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치러진 2010 학업성취도평가(이하 일제고사)를 놓고 말들이 많다. 이번 일제고사는 지난 6.2 지방선거 때 전국적으로 많은 수의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어 직무를 시작한 후 처음 맞는 교육계의 큰 사건이어서 더욱 주목되기도 한다.

전국적으로 시험 1일차에 433명, 2일차에 333명의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했다. 이 학생들은 시험 당일 각 학교가 마련한 대체학습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시험을 거부한 학생들을 ‘무단’ 결석 혹은 결과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433명의 학생들은 어쨌든 어느 정도의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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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라는 제도 그 자체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일제고사를 거부한 학생들에게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어느 지역의 학생들인지, 대안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아닌지, 청소년 인권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언론에서 이와 관련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학생들의 시험 거부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다.

하나, 일제고사를 거부한 학생들은 아직 판단력이 성숙되지 않은 청소년들이다. 그들의 판단이 스스로의 생각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전교조 교사들의 부추김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시험을 빠질 수 있다는 데 학생들이 그냥 빠지지 않겠나. 둘, 어릴 때는 뭔가 멋져 보이는 행동을 쉽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학생들도 지금은 일제고사를 거부했지만, 나중이 되면 일제고사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결국 ‘일제고사 거부’라는 행동을 단지 ‘어리기 때문에’ 저지른 것으로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 아이들의 사고력과 판단력은 애초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지지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 역시 ‘유아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20대 중후반만 넘기면 일제고사를 보통 다 찬성한다고 단정해 버리는 그들에 의해,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일을 ‘아직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시당하고 폄하되기 일쑤다.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생각을 인터넷 상에서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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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당연한 듯 여겨지고 있다. 판단력도 사고력도 떨어지고 지식도 모자라는 청소년들에게는 선거권이 없고, 그들의 권리는 청소년보호법에서부터 학교와 가정 내에서의 규제, 무시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원으로 제재 당한다. 물론 이러한 제재가 모두 부당한 것은 아니다. 술, 담배 등의 판매에 대한 규제는 마땅히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실행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을 사회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절대로 합의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자부터 지속적으로 어린애 취급당하는 청소년들은 아무래도 억울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크게는 두발 규제 철폐, 교복 자율화, 일제고사 금지, 내신등급제 반대 등의 사회적 의제를 제시하려는 청소년들, 작게는 ‘엄마, 나 학원 안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은 ‘네가 아직 어려서 그렇다. 나이가 들면 생각이 달라 질 것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청소년들의 의견이 얼마나 타당한지, 근거가 얼마나 튼실한지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수업시간에 어떤 학생이 선생님이 틀리게 설명한 것을 지적하는 경우에도 그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한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쿨하게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기 보다는, 왜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 지적하느냐며 아이를 버릇없는 아이로 몰아가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들의 생각과 의견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도저히 창의력, 사고력 있는 인재가 자라날 수 없다. 그들의 새로운 생각, 독특한 발상, ‘다른’ 의견들이 ‘적은 나이’라는 이유만으로 폄하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느니 멍청하다느니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사고력, 창의력의 부족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언제나 책임을 ‘놀기만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도 돌린다. 하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언제나 그러한 보수적 태도로 일관하는 그들의 행동 방식에 있다.

매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제3자 효과’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미디어의 영향력을 평가할 때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미디어의 영향력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미디어의 영향력 사이에서 이중적인 잣대를 사용한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이다. 다른 사람들은 미디어에 의해 쉽게 의견을 수정하거나 폭력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청소년들을 무시하는 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자신들에 비해 정신적으로 나약한 존재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과 대화하거나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나이를 통한 권력으로만 억압하려고 한다.

청소년들은 어려서 아직 모른다고 말하는 사회와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은 이렇게 청소년들을 무시하는 사회 속에서 나이를 먹으며 사고력과 창의력을 잃었다고. ‘나이가 많으면 더 올바른 사고를 한다’는 비상식적인 명제를 부정하고 청소년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절실하게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