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어떠한 소재를 다루고자 할 때 대상의 단면만을 과도하게 부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소재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와 고찰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정체성이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은 소재의 경우 미디어의 편협한 태도가 대중의 인식과정에 낙인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M.net의 여성 래퍼 서바이벌 '언프리티 랩스타'는 힙합이 가지는 성격 중 갈등과 관련지을 수 있는 일부만을 극대화하여 아직 국내에 명확하지 않은 ‘여성 힙합’의 정체성을 ‘여성 편견’과 ‘갈등’만으로 채우고 있다.

 

여성 힙합을 이야기 위해서는 힙합 씬을 이야기해야 한다. 씬 (scene) 이라는 단어가 무대를 의미함을 고려하면 사전적으로 힙합 씬은 힙합이 등장하는 무대이다. 보다 관용적으로는 힙합 씬은 ‘힙합 문화 공연자 차원의 범위’ 즉 ‘힙합을 공연하는 사람들의 범위’를 가리킨다. 관용적 의미의 힙합 씬에서 여성 래퍼들의 지위는 언프리티 랩스타 제작진의 기획의도로 추측할 수 있다. ‘여성 래퍼들이 남성 래퍼보다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M.net. 언프리티랩스타 홈페이지


기획 의도를 보면 ‘언프리티 랩스타’는 마치 힙합 씬 속의 여성 래퍼들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처럼 행세한다. 하지만 방송사는 시청률에 의해 움직인다. ‘언프리티 랩스타’는 시청률을 위해 ‘여성 래퍼’라는 소재를 자극적인 ‘여성 간의 갈등’으로 다루고 있다. 


문화기업 m.net이 힙합 문화를 대하는 방식 


힙합을 소재로 다룬 프로그램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대표적인 것이 같은 방송사의 ‘쇼 미더 머니’ 시리즈이다. ‘쇼 미더 머니’를 포함한 힙합 프로그램들은 ‘힙합’ 문화 자체보다는 주로 래퍼들 간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작진의 편집을 거치며 래퍼들 간의 ‘직설적인 표현’은 ‘노골적인 비난’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갈등이 성립된다.


다른 장르에 비하여 힙합에서는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이 빈번하다. 이에 대한 원인은 그 문화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 억압과 차별을 받던 흑인에 뿌리를 둔 블루스와 재즈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블루스와 재즈는 미국의 흑인들에 의하여 탄생하였다. 발생 초기에는 블루스와 재즈 모두 힙합 못지않게 직설적, 외설적인 표현이 난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블루스와 재즈 음악의 주된 향유층은 고위층 또는 중산층의 백인이 되었고 아프리칸들의 정서가 사라지며 직설적이고 외설적인 표현의 성격도 사라졌다. 이에 비해 힙합은 엘리트의 향유물이 아닌,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장르의 발전과정 속에서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정도로 표현의 자유'라는 본래의 성격에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M.net. 언프리티 랩스타 1회 방송분 중 타이미에 대해 언급하는 래퍼 제시

‘언프리티 랩스타'는 장르적 특성을 단지 갈등을 생산해 내는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다. 이는 그 문화를 훼손시키는 것이다. '언프리티 랩스타' 제작진은 지난 1회에서 ‘(타이미와) 언젠간 한번 부딪힐 것 같아요’라는 제시의 발언을 각기 다른 상황에 세 번 끼워 넣는 등의 과정을 통해 제시-타이미, 제시-릴샴, 타이미-졸리브이 간의 갈등구조를 전면에 부각했다.


첫 화부터 갈등 구조만을 부각하니 '실력 있는 여성 래퍼에게 기회를 주자'라는 본래의 기획의도는 무색하고 회를 거듭하며 기존의 갈등구조가 심화되는 것만이 조명된다. 여성 래퍼들 간의 배틀랩이 미션이었던 4회를 홍보하는 동영상이 이를 증명한다. 홍보 동영상 속에서는 가장 심한 갈등 구조의 주인공인 타이미와 졸리브이가 서로의 랩 배틀 상대인 것처럼 나타났지만 실제 방송분에서는 타이미와 졸리브이는 각기 다른 여성 래퍼들과 배틀랩을 벌였다. 의도적으로 프로그램 홍보로써 래퍼들 간의 갈등을 사용한 것이다. 문화기업 m.net은 시청률을 위해 힙합을 갈등촉매 역할의 도구로 재단하고 있다.

 

(여성+갈등)-남성=여성힙합? 


ⓒM.net. 1회 방송분 중 제시와 치타의 인터뷰


‘여자들끼리 모였으니 피곤하겠네요’ ‘여자들한테는 잘해줘야 소용이 없어요’ 이런 식의 표현은 갈등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도식화한다. 갈등의 원인은 ‘힙합이라는 문화의 특수성’에서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에’로 변경된다. 기존의 쇼 미더 머니가 ‘힙합이라는 문화’를 마음대로 재단했다면 언프리티 랩스타는 동시에 갈등마다 ‘여성이기 때문에...’라는 프레임을 슬쩍 밀어 넣는다. 여성 간의 갈등에서 완전히 분리된 인물도 존재한다. 사회자로 출연 중인 남성 래퍼 산이(san E)는 방송에서 갈등과 완전히 분리되어 갈등을 조정하거나 때때로 관조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기획의도에서 ‘여성 래퍼들이 남성 래퍼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밝히는 여성 힙합 서바이벌에서 산이는 일반적인 사회자가 아니다. 출연 중인 여성 래퍼들 보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남성 래퍼이다. 프로그램 내내 산이와 출연자들 간에는 갈등관계가 아닌 상하관계가 존재한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사회자도 아니고 심사위원도 아니다. 또한 4회까지 모든 심사는 남자 래퍼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 이렇게 반복되는 여성과 남성 래퍼 간의 상하관계는 시청자의 머릿속에 ‘여성 래퍼들이 남성 래퍼에 비해 실력이 없다’는 식의 명제를 집어넣는다. 이런 흐름 속에서 관심은 ‘여성 힙합’이 아닌 ‘갈등’이 된다.


여성 래퍼들이 남성 래퍼보다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라는 사실은 곧 대중에게 ‘여성 힙합’의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형성될 ‘여성 힙합’의 정체성에 대하여 끼칠 영향은 상당하다. '흰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그릴 것인가 세모를 그릴 것인가'는 붓을 잡은 사람이 선택할 일이다. M.net은 '여성 힙합'이라는 종이 위에 붓을 잡고 그리는 주체가 될 수 없다. 프로그램의 본래 기획의도가 ‘실력 있는 여성 래퍼들이 주목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었다면 여성 래퍼들이 그리게 될 그림을 위해 프로그램의 중심은 ‘힙합 문화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