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실업의 원인이 인문계 과잉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앙일보는 12일자 기사를 통해 ‘인문계 전공이 넘쳐나는 미스매치가 해소 안 되면 .. 청년 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힘들다’라는 입장을 제시했다. 기사는 4대그룹(삼성,현대차,LG,SK)의 사례를 중심으로 취업시장에서 우대받는 이공계와 그에 대비되는 인문계의 현실을 조명했다. 교수의 말을 빌려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한국의 대학구조를 개혁해야 할 것’이라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취업시장에서 인문계 전공이 넘쳐나는 이 같은 ‘미스매치(수급 불균형)’가 해소 안 되면 복잡하게 꼬인 청년 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힘들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인문·교양 관련 학과 중심으로 발전해 온 한국 대학들은 기존 학과의 반발 등으로 산업계나 사회의 수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학문별 특성화나, 규모에 따른 차별화를 통해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한국의 대학 구조를 개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대의 취업 문제는 과연 인문계 과잉 때문인가? 인문계 학생이 필요보다 많고, 이공계 학생이 필요보다 적기 때문에 청년취업의 ‘근본적인’해결이 요원한 것인가? 이 문제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기사가 전반적으로 배경에 깔고 있는 가정들, 즉 한국 대학이 이공계생을 얼마나 배출하고 있는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OECD Science, Technology and Industry Scoreboard 2009

한국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전체 고등교육 졸업자 대비 이공계열 졸업자의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6년 한국은 전체 학사학위 졸업자 중 이공계 비율이 36.9%로 OECD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전체 졸업자 대비 자연과학 학사학위가 10.9%, 공학 학사학위가 26.0%로 두 항목을 합친 이공계 졸업자 비율은 OECD 국가 중 1위다. 특히 공학 학위를 가진 사람의 비율이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은 취업자 중 이공계열 졸업자 비율도 OECD 1위다.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의 24-35세 취업자 10만명 당 이공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수는 3,555을 기록했다. 이는 OECD평균인 1,829명의 거의 2배 수준이며 일본의 1,643명, 캐나다의 2,143명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24-35세 취업자 10만명 당 이공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가 3,000명을 넘는 OECD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며 2,500명으로 기준을 낮춰도 뉴질랜드(2,987명)와 프랑스(2,717명)정도가 남는다.

최근 자료를 살펴봐도 한국의 ‘이공계 과잉’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간한 '2012 국제지표로본한국교육'에 따르면 교육분야별 고등교육 신입생 분포에서 한국은 전체 입학생 대비 공학, 제조, 건설(Engineering, manufacturing and construction) 분야의 비율이 25%, 과학(Sciences) 분야는 7%를 차지했다. 둘을 합한 이공계열 비율은 32%로 OECD평균인 25%, EU 21개 국가의 평균인 26%에 비교하면 6-7%p 가량 많은 수치다. 특히 이번 자료에서도 공학 쏠림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주요국가 중 공학부분의 신입생 비율이 20%를 넘는 국가는 이스라엘(24%), 핀란드(25%), 멕시코(22%)정도다.

Education at a Glance 2011 OECD indicators


통계자료들은 일관되게 한국이 전세계적으로 유래없이 많은 이공계열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상황에서 인문계열의 인원을구조조정하고 그 대신 ‘산업계나 사회의 수요’에 맞춰 얼마나 더 많은 공학 학위자를 배출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한가지 더 주목할 사실은 90년대 이후 한국의 이공계열 졸업생 비율이 점차 하락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한국사회도 급속한 산업화의 시대를 지나 경제와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는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사학위 정도의 공학인재가 다수 필요한 환경은 중국과 같이 산업화 단계에 막 진입한 국가들 뿐이다. 한국이 이제와서 지금보다 더 많은 규모의 공학 학사 학위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취업난의 원인이 인문계 과잉, 나아가 대학-산업 간 인력 불균형에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 취업문제는 근본적으로 재분배의 문제다.

IMF 이후 경쟁을 통해 삼성전자와 현대차같은 수출지향 제조대기업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다.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제일 큰 이득을 본 사람은 당연 대주주일가와 투자자들이지만 해당 기업에 근무하는 정규직 근로자들도 조금이나마 그 성장의 열매를 맛보게 된다. 반면 그 대기업에조차 다니지 못하는 기타 기업의 노동자와 공공부분의 일자리는 점차 악화일로를 걷는중이다. 단적으로 이전까지 ‘괜찮은 일자리’라고 여겨졌던 초중고교의 교원조차 계약직 전환등으로 점차 그 일자리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라는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미 한국의 공학학사 배출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 대학이 인문계열 위주로 발전해왔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산업계의 수요를 못 따라가는 대학의 구조가 아니라 괜찮은 일자리를 둘러싼 불평등한 구조를 바꿔야 한다. 소수의 대기업과 그 나머지로 급속도로 양분되어가는 고용구조를 혁신할 수 없다면 일자리를 둘러싼 갈등은 끊이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 인문계열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가장 협의의 수준에서 인문계열은 문과대학과 동의어이기도 하고 어학계열을 제외한 사학, 철학, 종교학 등을 지칭하기도 한다. 경영학과와 경제학을 상경계열로 묶고 그 문과대와 사회과학대를 합쳐 인문계열로 부를때는 비상경계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가장 큰 의미에서 인문계열은 이공학(사이언스&엔지니어링)을 제외한 인문사회과학 전체를 말한다. 이번 글에선 가장 광의의 개념으로 인문계열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