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점주 ㄱ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2년 동안 일한 아르바이트생 때문이다. 알바생은 퇴직과 동시에 퇴직금과 주휴수당을 정산해 줄 것을 청구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700만원. 편의점은 대기업 프랜차이즈였기 때문에 점주는 매월 본사에 돈을 내야 했다. 거기에 가게유지비를 빼면 점주의 수익은 100만원도 안 된다. 이렇게 팍팍한 생활에 700만원이라니. 점주는 억울했다. 알바생의 뒤통수가 괘씸했다. “나는 남들 다 안 지키는 최저임금까지 지켜줬는데. 왜 내가 수당까지 챙겨줘야 해?” 


이것은 지난 9월 22일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에 ‘미친 편의점 알바가 편의점 요구’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의 내용이다. 근 한 달이 지난 10월 16일, 성륜(필명) 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 글은 자신이 꾸며낸 내용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실 편의점 점주가 아니라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잠깐 목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얼마나 된다고 굳이 말해서 서로 얼굴 붉힐까?


성륜 씨가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편의점에서 일하기 전, 일 년간 주방에서 일했다. 그는 성실하게 일했다. 반면, 그곳에는 말도 없이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말에 바빠서 힘들기도 하고, 놀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으니깐 그런 사람들이 이해는 가요. 사실 당연한 거예요. 일에 대한 대가가 적으니까요. 일하는 사람도, 고용한 사람도 페널티를 갖고 일하는 거죠. 그럼에도 사장이 계속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을 쓰는 이유는 뭘까요? 돈 때문이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을 쓰려면 돈을 더 많이 주면 돼요.” 


이 원리를 깨달은 사장은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그러나 성륜 씨는 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성실했기 때문이다. “해준 만큼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고, 해준 만큼 당연히 여기는 사람이 있어요. 사장은 후자였죠. ‘주방에서 일하는 친구(성륜 씨)는 인성이 됐다. 돈을 적게 줘도 안 도망간다’고 생각했나 봐요. 원래는 주방 일이랑 배달 일 모두 같은 시급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 대우가 달라졌어요.” 같은 시급을 받고 꾸준히 일하던 주방직 성륜 씨와 달리, 사람이 계속 도망가던 배달직의 시급은 계속 올라갔다. 시급이 달라지니 박탈감이 들고,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를 분노케 한 건 돈이 아니었다. 자신의 노동을 당연히 생각하는 사장의 태도였다. “사장이 사람 없다고 해서 도와준 적이 있어요, 똑같은 시간을 일했는데 새로 들어온 사람에겐 그만둘까 봐 특별수당까지 챙겨 준 반면 제겐 수고했다는 문자 한 통도 없더라고요.”


성륜 씨는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불합리한 상황’에 화가 났다. “제가 일할 때만 해도 근로기준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별로 없었어요. ‘잠깐 목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얼마나 된다고 서로 얼굴 붉힐까’라는 생각들이 많았죠. 그런데 이건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법에 적힌 내 권리를 요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사장에게 문자를 보내 퇴직금, 주휴수당, 야간수당을 요구했다. 


 ⓒ최규석 <송곳>




사장은 끝까지 그를 무심하게 대했다. “저는 사장이 ‘미안하다. 우리 얘기를 해보자’며 내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사장에게 심한 욕을 먹었어요. ‘너는 준 돈만큼의 일도 못하는 사람이었다’라는 식으로요.”



그놈의 “情情情情―”


그는 사장의 모욕을 듣던 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사장은 “그 직원은 오전 7시까지 3만원만 받아도 아무 불평 없이 일하는데 너는 왜 그러냐?”고 말했다. ‘그 직원’은 7년 동안 최저시급도 못 받고 주방에서 일하던 4살 차이의 형이었다. “제 억울함이 그 형에 대한 의로움으로 번지더라고요.” 그는 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형에게 전화했다. “형에게 제가 절차를 아니깐 도와주겠다고 얘기를 꺼냈어요. 결과는 예상과 달랐어요. 사장은 ‘그 사람은 정이 있어 최저시급을 안 줘도 그 사람은 만족한다. 문제없다’는 태도로 나왔는데, 그 형도 그 태도를 그대로 체화했더라고요. 형은 ‘너는 인간적이지 않다. 어떻게 피고용자가 그럴 수 있냐?’고 반문했어요.”


“사람이 부당한 일을 당하면 슬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요.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두 가지로 나눠요. 현 상황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사람과 “남들도 다 그러니깐 괜찮은 거다. 나는 부끄러울 필요가 없다”고 방어기제를 만드는 사람으로요. 형은 후자였는데, 어떻게 보면 노예 같지 않나요? 노예들이 처음 붙잡히면 저항(반응)을 하다가 체념을 한대요. ‘누구 쇠사슬이 더 빛나는지, 무거운지’ 자랑하고, 꿈도 자유인이 아니라 상급노예가 되는 걸로 바뀌죠. 그 형은 7년 동안 일하면서 그 상태까지 간 거예요“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권리를 요구한다면, 

나는 이 사회 속 공공연한 악(惡)이 되는 걸까?“


그는 노동청에 진정서를 내고 기다리는 동안 편의점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그가 일한 편의점 점주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주지 않았다. 교육할 때 시급을 정산해주지도 않았다. “편의점에서는 한 달 동안 일했어요. 이젠 제 권리를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아니까, 일하면서 제가 일했다는 증거들을 모아뒀죠. 그러다가 만약 한 달이 아니라 1년, 2년 동안 여기서 일할 경우를 상상해봤어요. 2년 동안 일하면서 점주가 챙겨주지 않은 주휴수당과 퇴직금을 합치면 700만원이 되더라고요. 또 ‘만약 이 내용을 인터넷에 올리면 반응이 어떨까? 사람들은 최저임금 등을 지켜서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그 형처럼 체념하고 관습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조작글을 쓰는 이유는 관심 때문이죠. 되게 찌질한 짓이지만(웃음). 그래도 100% 조작은 아니에요. 수치만 부풀렸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니까요.” 사람들의 반응을 많이 얻어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 성륜 씨는 알바생이 아닌 점주 입장에서 글을 올렸다. 게시판도 연령층이 높고, 경제활동 인구가 많은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로 엄선했다. “점주가 대변하는 건 현실이에요. 최저임금 지급하지 않는다는 종류의 글은 부지로 올라와요. 그런 글들은 징징대는 글로 금방 묻혀버려요. 모두가 근로기준법을 안 지키는 게 잘못된 줄 알지만, 하지만 모두가 외면하죠. 그건 일종의 ‘금기’니까요.“



<송곳> 2-3 (2014.4.14) ⓒ최규석 



그래서 점주 입장에서 ‘누가 최저시급을 주나? 근로기준법 다 지키면 누가 자영업 하나?'라는 식으로 금기를 묘하게 긁었어요. 이러면 사람들이 격하게 공감하든 분노하든 이유로 한마디씩 남기죠. 글을 한 번만 올리면 사람들이 낚시글로 생각할 거 같아서 글을 3일간 나눠서 올리고, 일주일 뒤에 댓글을 확인했어요. 점주를 욕하는 댓글이 많았어요. 역시나 앞서 말한 사장이나 7년 동안 일한 형처럼 ‘정’을 운운하며 알바가 뒤통수쳤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죠. 우리 사회는 ‘정(情)’ 때문에 대단한 사회라고 칭찬하는데, 사람들이 정이 뭔지 제대로 정의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점주가 마땅히 해줘야 할 것을 지키면서 정을 얘기해야 맞죠. 적법하게 챙겨주지도 않으면서 정을 얘기하면 언어도단일 뿐이에요.” 


기자가 “조작글에서 왜 알바생은 근무기간 중이 아니라 퇴직하면서 권리를 요구한 걸로 설정했냐”고 묻자, 그는 “알바생은 약자 중 약자예요.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요. 그런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권리를 찾는 건 말이 불가능하죠. (법대로 요구하는 것이) 사회적 금기니깐. 이건 병폐인데, 합법적인 병폐예요. 상시 근로자 5인 이하 영업장엔 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 의무가 적용 안 돼요. 사장님께 근무 기간 중간에 적법한 권리를 요구하면, 권리는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겠지만 일은 더 못하죠”라고 답했다.



“사장님. 정중하게 말씀드립니다만 

부디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솔직해지시기 바랍니다”


성륜 씨는 주식갤러리에 올린 글이 조작임을 밝힌 뒤, 자신의 블로그에 다시 한 번 글을 올렸다. 몇몇 점주들은 비밀 댓글로 “나도 힘들다. 알바가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다”고 하소연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하소연은 점주들이 자신에게 거짓말하는 거예요. 자기들도 자신이 힘들다고 다른 이를 착취하는 게 정당화가 안 된다는 걸, 그렇다고 불법이 합법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물론 사람이 가끔은 법을 어길 수도 있어요. 그런데 최소한 법을 어기는 게 당연하다는 의식은 없어야죠. 법을 어길 수도 있는데,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 ‘(다들 그러는데) 왜 나만 잡지?’라고 말하면 안 되잖아요.“


“사회 전반적으로 원칙/법에 대한 의식이 결여돼있거나 희미해요. 세월호도 안전원칙이 있었지만 ‘누가 원칙을 다 지키고 사나?’라는 생각에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돈 있고 권력 있는 기득권만 원칙을 안 지키는 게 아니라 원칙을 안 지켜도 된다는 의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어요. 정은 그 매개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