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월 대한민국, 지금 이 시대에는 다양한 모습의 가족이 존재한다. 증조할머니와 손주들이 모여 삼대가 함께 살던 것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이 없이 사는 부부, 한부모 가정, 홀로 사는 1인 가구까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시대에 가족의 의미란 무엇일까.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이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가족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에는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바랍니다.


 

 

찌익-

치매에 걸린 아내를 재운 장군봉 할아버지는 가만히 서서 방 안을 둘러본다. 할아버지의 손에는 청테이프가 들려 있다. 이내 조용한 방 안에는 할아버지가 테이프를 뜯는 소리만이 가득하다. 바깥의 공기가 들어올 수 있는 모든 창문과 문틈에 테이프칠을 한 할아버지는, 연탄을 피운 방 안에서 아내와 함께 깊은 잠에 빠진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군봉 할아버지 부부의 동반자살 장면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사회의 가족에서 노인은 철저하게 소외되기 시작했다. 강풀 작가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은 우리 시대의 소외된 가족 구성원인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는 다시 부부가 되었다. (한 때는) 가족이었는데.”

 

자식들에게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서로에게 의지하던 노부부에게 가족이란 무엇이었을까. '(한때는) 가족이었는데 (지금은) 다시 부부가 되었다는 말은 군봉 할아버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을 드러낸다. 방이 좁더라도 여러 식구가 함께 모여 북적거리며 웃음꽃을 피우던 어느 시절, 그들은 풍족하진 않지만 행복한 가족이었다. 자식들이 모두 떠난 후, 부부는 세상에 단 둘 뿐이 된다. 할아버지에게 아내는 한 때는 연인이었고, 한 때는 갓 결혼한 새색시였으며, 한 때는 세 남매의 엄마였다. 그리고 이제는 화장실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되어 버렸지만, 그 옛날 백년해로를 약속한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의 모든 순간 부부는 가족이었다.

 

군봉 할아버지 부부의 자살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매년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 당 80.3명의 노인이 자살한다. 10년 전의 43.2명과 비교하면 두 배 가량 증가한 수치이다. 노인자살이 급격히 증가한 배경에는 외로움이 있다. 젊은 날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식 뒷바라지를 하다가 한 숨 돌리면 어느새 다 큰 자식들은 제 살 길을 찾아 떠난다. 자식들의 무관심 속에서 늙은 부모에게는 깊게 패인 주름과 시도 때도 없이 골골대는 몸만 훈장처럼 남는다작년 겨울, 한 병든 노부부가 군봉 할아버지 부부를 모방하여 자살한 일이 있었다. 부부가 미리 준비한 영정사진과 함께 발견된 유서에는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고 쓰여 있었다.

 

한 때 가족의 중심이었던 노인들이 이제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지구상 가장 비합리적이라는, 그래서 어떠한 손익계산 없이 사랑과 우애로 살아간다는 가족 사회에서 부담스러운 존재인 노인은 소외되었다. 남겨진 부모는 안쓰럽고 무관심한 자식들은 비정하지만, 각자 사정이 있을 자식들을 마냥 탓할 수도 없다. 제 살길을 찾아간 자식들은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또 다른 가정을 꾸리고 기존의 가족은 분리되거나 해체된다. 그리고 그 자식이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정성으로 키운 그들의 자식들은 예전의 그들이 그랬듯 새로운 가정으로 떠나갈 것이다.

 

수많은 가족 영화가 있지만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유난히 아픈 이유는 우리 시대의 소외된 가족 구성원을 다루는 데에 있다. 젊은 날 가족을 위해 희생했지만, 세월이 흘러 가족의 가장자리에 웅크리고 있는 노부모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아픈 손가락일 것이다. 더 이상 그들을 잊고 살 수는 없다. 끝없이 반복되는 가족의 탄생과 분리와 해체 속에서 그들의 과거는 우리의 현재이며, 그들의 현재는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