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구조조정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군대를 다녀오니 소속 학과가 사라져 있었다’, ‘휴학을 하고 돌아오니 전혀 다른 학과 소속이 되어 있었다’ 같은 이야기는 더 이상 일반 학생들과 동떨어진 도시 괴담이 아니다. 대학에 가면 원하는 학과에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은 이제 거짓말이 됐다.

<고함20>은 다섯 번에 걸쳐 대학가의 구조조정 소식을 기획기사로 다룬다. 이번 기획이 학문의 전당으로써의 가치를 잃은 한국 대학에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길 바란다.


대학 구조 개혁 정책이 본격화됨에 따라 ‘취업률’은 구조조정의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손쉬운 잣대가 됐다. 취업률이 낮은 과를 계속 지원해주는 것은 장기적인 차원에서 학생 자신과 학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취업률이 낮은 과가 구조조정의 주요 희생양이 됐다.


대표적으로, 취업률이 낮다고 여겨지는 예체능 계열의 학과들이 구조조정과 씨름하고 있다. 예체능 계열 중 순수미술이나 문예창작과 같이 취업보다는 순수 창작을 목적으로 하는 학과들이 쉽게 그 표적이 된다. 가장 먼저 올해 있었던 서일대학교 문예창작과의 구조조정 사례를 들 수 있다. 서일대는 올해 3월,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방침에 의거하여 문예창작과, 연극과, 사회체육골프과 등을 폐과하겠다고 밝혔다. 모두 취업률을 위시한 정부의 전문대학 발전 계획 취지와는 맞지 않는 과들이다.

 

©서일대학교 문예창작과 페이스북 페이지


문창과 학생들은 이와 같은 학교의 일방적인 폐과 결정에 반발했다. 그러자 학교는 미디어출판과와 문예창작과를 통합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책을 출판하고, 만드는 공정과 관련 있는 공업계열의 ‘출판’과 문학이라는 예술 분야를 창조해내는 ‘창작‘을 합치는 것이기에 상식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결정이다. 과의 특성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구조조정이 막무가내식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일부 사회과학 계열의 학과들과, 옛날부터 취업이 어렵기로 악명 높았던 ‘문사철’을 필두로 한 인문계열 역시 구조조정을 피하기 힘들다. 중앙대학교의 경우 2008년 두산그룹의 인수 이후 경제적 효율성의 논리에 입각하여 많은 구조조정과 학생들에 대한 탄압이 벌어졌다. 중앙대학교는 특히 작년 전공 선택 비율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비교민속학, 아동복지학, 청소년학, 가족복지학 등 4개 과를 폐지한 바 있다. 비교민속학과의 경우 자문화와 타문화를 비교함으로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사회의 발전을 모색한다는 인문학적 목표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낮고, 이들의 취업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학교의 발전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는 구조조정을 감행해버린 것이다.

 

©캠퍼스위크


폐과된 학과들은 2014년부터 신입생을 받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는 재학생들을 위해 2017년까지 전공 수업을 들을 권리를 보장해주겠다고 하였으나 수업의 질이 점점 떨어질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비교민속학과에 2011년, 2012년에 입학한 학생들은 인문사회계열 내 타 학과로 전과가 가능하도록 보장되었다. 하지만 전과가 실제로 학생들이 원하는 대안이고,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기에는 어렵다.


중앙대의 학과 구조조정 시기, 청소년학과 학생회장이었던 허경 씨는 대학 당국의 구조조정에 아무런 기준이 없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중앙대가 학과 구조조정의 신호탄 급이었다 말했다. “그 과정에서 학교는 합리적으로 생각하자, 수익성을 생각하자, 발전해야 한다는 논리만을 주장했어요.” 허경 씨는 학교가 그러한 단순한 논리를 기반으로 취업률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학과를 평가했음을 지적했다. 중앙대 청소년학과의 경우 서울권 내의 4년제 대학에 설치된 같은 학과들과 취업률을 비교당했다. 일단 서울권에 있는 청소년 관련 학과는 한국체육대학교를 비롯하여 적은 수인데다가, 체육대학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취업률 비교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취업률이라는 잣대를 통해 학과를 통폐합한 과정에는 학과의 커리큘럼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허경 씨에 따르면 청소년학과는 일반적인 사회복지학과와는 조금 다르다. 전공 필수로 사회복지 관련 과목은 한 과목 밖에 듣지 않는다. 실질적인 학습 과정은 청소년을 이해하기 위한 심리학과 더욱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앙대는 그러한 학습 내용에 대한 고려는 없이 통폐합을 추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요즘에도 단순한 수익성 논리로 통폐합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많이 안타까워요. 서울대도 이번에 경영인 출신 이사장이 부임했다던데... 궁극적으로는 청소년들이 학과 선택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에 따라 할 수 없는 현실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든 행동으로 보여지고, 실질적인 움직임이 있길 바랍니다”라고 말을 마쳤다.


구조조정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올해 4월 청주대 사회학과 역시 급작스러운 폐과 통보를 받았다. 이 과정은 교수진들과 학생들과 어떠한 만남과 의논 없이 일방적인 통보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이러한 폐과 과정이 ‘날치기’와 같았음을 강조하며 학교 측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벌여 왔다. 그리고 현재는 폐과 조치를 두고 법정에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10일 청주지방법원에서 1차 공판이 있었다. 이는 원고 출석 없이 서로의 입장만을 전달하고 짧게 끝이 났다. 청주대 사회학과 폐지를 반대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는 메신저를 통해 2차 공판이 8월 28일에 있을 예정이며,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며 경과를 물어본 기자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표했다.


연구나 창작이 주가 될 수밖에 없는 특성을 지닌 학과들이 취업과 성과로 평가받고, 구조조정을 한 대학에 가산점을 준다는 식의 정책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학과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은 철저히 배제된다. 구조조정을 논의할 때 학생들의 의사를 수렴하는 과정은 없다. 비민주적인 통보 다음에는 비합리적인 구조조정이 온다. 폐과의 경우 재학생들을 고려한 대책은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또 어영부영 통합이 진행된다고 해도 통합의 대상이 되는 학과들의 특성에 대한 고려, 커리큘럼과 운영 방향에 대한 고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죽은 대학의 사회] 시리즈

① 대학 구조 개혁, 학과 통폐합 가속화

②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대학들

③ 경영학 쏠림 현상, 취업양성소로 탈바꿈한 대학들

④ 뭉쳐야 산다, 대학 구조조정에 맞서는 사람들

⑤ 대학구조조정, 앞으로 남은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