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값을 비롯한 생활비에 쪼들려 주말엔 과자로 끼니를 때웠다. 처음에는 이런 것도 자랑스러웠다. 내가 이겨내면 삶의 경험이 될 거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더라.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떠밀려 다니겠구나”


독립 다큐멘터리 <자기만의 방>에서 주인공 지혜의 대사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자리를 옮긴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속에서, 지혜는 미친 듯이 치솟는 서울의 월세와 전세로 인해 이 방 저 방을 전전하는 여대생이다. 자취 7년차, 그녀에게 서울생활에 대한 설렘은 사라졌다. 혼자의 몸을 눕힐 공간을 찾는 일은 지겹고 버거워졌다. 계속 옮겨 다녀야 하기에 짐을 최대한 만들지 않으면서도, 생활비에 가장 큰 부분을 방 한 칸에 쏟아 붓는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50만 원 짜리 ‘나만의 방’을 지키기 위해선 아르바이트를 계속 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 방은 포근한 곳이 아니라 조만간 또 떠나야 하는 곳이다. 언제까지 방을 옮겨 다녀야 하는지 기약은 정해지지 않았다.


 대학가 자취촌에서 방을 구하기 위해 전단지를 보고 있는 청년들 ⓒ파이낸셜 뉴스 


청년들은 때로 거주 장소를 선택할 상황에 직면한다. 본래 살던 지역에서 벗어나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일자리를 잡기 위해서다. 가족과 함께 살던 집에서 벗어나 독립을 시작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안정적인’ 독립은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 없이는 이뤄지기가 어렵다. 청년 세대가 자신의 주거공간을 스스로 구매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논문 <청년 세대, ‘집의 의미를 묻다 : 고시원 주거 경험을 중심으로’>은 “심화되고 있는 주거 불평등에 주목”하고, “고시원이라는 주거공간에서 사는 청년 세대의 공간적 삶을 연구”하고자 한다.


주거비 지불 능력이 제한된 청년세대, 그들이 겪는 주거 불평등성

논문에 따르면 경제 위기 이후에 가속화 된 노동시장 유연화와 청년 실업으로 인해 청년세대는 스스로 주거비를 충당하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그들은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통해 부분적인 독립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불평등이 발생한다. 바로 “가구의 자산 정도에 따른 격차가 곧 청년 세대의 주거 조건 상의 격차로 이전”되는 것이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주거 공간을 구하게 되는 경우에 주거조건은 더욱 열악해진다. 자력으로 마련할 수 있는 주거공간은 보통 보증금 부담이 없거나, 잠정적인 거주와 이사에 용이한 ‘작은 방’들 뿐이다. 하숙, 월세방 등의 많지 않은 선택지 중 저자는 ‘고시원’이라는 주거공간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 이하 계급 출신의 청년 세대가 진입하게 되는 대표적인 하위 주거트랙”이며 “불안정한 주거상태에 놓인 이들이 수렴되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고시원'이라는 주거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

논문은 고시원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22명의 청년들의 삶을 경험 연구하여, 고시원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청년 세대에게 어떠한 정서와 경험을 부여하는지 살핀다. 고시원의 좁은 공간이 주는 무력감, 빛이 들지 않는 구조로 인해 느껴지는 시간의 정체성, 임시적 주거공간이기 때문에 가지는 익명성과 그로 인한 불안감 등. 이러한 공간적 조건 아래에서, 고시원에서 함께 살아가는 주민들이 공유하는 것은 ‘주거의 불안정성’ 뿐이다. 이는 서로를 ‘우리’라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고시원 주민들과 ‘나’를 구분하는 상황으로 확장된다. 같은 고시원 안에 사는 타인을 보며 동화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논문 속의 한 인터뷰이는 다른 주민들에게서 느낀 감정을 거리감과 불편함, 두려움으로 정리하였다. “주위 사람들도 보면,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항상 쓰레파에 추리닝 차림으로 다니시는 분들 있는데 그런 분들 보면 나도 저렇게 되는 건가, 계속 있으면. 너무 무섭더라구요.”


고시원이라는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내가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익숙한 타자들”이며,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는 경우에 얼마든지 미끄러져 닮을 수 있는 “부정적 형상”이다. 이는 달리 생각해볼 때 ‘나’에 대한 불안으로 해석된다. 아무리 스펙을 쌓고 일해도 지금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공포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이렇게 정리하며 논문을 끝마친다. “고시원은 수도권에서 자력으로 안정적인 주택을 마련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간화된 계급적 공포와 불안이 투사된 곳”이며 “고시원의 젊은이들은 우리사회에 통용되는 ‘정상적인 집’의 의미를 질문”한다고 말이다. 


작은 방 안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가구들 ⓒ고시원 네트워크


청년세대에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집'의 의미를 물을 수 있을까?


이제 청년세대에게 ‘집’의 의미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논문을 읽고 내린 결론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청년 세대가 주거환경을 경험하는 방식들 속에서 ‘집’의 의미가 만들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청년 대부분의 주거지는 ‘방’이며, 그 방은 언제 그곳을 벗어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암시해주는 공간이다. 다큐멘터리 속 지혜처럼 오늘도 많은 청년들이 방에서 새로운 방으로 끝없이 떠밀려 다닐 뿐이다. 언젠가는 자기가 사는 공간을 ‘방’ 대신 ‘집’이라고 부를 때가 오리라 희망하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 지는 확신할 수 없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고 비정규직 고용이 확산되면서, 졸업도 결혼도 유예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열악한 주거 환경에 허덕이는 청년들에게 사회적 관심은 쏠리지 않는다. 홀로 방에 사는 노인은 사회문제가 되지만, 방에 사는 청춘을 걱정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청년들에게 방이란 우리 집을 벗어나 내 집을 장만하기 위해 잠시 거쳐 가는 일시적인 공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거쳐 가는 공간’으로 치부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방 한 칸에 머물기 위해, 고만고만한 방들을 옮겨 다니는데 돈을 탕진하게 된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 직장을 다니는 직장인, 혹은 백수로 지내는 다양한 청년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방 값을 내고 남은 돈을 차곡차곡 저축해도, 그들에게 ‘집’은 요원한 존재이기만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는 그들에게 ‘캥거루족’ 과 같은 이름을 붙여줬다. 캥거루족은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용어다. 스스로를 캥거루족이라 부르는 김건영(31)씨는 “방 값을 감당 못하면 캥거루족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작년까지 방에 들인 돈은 5000만원을 가볍게 넘는다. 어떻게든 자립을 해보려 노력했지만, 그는 결국 올해 부모님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다달이 빠져나가는 방 값으로 인해 결혼자금을 모으기가 벅찼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연 스스로 캥거루족으로 살아가기를 원한 것일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의 주거 환경으로는 20~30대가 방에서 사는 생활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것만으로도 사회가 그들의 ‘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함을 비판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고 격려를 해줄 때이다. 


* “ ”안의 내용은 논문 속의 문장이나 단어를 인용한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