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과 자동차, 어느 것이 더 위험할까. 심리학자 폴 슬로빅의 연구에 따르면 전문가는 자동차를, 일반인들은 원자력발전소를 더 위험한 요소로 판단했다. 심지어 전문가는 원자력발전소가 흡연, 음주, 권총, 외과수술보다도 덜 위험하다고 보았다. ‘연간 사망자 수’를 기준으로 위험요소를 산정한 까닭이다. 반면 일반인들은 직접적인 사망률보다 미지의 요소가 가져올 잠재적인 위험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따라서 당장 통계 수치로 피해나 부작용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위험성을 내재한 원자력 발전소를 가장 위험한 요소로 꼽았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3일 밤과 4일 새벽에 걸쳐 울산 동구 해역에서 발생한 3차례의 지진을 두고 일반 시민과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전문가 집단의 의견이 나뉘었다. 시민들은 상업용 원자로가 밀집된 고리읍과 멀지 않은 곳에서 지진이 발생한 것을 두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측은 “원자력발전소에 내진 설계가 잘 갖춰져 있으므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고리원자력본부 홈페이지 역시 원전의 안정성을 강조하며 ‘안전설계’ ‘안전설비’ ‘안전운영’을 통해 원전을 운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운전원과 정비원의 교육 훈련을 통해 인적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덧붙이기도 했다.

 

내진 설계나 설비, 안전을 강조한 운영, 직원 교육 훈련 중 어느 것 하나도 시민의 불안을 뿌리 뽑지는 못한다. 원전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전 전문가, 일반인 할 것 없이 어느 누구도 잠재적인 위험이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 알지 못한다. 2012년 정전사고로 인해 원전 내부 비상발전기까지 작동 중단되었던 사고나 후쿠시마 사태 당시와 같은 천재지변을 예상하지 못했다. 또한 안전을 강조해 마지않던 원전 관계자 스스로가 시험성적서를 위변조해 국민의 뒤통수를 치는 일 역시 계획에는 없던 일이다. 이처럼 애초 설계해둔 매뉴얼을 뛰어넘는 요소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는 것이 해당 문제의 핵심이다.

 

원전에 대한 불안은 무지에서 비롯한 감정적 태도가 아니며, 단지 위험 요소를 어떻게 산정하는가 하는 문제다. 그러나 오늘날 위험 요소를 산정해 공동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밝고 희망찬 한수원의 정책 홍보, 교과서속 지식과 다르지 않은 과학적 근거, 통계 수치에 떠밀렸다. 잠재적인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 상태로 원전 비리에 휩싸인 사건 당사자들의 해명만으로 원전 정책이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운영 절차가 투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덮어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어디서 많이 보던 B급 재난영화의 전개와 다르지 않다.

 

현실은 언제나 밝고 희망차지도, 교과서속 지식과 부합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낙관적인 전망 아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식의 발상은 오만하다. 자연재해든 인재든 오늘날 위험은 구조적으로 피할 수 없는 요소다. 불확실성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며,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언사라 치부되어서도 안 된다. 효율성을 필두로 한 경제적 가치를 위해 삶을 담보로 맡기고 싶지 않은 것이 어째서 유난스러운 언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