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신청 제도는 불완전하다. 수백만 원짜리 강의를 단 1초 만에 경쟁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현실은 잔인하다. 정확히 어떤 수업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냥 선배가 좋다길래” 신청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강정정 제도 역시 완벽한 대책은 못 된다. 개강 후 수강정정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내가 신청한 강의의 장‧단점을 순식간에 파악할 능력은 우리에게 없다.

그래서 ‘드랍’이 존재한다. 드랍은 수강정정이 끝난 후에 특정 기간을 정해 일부 과목의 수강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드랍은 뒤늦게 알게 된 좋은 강의를 가질 순 없어도, 뒤늦게 알게 된 나쁜 강의를 버릴 수는 있게 한다. 일종의 마지막 보루다. 학교에 따라 수강철회, 수강취소 등 명칭은 다르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 시행 중이다.

대학생은 드랍제도에 찬성한다. 제도를 이용해본 경험이 있는 대학생 A 씨는 “서너 번으로는 한 학기 수업 전체를 가늠하기 힘들고 오리엔테이션 기간에는 교수님의 수업 스타일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드랍의 필요성을 말했다. 대학생 B 씨는 “정정기간에 추가로 생긴 강의를 신청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은 적이 있었다”며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드랍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쟁같은 수강신청에서 드랍은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일부에선 드랍이 대학생의 ‘학점세탁’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드랍의 축소 및 폐지를 주장한다. 최근 논란이 된 이중성적표나 재수강에 대한 비판과 같은 맥락이다. 개강 5주째에 수강신청 과목포기제도(드랍) 기간을 두었던 고려대는, 이런 이유로 올해 1학기부터 해당 제도를 폐지했다. 폐지 당시 고려대 학적수업지원팀은 “정정기간을 1주일 늦추고 개강 첫 주 수업을 내실화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정작 학생들은 예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드랍이 학점세탁에 이용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중간고사 이후 드랍을 할 수 있는 일부 대학에선 ‘시험 결과를 보고’ 해당 과목을 드랍하는 경우도 많다. 수강취소 일정이 중간고사 이후인 대학에 재학 중인 C 씨는 “시험 난이도 등을 보고 학점이 별로일 것 같으면 수강을 취소하는 친구들을 봤다”고 말했다. 조별 과제나 학생 발표가 중요한 강의인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남은 수강생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학점세탁을 막기 위해 드랍은 사라져야 하는 걸까? 아니면 학생들의 폭넓은 선택지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걸까? 존폐 결정을 위해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교육권이다. ‘교육권’은 학생이 배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수강신청 때까지 제대로 올라오지 않는 강의계획서, 강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짧은 오리엔테이션 기간 등을 감안하면 드랍은 존재해야만 한다. 우리에겐 우리가 기대한 만큼의 강의를 수강할 권리가 있다.

드랍을 악용한 학점세탁은 어떡하느냐고? 중요한 것은 ‘배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에 있다고 했다. 학점세탁을 하는 학생들에겐 이미 그 권리가 없다. 그들은 수강할 과목을 선택하는 단계부터 배움보다는 학점을 우선시한다. 정말로 배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했다간 취업이라는 현실에 필연적으로 부닥치기 때문이다. 제도로써의 드랍도 자유로운 선택을 위해 필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배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이다. 학점세탁을 막기 위해 드랍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그 환경에 결코 우선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