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부터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어느샌가 우리는 온갖 매체를 통해 범람하는 문화를 그저 수용할 뿐인 삶에 익숙해져 있다. 대체 이 많은 콘텐츠 속에서 '20대의 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이 있긴 한 것일까? 단순한 수용자가 아닌 창조자로서, 20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문화예술'이라는 것에 참여하고 있는 것일까? 고함20은 <예술in 20> 기획을 통해 '예술을 수용하는 데에 길들여진 20대'라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창조하는 20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려 한다.

세 번째 주인공, 27살 신모래(본명: 신지원)씨는 “그림 그리고 이야기 만드는 사람”이다. 자신의 그림책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작가이고, 전시 경험도 있는 미술가이기도 하다. 어떤 직업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 그녀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신모래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보통 “작고 적은 것을 만든다”고만 해요. 원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책과 이야기 만드는 걸 좋아하다 보니 애매해진 부분이 있어서 요새는 그렇게 이야기해요.

Q.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신 건가요?

A. 그림은 어렸을 때부터 그려왔어요. 반에서 그림 그릴 일 있을 때 부탁하는 친구 있잖아요, 그 아이들 중 한 명이었던 거죠. 중학교 때부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블로그에 혼자 올리고 혼자 봤어요. 대학에선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그림 그리는 친구들은 없어요. 어쩌다 보니 제 홈페이지에서 그림 봐주신 분이 전시를 의뢰하셔서 뉴욕의 작은 갤러리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가했던 게 21살 때에요. 그 때 처음으로 작가라고 소개됐어요. 스팸메일인 줄 알았는데, 전시를 위해 그림을 보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던 거예요. 그 때는 많이 당황했었죠.

Q. 그 전시 이후 그림을 계속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건가요?

A. 어떻게 된 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계속 해야겠다고 의식적으로 마음먹은 건 아닌데 종종 콜라보레이션 의뢰가 들어오더라고요. 주로 쿤화콘텐츠 사업을 하는 곳이나, 기업 콜라보도 들어오고. 조금씩 그림으로 수익이 나기 시작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Q. 지금은 콜라보 외에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A. ‘꿀프레스’라는 이름으로 책을 만들고 있어요. 제 개인 작업이 책으로 발전된 형태로 보면 될 것 같은데, 1년 정도 됐어요. 그 전에는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함께 ‘복희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만들었어요. 주변 친구들에게 돈 받고 팔기만 하다가,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도 팔릴까? 해서 유어마인드에 입고했는데, 다른 서점들에서도 계속 입점 의뢰가 오는 거예요. 되게 놀랐어요. 지금은 그 친구가 여러 사정으로 그만둔 상태고 저 혼자 하고 있어요. 그림도, 꿀프레스도, 처음에는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좋아서 시작한 건데 봐 주시는 분들이 생기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Q. 꿀프레스에선 어떤 일을 하셨나요?

A. 대표적인 게 작년 ‘껌북’이에요. 트위터에 “껌북 만들고 싶은데 어떠세요?”라고 올린 글이 1000번 넘게 리트윗됐어요. 나름대로 성황리에 이루어진 기획이에요. 다른 작가분들과 협업했는데, 실제로 웹툰 작가로 활동하고 계신 분도 참여해주셔서 좀 더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껌북은 앞으로도 장기기획 형태로 계속 나올 것 같아요. 그런 쪼그만 책이 아예 없기도 했고, 꿀프레스에서만 나오는 책이 될 테니까.

ⓒ꿀프레스. 2013년 기획으로 만들어진 '껌북(Gum Book)'.

Q. 책 만드는 일을 혼자서 할 만한가요?

A.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감당할 만했는데, 아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책의 수요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을 지났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다른 유명 출판물에 비해선 적은 수요지만 제가 스스로 공급할 수 있는 기준에선 초과되기 시작한 거예요. 제가 되게 자주, 많이 만들기 때문에 워낙 책 종이 많은데, 입고 주문이 들어오면 프린트하고 제본까지 모두 혼자 하거든요. 원래 소소하게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지금은 공급해야 할 양이 늘어나서 좀 힘에 부쳐요. 현재는 제 개인 작업과 병행하기 좀 힘들어서 잠시 쉬고 있어요. 5월 중순부터 재개할 예정이에요.

Q. 20대로서 생계나 생활 부분에 있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세요?

A. 처음엔 그림 그리는 일로 얼만큼 마진을 남기겠다는 식의 기대를 아예 안 했었는데 수익이 좀 나니까 오히려 할 만해요. 책 만드는 일이나 그림 그리는 일 모두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아니거든요.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재료값 등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을 충당하기 위해 다른 일이 필요해서 힘들 때가 있어요. 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 다른 독립한 친구들처럼 월세나 가스비 부담 없이 제가 하는 일에 더 많은 비용을 할애할 수 있지만, 독립에 대한 고민은 늘 하고 있고 가끔 불안하기도 해요.

Q. 동화책 출판은 그림과는 조금 다른 주제 같아요. 글과 그림을 함께 창작하는 거니까.

A. 저는 생각나는 대로 만드는데, 그게 장면이라면 그림으로 그리고, 서사라면 책으로 만드는 거예요. 아무래도 제가 많이 반영돼있어요. 그런데 책 파는 행사에 나가면 꼭 울먹거리며 말을 거시는 분들이 한두 분 계세요. 제가 만든 이야기들이 밝고 희망차다기보단 쓸쓸하거나 슬픈 부분이 많은데, 공감해주시니 무척 감사하죠. 그리고 ‘출판’이라고 칭하기엔 좀 부족한 것 같아요. 어쨌든 제 개인적 작업물 영역 안에 있다 보니까. 둘 다 일단 제 작업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책의 물성에 맞춰 다양한 그림체를 시도할 수 있잖아요. 그게 참 재밌어요.

ⓒ꿀프레스. 2013년 유어마인드 '손바닥책' 전시회에 선보여진 책 중 한 장면.


Q. 대학에서 전공한 디자인이 직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A. 좋아하는 수업만 나가고, 학교에 잘 가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 꿈이 동화책 작가여서 아무 지식 없이 시각디자인과에 들어갔는데, 가보니 완전 아니었어요. 그림도 안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학교에서 심어주진 않았던 것 같아요. 졸업작품도 너무 교수님 위주로 굴러가요. 그래서 심사 때마다 졸업작품으로 하지 않을 것만 계속 가져갔어요. 어차피 하지 말라고 할 테니까. 최종 심사 날에는 전임교수님 말고 다른 분이 외부에서 오시니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니까, 아예 처음 보는 걸 가져갔죠. 자신의 작업을 하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에요. 제가 전시를 하면 신기해하는 분위기였죠.

Q. 작업 자체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 많이 하시는 것 같아 보여요.

A. 네, 그런 편이에요. 친구들 만나다가도 아이디어 떠오르면 먼저 가겠다고 하고, 집에 와서 바로 만들어요. 예를 들어 언젠가 친구와 함께 담요를 덮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제가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걸 알아요) 담요 안에서 계속 나오지 않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어요. 우선 메모장에 적고, 집에 와서 만들어 친구에게 사진 찍어 보내줬어요. 기획하는 것에서 어려움은 잘 느껴본 적이 없어요. 실질적으로 인쇄하고 공급하는 과정이 오히려 어렵게 느껴져요. 그래서 작업물 자체는 많기는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점점 기계가 하나씩 늘어나고 있기도 해요. 원래는 레이저 프린터 하나만 있었는데 더 큰 판형을 만들겠다고 A3 프린터가 생기고. 좀 철이 없죠. 그래서 계속 하는 것 같아요.

Q. "작업 어떻게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하시나요?

A. 제 스스로도 아직 배울 게 많은 걸요. 가끔 이메일로 그림 쪽 진로 고민하는 고등학생들에게서 상담 요청이 오기도 해요. 저는 투철한 작업 의식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하는 편은 아닌 듯해요. 그래서 실컷 하다가 싫어지면 그만할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Q. 창작 워크숍을 하신 적도 있다고 들었는데, 어땠나요?

A. 작년에 책 판매 행사에서 조그맣게 했어요. A3 종이 전체에 앞뒤로 그림을 그린 뒤, 모두 쪼개서 책으로 묶는 거예요. 만약 토끼 그림을 그렸는데 자르면 귀 부분이 표지가 된다거나, 그 다음 페이지에 눈이 나온다거나. 갑자기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거기서 오는 직관적인 반응들이 너무 재밌었어요. 저는 워크숍에서 같이 이야기해보는 시간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서로 만든 걸 나누니 분위기가 되게 좋았어요. 그런 워크숍이 제가 뭔가를 떠올리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막상 해보니 제가 같이 하며 지도하는 일을 좋아하더라고요. 앞으로도 그림 그리면서 창작 워크숍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 있어요. 또 재미공작소라는 곳에서 제 작품들에 관심 가져주셔서, 전시할 때나 워크숍 할 때 장소를 제공해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정말 친절하시고 고마운 분들이에요.

Q. 마지막으로, 꿈이 뭔가요?

A. 할머니들이 많은 동네에 작업실을 구해 창작 수업을 가끔 하고, 그림 그리며 사는 것이 꿈이에요. 작고, 조용하게, 지금처럼 소소하게 살고 싶어요. 아직도 배울 게 많은 걸요. 뭐든 좋아하면 일단 처음 만들고,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그냥, 하던 걸 하고 있는 중이고 앞으로도 해나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