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버티고 있다."


라운드테이블 '청년예술가들의 창작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5월 8일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5*의 '올모스트 프린지' 포럼의 첫번째 행사였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하 프린지)은 "별도에 심사가 없음"을 내걸고 제도권을 벗어난 '인디' 예술가들을을 지원하고 작품 발표의 기회를 마련해줬다. 올해 프린지는 기존의 방식대로 축제를 진행하는 대신 점검의 의미로 여러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대담회엔 제도권과 관계있는 예술인들이 초대됐다. 물론 모두 제도와는 그리 친하지 않다는 의미로 '제도권과 관계있다'는 얘기다. 이날 대담회는 "젊은 예술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모습으로 예술을 지속하고 있는지”를 듣기 위함이었다. 사회는 프린지네트워크 운영위원인 정진세 씨가 맡았다.


이날 초대된 패널은 총 네 명. 연극 연출가이자 출판사 '자큰북스'의 김해리 씨, <시월세집>의 저자 김경현 씨, 무대 밖을 벗어나 여기저기 출몰하는 실험연극그룹 '출몰극장'의  박한결 씨, 아르코의 젊은 예술인 지원사업(아야프)의 수혜자인 연극 연출가 이은서 씨였다.


기존의 제도가 맘에 들지 않는 예술가들은 어떤 '대안'으로 자신의 예술생활을 지속하고 있을까? 초대된 예술가들 중 두 사람의 생활을 엿보자.


#자큰북스_김해리

"희곡을 출판한다. 희곡을 쓴다. 희곡을 읽는다. 연극을 공연한다. 연극을 본다"


자큰북스는 희곡전문 출판사다. 자큰북스는 연출가였던 김해리 씨가 뜬금 없이(!)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아니, 거슬러 올라가면 언젠가 조교로 참여했던 작가 연출가 워크숍에서 들었던 극작가들의 말이 시작이었다. 그들은 작가이자 연출가들에게 "연출만 해"라고 말했다. 그만큼 극작가가 세상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의도에서였다. 김해리 씨는 유학시절 지하철에서 잠깐 보고 휴지통에라도 버릴 수 있었던 조악한 포켓북에서 영감을 받아, 희곡전문포켓북을 만들었다. 



자큰북스의 책들

"연극계에서 희곡작가가 세상에 나오는 방법이 드물다. 신춘문예를 통해 4-5명이 배출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극작가가 존재한다. 적은 창구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사회자 정진세 씨가 말했다. 자큰북스는 극작가들과 연대하고 있다. 한국 출판시장이 적지만 희곡 분야는 더더욱 적다. 특히나 동시대의 희곡을 서점에서 접하기란 쉽지 않다. 



ⓒ서울연극센터, 자큰북스


<사통팔달 최팔달>, <해맞이>, <옥상 위 카우보이> 등 희곡집의 가격은 3-5천원. 희곡은 연극으로 만들어져야 빛이 발하는 이야기이기에, 출판된 희곡으로 낭독회와 연극도 꾸준히 기획하고 있다. 연극화하는 과정에서 자큰북스는 젊은 배우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큰북스는 젊은 극작가와 배우들에게 세상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대안을 만든 셈이다. 




(왼쪽)자큰북스의 김해리 씨. (오른쪽)시월세집의 김경헌 씨.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시월세집_김경현

"글로 돈 버는게 자랑스럽다. 시를 팔고 다니는게 나쁘지 않다"


"판매수익금 전액은 소중한 저의 월세로 쓰입니다." <시월세집>의 저자 김경현 씨는 문단 밖 사람이다.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고, 문예지에 기고해서, 그를 모아 시집을 내는 단계를 거치는 시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김경현 씨는 음향을 전공하고 회사를 다니다 사표를 냈다. 글을 쓰고 싶었다. <시월세집>은 작년 4월부터 독립출판 형식으로 출판되어 현재 4집까지 출판됐다. 시인은 시집으로 월세 30만원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팔린 시집은 총 2천 권정도다.



<시월세집> 텀블벅 프로젝트 ⓒ김경현

김경현 씨는 시인인 동시에 시팔이다. 매주 플리마켓에 나가 <시월세집>을 판다. 사회자는 "시인이 시를 팔러다니는 괴리감은 없나"라고 물었다. 그는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시집을 "목숨값"이라고 표현했다.



다시서점 페이스북 페이지 ⓒ김경현

독립출판서점 '다시서점'도 경영하고 있다. 거창하지는 않다. 서점 한남동 바에서 낮에만 운영된다. 서점을 운영하기에 독립출판 제작자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연대할 생각은 없다. 독립출판을 생계를 위해 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랑은 입장이 다른 것 같다. 각자의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글. 릴리슈슈(kanji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