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마라톤과 같아서 출발이 만사가 아니요, 지구력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돕슨이 남긴 명언이다. 그런데 한국의 결혼 풍경을 보자면 결혼의 ‘출발’에 있어서도 지구력이 상당히 중요한 듯하다. 사랑하는 연인이 결혼을 약속하고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은 순간, 험난한 결혼 준비 여정이 시작된다. 예식장 예약부터 주례 섭외, 예단…. 예비 신부들이 가장 스트레스 받는다는 스드메(촬영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의 결혼준비 3종 세트)까지. 결혼업체에서 배포한 ‘결혼준비 체크리스트’를 살피는 예비부부의 얼굴은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비장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결혼 문화가 점점 허례허식과 과소비로 물들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조금 색다른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존의 결혼식에 회의를 느낀 일부 커플들이 ‘나만의 결혼식’을 디자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덜 화려하고 덜 갖춰져 있어도 괜찮다. 더 특별하고 값진 의미를 지녀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는 이색 결혼 문화를 살펴보자.

1) 셀프 웨딩 - 우리 업체 안 끼고’ 결혼했어요

 

물과 단무지만 SELF인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결혼 준비도 업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준비하는 셀프웨딩족이 늘고 있다. 오랜 경력을 가진 전문업체가 해주는 것보다 훨씬 소박하고 어설프지만, 거부할 수 없는 셀프 웨딩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비용이 저렴하다. 결혼 준비 과정에선 해야 할 것도 사야 할 것도 많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젊은 커플들은 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온라인사이트를 통해 웨딩드레스의 가격을 비교하여 구매 혹은 대여하고, 시청 웨딩홀이나 연회장과 직접 컨택하여 예약하는 셀프 웨딩은 전문업체를 통해 하는 것보다 훨씬 싸게 이용할 수 있다. 지인에게 부탁하여 배경 좋은 곳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포토북을 제작하는 식의 셀프웨딩앨범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셀프 웨딩의 또 다른 매력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결혼식을 만드는 데에 있다. 결혼식에서 주례를 없애고 양가 부모님의 1분 덕담 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신랑과 신부가 각자 준비해온 결혼 서약서를 낭독하는 일도, 모두 함께 즐기는 댄스 타임을 진행하는 것도 그들의 자유다. 물론 웨딩업체와 함께하는 결혼 준비는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패키지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내가 원하지 않는 과정도 하게 될 수 있다. 나만의 개성을 중요시하는 커플들에게는 남들과 똑같이 진행되는 형식적인 결혼식보다는 셀프결혼식이 더 적합하다. 조금 번거롭고 부족할지 몰라도 셀프 웨딩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특별할 날을 내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준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특별’하기 때문이다.

2) 소규모 웨딩 - ‘허례허식’을 버렸다

“한 커플의 결혼식이 끝나면 곧바로 이어 다른 커플의 결혼식이 진행돼요. 몇 번 진행하다 보면 그 식이 그 식 같죠”


6개월간 대형 웨딩홀에서 아르바이트했다는 진희 씨(가명, 21)는 자신이 미래에 결혼한다면 반드시 소규모 웨딩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러 커플이 결혼하는 모습을 지켜본 그녀는 대규모 웨딩홀에서 수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는 화려한 결혼식의 장점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고 지적한다. 한 식장에서 하루에도 몇 커플이 결혼식을 하다 보니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정해진 식순에 따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식을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또, 결혼을 축하하러 온 하객 중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축의금만 전달하고 가거나, 도중에 식권을 받고 뷔페에 가는 이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진희 씨처럼 50~100명 남짓의 하객만 초대하여 작은 규모로 결혼식을 올리는 ‘소규모 웨딩’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다. 가족과 친한 지인들만 함께하는 소규모 웨딩은 규모가 작아서 일반 예식장이 아닌 하우스 웨딩이나 야외 카페, 성당 등에서 진행된다. 따라서 신랑 신부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식을 구성할 수 있고, 오랜 시간 여유롭게 파티를 즐길 수도 있다. 보다 많은 사람과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친한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관심과 집중 속에서 받은 축복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지난해 소규모로 진행된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D씨(28, 여)는 “거창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진행되는 모습이 예뻤다”며 “특히 소규모라 결혼식 내내 하객들의 분위기가 산만하지 않고 화기애애했다”는 것을 소규모 웨딩의 장점으로 꼽았다.


3) 에코 웨딩 –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결혼식

화려한 결혼식의 이면에는 환경오염이라는 어둠이 존재한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신랑 신부를 빛나게 해준 소품들은 식이 끝나는 순간 쓰레기통에 처박힌다. 매년 약 4억 2,500만 송이의 결혼식 장식용 꽃이 단 30분간 사용된 후 버려진다는 사실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사람들이 이 문제를 인식함에 따라 결혼식 후에 버려지는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친환경 결혼식’이 등장했고, 가수 이효리를 비롯한 유명 연예인들도 에코 웨딩을 치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에코 웨딩을 실천하는 친환경 기업 ‘대지를위한바느질’에 따르면 식물의 뿌리를 살려 부케나 장식용 꽃으로 사용함으로써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부산여성회관이 주최한 에코웨딩 이벤트에서 뿌리를 자르지 않은 식물로 부케를 만들어 결혼식 후 화분에 옮겨 담았다. 또한, 화분으로 예식장을 장식하여 식이 끝난 후 하객들에게 답례품으로 나눠주기도 했다. 


이외에도 석유에서 추출한 합성섬유로 만든 웨딩드레스가 아니라 옥수수, 한지 등의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친환경 재료로 제작한 청첩장을 돌리는 것 모두 에코 웨딩의 일환이다. 에코 웨딩은 기존의 결혼식과 비교하여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는 미미하지만, 자연과 함께한다는 긍정적인 취지에 힘입어 ‘착한 결혼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