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예술지원사업>은 '서울문화재단'에서 유망예술가를 발굴하고 그 성장을 독려하기 위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연극 부문, 다원예술 부문, 전통기반창작예술 부문, 무용 부문, 음악/사운드아트 부문, 시각예술 부문 등 총 6개 분야의 작품을 심사하여 선정하고 있다. 이중 연극 부문 선정작이 2월 중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차례로 공연된다.

2014년 유망예술지원사업 연극 분야 선정작은 <닫힌 문>, <청춘인터뷰>, <먼지섬>의 3개 작품이다. <닫힌 문>은 우리 사회의 ‘닫힌 문’들로 인한 소외와 좌절을, <청춘인터뷰>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초년생 배우들의 실제 삶을, <먼지섬>은 '인간은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소재로 하여 공연될 예정이다.

ⓒ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


무대 중앙에 흰색 문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몹시도 긴장된 분위기로 막이 열린다. 주인공인 은호와 영산은 빈집을 털기 위해 '닫힌 문'을 상대로 씨름하고 있다. 망을 보는 은호는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자물쇠를 따는 영산의 손은 자꾸 미끄러진다. 초조한 몇 분이 지나고, '딸깍', 문이 열린다. 아픈 여동생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영산과 달리 은호는 불안과 죄책감을 느끼며 빈 집에 들어서는 것을 거부한다. 결국 은호를 내버려둔 채 혼자 살금살금 걸어 들어가는 영산의 뒤로 다시 '문이 닫힌다.'

닫힌 문 앞에 얼어붙은 듯 서있는 은호와 닫힌 문 너머에서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영산의 이미지는 시각적으로도 강렬한 동시에, 90분에 이르는 연극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암시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문'은 연극 <닫힌 문>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테마가 되고 있는데, 이 문은 은호에게는 사법고시로, 영산에게는 빈집의 문으로 나타난다. 이 문들은 두 주인공에게 통과하기만 하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그러나 은호는 10년째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고 있고, 영산이 따고 들어간 빈집의 문은 결국 감옥으로 그를 이끈다.

여동생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시작된 도둑질이 돈에 대한 욕심으로 변질되며, 영산은 결국 체포되고 만다. 감옥 안에서 영산은 은호에게 자신은 세상을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통행권’을 갖고 싶었을 뿐이라고 울부짖는다. 은호는 극의 초반에 돈에 눈이 먼 영산을 비난하지만 감옥에서 영산의 호소를 마주한 후에는 깊은 슬픔과 절망감을 느끼게 되고, 그 후 고시공부를 하는 내내 '닫힌 문'의 환상에 시달린다. 주인공인 은호가 느끼는 좌절감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이 '닫힌 문' 장면은 연극 <닫힌 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조연배우들이 표정 없는 얼굴로 어둠 속에서 수많은 닫힌 문을 밀며 등장하고, 은호가 강박적으로 그 문들을 열어 제치며 우왕좌왕하는 장면에는 관객 개개인의 ‘닫힌 문’은 무엇이고, 또 우리가 열고 싶은 ‘문’이 무엇인지 묻는 이 연극의 테마가 진하게 녹아있다.

연극은 '닫힌 문'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문을 닫혀있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해설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무대 위에 애니메이션 영상을 띄우는 새로운 형식으로 그 대답을 암시해준다. 영상 속에서 안경을 쓴 토끼 캐릭터로 희화화된 부자들은, 더 높은 세계에 가기 위해 줄을 타고 오르다 줄이 끊어져 떨어지고 마는 일반 토끼들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주변에서 엄청난 재해가 일어나도 배불러 자느라 모르며, 움직이지 않는 비행기에 돈을 먹여 날아오르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안경토끼가 주는 이질감과 비현실감은 그가 배출하는 방귀가 빌딩이 되었다가 자동차, 다이아몬드가 되는 장면에서 극에 달한다.

그 아래 무대에서는 은호가 머무는 고시텔 사람들이 폭력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거나, 결국 자살을 하기까지 하는 모습이 제시된다. 시험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빡빡하게 살지만 결국 아버지가 떠넘긴 빚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선희, 하나뿐인 대학생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아픈 몸을 끌고 청소 노동을 하는 1호 아줌마, 가게를 하다 사기를 당해 돈을 모두 잃고 소송에서도 져 자살을 택하고만 3호 아저씨.......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닫혀있는' 우리 사회에서 가지지 못한 이들이 겪는 고통을 재현한다. 연기는 애니메이션과 대조를 이루며 한층 사실적이고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연극 <닫힌 문>의 결말은 어둡다. 고시텔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은호는 여전히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책 사이에 파묻혀 환상에 시달리던 은호는 결국 문들로부터 도망쳐, 열렸던 문을 스스로 다시 닫아 버리고 만다. 어둠 속에서의 방황 끝에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올곧고 희망차던 은호와 영산이 등장하는 회상 장면이 마련돼 있다. 고아인 영산이 공무원이 돼서 하나뿐인 여동생과 잘 먹고 잘 사는 꿈을 꾸던 시절이다. 대화의 막바지에서 영산은 은호를 부러워하며 "너는 대학에만 가면 뒷바라지해줄 어머니도 계시고"라고 말한다. 비슷하게 가지지 못한 처지임에도, 은호가 범죄자가 된 영산을 비판한다. 10년 이상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 고아인 영산보다 그나마 조금 더 나은 상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에 철렁한다. 포기가 조금 늦었을 뿐, 결국 은호 역시 '닫힌 문'에 굴복하고 말지 않았는가.

누구에게나 '닫힌 문'이 있다는 암시는 연극을 넘어 나 자신에게는 어떤 좌절과 희망이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닫힌 문'은 어떤 문일까? 이 '닫힌 문'을 원하는 대로 넘어갈 수 있는 '통행권'은 대체 뭘까? 무엇이 '닫힌 문'들을 닫혀있게 만드는 걸까? 왜 누군가는 두세 걸음만 걸어도 갈 수 있는 길을, 어떤 사람들은 열 걸음을 걸어도 갈 수 없는 걸까? 열심히 산다는 것과 잘 사는 사람들의 차이는 뭘까? 연극이라는 형식으로, 은호라는 고시생의 모습을 통해 던져지는 질문들이었지만, 결국 본질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모두가 함께 느끼고 있는 좌절감이 아닐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