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대단한 총리 후보가 여태껏 있었나 싶다. 병역, 탈세,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같은 인사청문회 단골 기준을 통과하기도 전에 입 하나로 전국을 혼돈에 빠트렸다. 그가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위공직자 지명 과정에 새로운 기준, 교회에서 친일발언을 한 적이 있는가을 세웠다는 점은 높게 평가하고 싶다. 이쯤에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런 사람이 총리 후보로 지명된 것일까?



문창극 후보자는 언론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75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95년 정치부 부장으로 승진했고 논설위원, 논설주간을 거친 후 06년 중앙일보 주필이 됐다. 퇴직 후 이런저런 자리를 거치긴 했지만 석좌교수, 초빙교수 등 명예직이 대부분이다. 


일부 언론은 초기부터 이러한 사실을 문제삼아 문창극 후보자가 과연 국무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해왔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행정부를 통솔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는다. 대통령 궐위시 바로 권력을 승계한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스타일에 따라 총리의 위상에 변화가 있긴 했지만 정치경험도 행정경험도 없는 언론인이 총리로 지명된 경우는 처음이다. 


하지만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경력을 단순히 역량 부족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올해로 청와대 경험 28년+2년=30년 차인 노련한 박근혜 대통령이 뚜렷한 이유 없이 교회를 돌아다니며 이상한 말만 하던 풋내기를 국무총리로 지명했을리는 없다. 사실 총리 지명을 통해 말하자고 했던 행간 속의 메시지는 청년들에게 ‘스펙초월채용’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계획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건국이래 최대스펙으로 무장했다는 20대는 학벌, 학점, 어학점수,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인턴 경력을 두루 갖추고도 500대기업에 입사하지 못해 쩔쩔맨다. 스펙 트렌드도 나날히 진화해서 단순히 학점, 어학점수만 보던 시기를 지나 이젠 스토리가 스펙이라니, 실무경험이 중요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문창극 후보자가 지금 평균 20대의 스펙의 절반만 대학 졸업할 때 갖췄다면 중앙일보가 아니라 조선일보를 들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튼 수 많은 20대 대학생들이 취업을 앞두고 스펙이라는 장벽 앞에서 절망한다. 


박근혜 정부라고 청년실업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는건 아니다. 세월호에서 단 한 명도 구조를 못하니 해경을 해체하던 그 추진력을 밑천삼아 스펙으로 고통받는 구직자의 이력서에서 스펙을 적는 공간을 모두 없애버리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바로 청년 취업 대책으로 강조하는 ‘스펙초월채용’이다.



허나 이력서를 50장 써도 면접 까지 10번을 통과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20대 대학생들의 눈에 ‘스펙초월채용’같은 단어가 눈에 들어올리 만무하다. 멀쩡한 스펙이 있는 사람도 취업이 안 되는 마당에 스펙을 초월해서 청년 구직자들이 모두 행복하게 취업에 성공한다는 결말을 그대로 믿는 멍청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취업을 앞둔 대학생의 좌절감은 날로 커져만 간다. 


여기서 박근혜 대통령은 통 큰 결단으로 무스펙자 문창극씨를 총리로 지명했다. 행정부의 2인자인 국무총리 자리도 전혀 경험없는 사람이 당당히 입성하는 마당이다. 국무총리 앞에서 전업투자자가 아닌 일반인은 이름을 들어본적도 없던 500대 대기업 입사가 문제일리 없다. 입사하면 커피타고 복사기 돌리는 법 부터 배운다는 신입사원에게 필요되는 업무능력이 절대로 국무총리보다 더 높진 않을 것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두 팔 들어 적극 환영한다! 수 백 만 청년 실업자에게 “저렇게 스펙이 없어도 단지 훌륭한 인격 만으로 총리를 하는 마당에” 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비록 문창극 후보자가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해 총리가 된다 하더라도 청년실업문제가 실제 해결될일은 없겠지만, 어차피 누가 국무총리 자리에 앉든 이 정부에서 진지한 청년실업을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크게 실망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