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비에이터>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하워드 휴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가 여자친구인 본인을 두고 다른 여자들과 끊임없이 만나는 것에 대해 캐서린 햅번(케이트 블란쳇 분)이 이의제기를 하자 이렇게 말한다. “너도 다윈을 알다시피 남자들은 동물이라고.” 사회가 “남자는 원래...” 이런 주장을 무력화 시키려고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반론조차 막히도록 만들어 버렸다.



 영화 <에비에이터>의 하워드 휴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캐서린 햅번(케이트 블란쳇 분)


20년간 언론과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어온 진화심리학은 “남성의 경우 아무하고나 섹스하는 사람이 후손의 생존에 유리했을 것으로 ‘예측’ 되므로 그러한 유전자가 많이 살아남아 우리에게도 그 유전자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이나 가능성과 같은 단어를 빼놓고 증명된 사실처럼 이야기한다. 그렇게 말하는 편이 대중의 관심을 끌고 문장 만들기도 편하겠지만, 관련 과학적 지식에 큰 신경을 기울이지 않을 대중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는다. 어떤 문제가 이슈가 될 때마다 진화심리학은 그럴듯한 설명을 내어놓는다. 최근에 키 작은 남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일명 “루저녀”사건이 터지자, 진화심리학은 여자가 대체적으로 키 큰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과거의 생존에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어놓았다.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특히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생물학을 전공하는 사람 중에 남성들이 많다는 것도 진화심리학이 남성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되겠지만 이 학문 자체가 남성들에게 솔깃하다는 점이 가장 큰 부분일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성(性)을 다룰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은 남성들이 몸매가 좋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배우자가 있음에도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다른 여자를 범하고 싶은 감정을 정당화시키는 방향으로 이야기 해왔다. 그에 대한 반대 의견이 요즘 등장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힐 교수의 아체족 실험결과에 따르면 강간은 비용이 효과의 10배나 된다는 것,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문화에서만 여성의 모래시계형 몸매를 좋아하였고, 의붓자식을 학대하는 비율이 친자식을 학대하는 비율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것에도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재미없는”새로운 이론들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화심리학자들 그리고 그들의 인터넷 추종자들은 사이비과학자들의 특징인 과학지가 아닌 대중매체로 어필하기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포털사이트에서, 흥미로운 제목을 한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을 한 두 번 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진화심리학의 과학적 문제점


진화심리학은 “진화과정에 도움을 준 행동들은 뇌 속에 심어진 유전자 기반의 인지 ‘모듈’ 수백 가지의 결과물이었다는 가설에 따른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모듈과 모듈이 촉발하는 행동은 유전자에 존재하기 때문에 후대로 전해 내려오며 결국 보편적 인간성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newsweek) 이러한 보편적 인간성은 현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현대에 적응하기에 적합한 것이라기 보다는 석기시대의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그 시대로 돌아가 실험할 수 없기에 일반적으로 진화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수단은 설문조사이다. 인종과 국적이 각기 다른 집단의 남성에게 각기 비율이 다른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고, 보통 모래시계 체형을 좋아한다고 하면, 이는 진화의 산물이라고 가정하고 결과에 따른 원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진화론은 지질학 연구 등을 통해 증거를 찾고 과학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지만, 진화심리학은 과학적 증명과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언제나 ‘가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분야가 아무리 발달된다고 하여도 문화와 환경보다 더 큰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이들 연구의 문제점은 사람들의 통설을 일단 사실로 받아들이고 연구를 역으로 한다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는 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가 손주에 대한 애착이 많은 이유에 대한 이야기로 근친도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손주의 엄마는 확실하지만 엄마가 바람을 펴서 아이를 낳았다면 아버지는 확실하지 않기에 친할머니의 손주에 대한 유전자 확신도가 더 낮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에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가 손주에 대한 애착이 많은가? 만약 맞는다면 그것이 과연 유전적 확신 때문일까? 만약 그렇다면 친자검사를 하게 되면 그들이 이야기 했듯 균등하지 않은 모성애와 부성애는 동등해질까?

만약 이러한 질문들에 그들의 주장과 반하는 증거들이 있다면 이러한 근거 없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진화적 가설을 통해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친 할머니와 외할머니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면 이들은 그저 편견만을 확장한 것이다.

진화심리학의 장점은 그들의 주장이 전 인류적으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데 있지만, 역으로 그것이 족쇄이기도 하다. 문화와 환경이 다른 사람들 속에서 언제나 반례는 존재할 수 있고 한 집단의 반례만 나온다 하더라도 쉽게 주장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힐 교수는 화제가 되었던 한 책의 내용 “강간이 남성의 종족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에 남성의 유전자 속에는 강간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을 아체족 실험으로 완전히 반박했다. 이렇게 쉽게 반박될 수 있는 연구들이 사실 처럼 쏟아지는 것이 문제다.


진화심리학의 사회적 문제

꼭 성대결이 아니더라도 진화심리학은 편견과 스테레오타입을 공고히 한다. 흑인들은 다른 인종에 비해 아이큐가 낮다는 것이 그것인데, 그러한 주장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피부색이 다르고 그들의 체격조건이 다른 인종과 다르다는 모든 점은 인정하면서 아이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모순된다.”

그들의 말대로 모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편견이라는 것이 잘못된 사고방식이라던가, 일반화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였지만 이제 과학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집단과 개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흑인은 열등한 두뇌를 가졌다.”는 과학적 결과가 제시되는 것은 좋은 결과를 낳기는 힘들다. 과학은 윤리판단이 배제되어 있는 학문이기에 사람들의 충분한 성숙함이 없이는 위험하다. 다이너마이트도 과학적 연구를 통한 대단한 결과물이었지만,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자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오히려 진화심리학은 다이너마이트보다 위험하다. 사회의 구석구석 일상생활에도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가 과한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나치를 생각해 보자. 앞으로 나치와 비슷한 정권이 들어서지 말라는 법은 없다. 


랜디 돈힐 교수가 출판한 뒤 큰 이슈가 되었던 책「강간의 자연사」 표지.


진화심리학자들은 도덕적이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알아야 더 나아질 수 있다고 했지만, 과학의 한 분과답게 어떤 지침을 제시하지 않는다. MIT의 유명한 생물학 교수 랜디 돈힐이 쓴「강간의 자연사」에서 여성들에게 제시하는 과학적인 강간 예방책이라는 것들은 매우 황당하다. 노출이 많거나 꼭 끼는 옷을 입지 말라는 식인데, 이런 식으로 나아지는 것이라면 오히려 후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는 분명 이시대의 키워드이다. 하지만 우리는 진화를 받아들이는 방법에 있어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쏟아내는 언론의 기사들을 우리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러한 진화심리학의 문제점을 이해하고 일정 부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거나, 올바른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