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가 바뀌어서 고시원 영업을 못하게 됐으니 빨리 방을 알아보는 게 좋을 거다.”


고향을 떠나 경기도에서 학교를 다니는 김상웅 씨(25)는 고시원에 산다. 그는 주거비를 줄이기 위해 살던 원룸을 떠나 고시원을 택했다. 그가 고시원에 자리 잡은 지 3개월 정도 되는 날, 고시원 폐업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고시원 사장은 밖으로 나가려던 그를 붙잡아 “건물주가 바뀌어서 고시원 영업을 못하게 됐으니 빨리 방을 알아보는 게 좋을 거다"라고 통보했다. 그날은 고시원 폐업일로부터 한달 남짓 남은 날이었다.  


다른 고시원 거주민의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상웅 씨는 “다른 고시원 사람들 생각은 모른다. 여긴 사람 간의 소통이 별로 없다. 자주 보는 얼굴이라도 서로 모른척한다. 다들 여기에 오래 살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고시원엔 주인이 일방적으로 폐업을 통보하더라도 문제를 공유하고 때론 같이 행동할 수 있는 이웃들도 없었다.

 


'을'의 의무만 잔뜩, 너무나 불평등한 계약서


다행히 고시원 업주는 학생들의 학사일정과 빈 방이 많이 나오는 기간을 고려해, 종강 후인 한달 뒤로 폐업날짜를 늦췄다. 그렇지만 그저 '다행'이라고 여기고 넘기기엔 찝찝한 구석이 남는다. 고시원 거주민은 고시원 사장, 건물주 사정에 따라 맘대로 쫓겨날 수 있는 존재일까.


고시원 거주민을 지켜주는 첫번째 도구는 계약서다. 계약서는 계약의 기본이다. 계약서에서 계약의 당사자와 내용, 기간 등이 정해진다. 계약의 문제가 생겼을 경우 취할 조치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상웅 씨가 고시원 업주와 맺은 계약서엔 '을'인 상웅 씨의 의무만 있었다. 계약서는 방세 납부, 퇴실 통보, 실내 정숙 등 12가지 을의 의무만 나열되어 있었다. 불균형한 계약서는 “위의 사항에 동의하며 내규위반 또는 불이행시 강제되실, 손해배상 및 고발조치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잔여일수에 대한 입실료는 환불하지 않는 것에 동의합니다”라는 을의 서약으로 끝났다.


불균형한 계약서 문제는 특정 고시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소비자원이 2013년에 발간한 '고시원 이용실태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고시원 계약서가 고시원 업주의 의무와 책임에 대한 내용은 극히 적고 이용자와 의무와 책임위주로만 구성되어있었다. 보고서 말미에 갑과 을의 균형잡힌 '표준계약서'를 제안됐지만, 아직까지 표준계약서는 문헌상으로만 존재하는 계약서인듯 하다.

 


고시원도 보호가 되나요? 고시원을 향한 두가지 시선


고시원 거주민을 보호하는 두번째 도구는 법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사회적 약자인 임차인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보호막이다. 법에 따르면, 임대인은 최대 2년의 주거기간을 보장받는다. 임차인이 인상할 수 있는 임대료 범위도 정해져 있다. 그러나 고시원도 주택임대차보호법 적용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고시원 관련 판례가 없어 의견이 나눠지기 때문이다.


고시원은 일반적인 주택과 달리 고시원은 준주택(주택법), 근린생활시설(건축법)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주택과 동일하게 임대차보호법을 적용받기 어렵다고 해석하고 있는 관점이 있다. 법은 고시원을 정상적인 주택이 아니라, 유사 주택 혹은 장기체류용 숙박업소에 불과하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고시원 거주민조차 임대인과 임대차 계약을 맺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주택과 동일하게 임대차보호법을 적용받기 어렵다고 해석한다.


반면 대법원이 임대차보법에 보호되는 '주택'을 실질적인 용도를 기준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고시원도 주민센터에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으면 임대차보호법에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민달팽이 유니온의 황서연 주거상담팀장은 "주택이 아니더라도 주거목적으로 계약했다면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보호받을 수 있다. 다만 계약서를 어떻게 썼는지가 관건이다. 계약서를 안 썼거나 지나치게 짧은 기간으로 썼다면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UN은 자주 이사를 다녀 '고정적인 주소가 없는' 이들도 홈리스의 정의에 포함시켰다.  그 정의 앞에서주거약자인 청년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자료사진ⓒ(위)인사이드 르윈 (아래)한공주




전통적인 '집'의 고정관념을 넘어서


법과 제도뿐만 아니라 고시원 거주민 자신들조차 고시원을 정상적인 주거공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상웅 씨는 이렇게 말했다. "고시원은 부동산 계약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학원에 등록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시원을 단기적인 주거장소로만 생각한다. 애정을 갖고 있지 않다." 고시원 거주민 스스로도 고시원과 일반적인 주택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법이 고시원 거주민에게 유리하게 해석되더라도, 일반적인 주택거래가 아니라고 생각해, 필수사항인 계약서와 확정일자를 챙기지 않는다면 법에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전국의 고시원은 총 11,232 개소(2012년 기준)다. 고시원 거주민 중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55%다. '소수자주거권확보를 위한 틈새모임'의 나영정 씨는 "주거정책이 전제하고 있는 ‘집’의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 ‘집’을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많은 이들을 고시원이 거의 유일하게 흡수하고 있는 현실은 부정하기 어렵다(주거권과 가족상황차별, 2012)"고 현 상황을 설명한다. '집'의 의미는 제도의 차원과 더불어 사회적으로도 넓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시원 거주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난민'처럼 여행가방을 끌고다니는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