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전쟁기념관에서는 <원피스 특별기획전 : 메모리얼 로그(이하 ‘원피스 展’)>가 열릴 예정이었다. 적어도 7월 9일까지는 그랬다. 전쟁기념관 측은 “작품에 문제가 전혀 없고 전시에도 문제가 없다는 것 잘 안다. 하지만 정치적 논란에 얽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대관을 취소하겠다. 미안하다”라며 취소를 통보했다. 주최 측인 ㈜WAYSBE은 아직 취소 공문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일단은 진행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러나 뉴스컬쳐에 따르면, 결국 원피스 展은 7월 10일 전쟁기념관 측의 공문으로 취소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전쟁기념관은 오픈 3일 전에 취소를 통보했다 ⓒ원피스(오다 에이치로 作)



전쟁기념관이 취소사유로 제시한 ‘정치적 논란’의 중심엔 욱일승천기가 있다. 일본의 욱일승천기가 만화 <원피스> 속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전쟁기념관이라는, 민족사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가 나오는 만화를 내건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설령 원작가인 오다 에이치로가 우익적 의도로 그려 넣은 것이 아니라 한들 말이다. 욱일승천기는 이를 그린 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상징 ‘자체’로 문제 있기 때문에, 욱일승천기의 문제점에 대해선 논의하고 싶지 않다.

 

이 글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행정기관의 안일한 태도다. 전쟁기념관 측은 사전심의절차에서 과연 무엇을 했는가? (만화가 제국주의적이든 아니든 간에) ‘일본’ 만화의 전시라면 사전심의를 더욱더 철저하게 했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원피스>가 욱일승천기로 구설수에 오른 일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원피스 골수팬만 아는 사실도 아니고, 포털에 흔히 떠도는 내용이다.

 

만화 <원피스>는 278화(30권 수록, 2003년 12월 19일 발매), 352화(37권 수록, 2005년 6월 30일 발매), 655화(66권 수록, 2012년 5월 2일 발매) 등에 욱일승천기 또는 욱일승천기가 변형된 문양이 등장했고, 이는 작년과 재작년 국민일보, 노컷뉴스, 동아일보 등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된 바 있다. 이렇게 접근하기 쉬운 정보를 놓쳤다면 전쟁기념관 측이 제대로 된 심의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보고도 그냥 넘어갔다면 전쟁기념관 측이 자신들이 담당하는 공간에 대한 이해나 신념을 갖고 있긴 한 건지 의심할 수 있다. 어느 가정을 따르든 전쟁기념관은 비난을 면할 수 없다.

 

필자는 지난 4월 29일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이하 ‘뷰민라’)의 취소 소식을 소재로 칼럼을 쓴 바 있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고양문화재단 측의 일방적인 ‘통보’ 때문에 예정됐던 행사가 하루 전에 취소되었다. 이 두가지 사건의 ‘취소 통보’ 스토리는 거의 같다. 뷰민라의 경우, 새누리당 백성운 고양시장 예비후보의 비난으로 취소사태까지 갔다. 원피스 전시의 경우도, 7월 2일 게제된 민원인의 게시글로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두 행정기관 모두 취소 절차에 신의는 물론 어떠한 ‘신념’도 없었다. 단지 짧은 생각과 몰이해, 그리고 ‘눈치보기’만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행정기관의 실수를 덮어주는 것은 국민의 혈세다. 뷰민라의 경우 주최사 민트페이퍼는 고양시문화재단에 손해배상 청구를 냈다. 원피스 전 역시 행사취소로 법정분쟁을 면치 못할 것이다. 

 

몇몇 고유명사만 바뀐 채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것은, 칼럼 쓰는 이에겐 굉장히 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어만 조금 바꾸고 논리를 그대로 세워 재활용하면 되니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칼럼을 다시 쓰고 싶지 않다. 더이상 행정기관이 생각 없이 일을 진행하고, 논란이 되자 눈치 보기에 급급해 행사 직전에 취소를 '통보'하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