugimoto


이처럼 두 작가는 사진에 대해, 특히 사진이 찍히는 '순간'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맥긴리는 사진이 찍히는 '순간'을 기록함으로써 그 순간의 감정을 사진에 담았기에, '사진은 진실을 말한다'는 명제에 충실함을 보여준다. 반면, 스기모토에게 있어서 '순간'은 다분히 조작적이고 실험적이다. 그에게 사진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관람객들에겐 보이는 사진 이면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사유'의 과정이 요구된다. 따라서 맥긴리의 사진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스기모토의 사진은 분석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두 작가의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사진전을 관람한다면 좀 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전을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제안

1. 라이언 맥긴리 전이 열리는 ‘대림미술관’과 히로시 스기모토 전이 열리는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는 모두 디지털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다. 맥긴리 전은 스마트폰에 대림미술관 앱을 설치(무료) 후 이용할 수 있고, 스기모토 전은 기기를 대여(2,000원)하면 작품 해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해당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과 작품 설명을 들으며 사진을 감상한다면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한층 더 높일 수 있다.

2. 맥긴리 전의 마지막 관람관에서는 맥긴리가 연출한 아이슬란드 밴드 Sigur RósVARÚÐ의 뮤직비디오가 상영되고 있다. 이는 Sigur Rós의 ‘THE VALTARI MYSTERY FILM EXPERIMENT’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작품들 중 하나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16명의 아티스트들은 VALTARI 앨범을 듣고 느낀 감정을 각자의 방식으로 영상을 만들어 냈다. 관련 사이트( http://www.sigur-ros.co.uk/valtari/videos/ )에서 맥긴리의 작품과 함께 다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미리 본 후에 관람한다면 맥긴리의 감성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다만, 우리 이러지 좀 말자.

대림 미술관에서는 맥긴리 전을 '청춘, 그 찬란한 기록'이라고 이름 지으면서 '청춘'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도 청춘을 위로의 대상으로 보며 힐링이 필요한 존재로 규정한다. 철 지난, 이제는 지겨운 '청춘 힐링 담론'을 내세운 대림 미술관의 기획력에 아쉬움을 표한다. 일단 전시되고 있는 맥긴리의 연작들을 '청춘'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기에는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청춘에 '나중'이란 없으므로 '지금' 가져야 하는 한정판 아이템을 사라고 종용하는 뻔뻔함이란. '청춘'에 대해 지극히 상업적인 접근을 취하면서 우리를 위로하겠다는 이중성은 그동안 좋은 전시를 많이 열며 쌓아온 대림미술관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