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대 최고’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한 선수는 47전 47승(26KO)이라는 불패의 전적을, 한 선수는 20kg의 체중을 넘나들며 8체급의 메이져 타이틀을 석권한 전설의 선수다. 전자의 선수는 WBC·WBA 웰터급 세계챔피언인 메이웨더, 후자는 WBO 웰터급 세계챔피언인 파퀴아오다. 둘의 시합을 다른 스포츠 영역의 시합과 비교해보면 축구에서는 바르셀로나 vs 레알마드리드, 피겨에서는 김연아 vs 김연아(?)를 떠올리면 된다.


1970~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복싱 인기는 더없이 초라해 SBS에서 5월 3일 일요일 11시에 펼쳐질 두 전설 간의 대결조차 흥행하지 못할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나 이번 경기를 놓친다면 대전료*만 2,700억에 달하는, 즉 ‘1초당 1억’을 넘는 초대박 하이라이트를 포기하는 꼴이다. 복싱를 모른다고? 걱정마라. 복싱에 대해 ‘1도’ 모르는 당신도 이번 경기만큼은 즐길 수 있도록 매우 쉽게 관전 포인트를 소개해 보겠다.


*대전료란 승패와 관계없이 두 선수가 대회 주최 측으로부터 받는 금액으로 중계권료와 광고를 통한 부대수익 등은 제외한다. 


ⓒYou Tube


메이웨더의 테크닉 vs 파퀴아오의 우직함


메이웨더의 별명은 프리티 보이(Pretty boy)이다. 혈흔이 난무하는 복싱 경기에서 그가 얼굴에 상처 하나 없이 경기를 끝내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프리티’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복싱 스타일에 있다. 메이웨더는 자신도 위험할 수 있는 모험적인 KO 승리보다는 독특한 방어 기술과 화려한 스텝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무용지물로 만든 뒤 펀치 한 발과 점수 한 점으로 판정승을 이끈다. 워낙 방어와 스텝이 뛰어나다 보니 복싱팬들은 그가 정통으로 얼굴을 맞는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일 정도다. 메이웨더가 KO 보다는 방어와 점수 따기에만 집중한다고 해서 약한 주먹을 가졌단 이야기는 아니다. 그의 47승 중 KO 경기는 무려 26번이다.


메이웨더의 방어 기술 중 가장 유명한 숄더롤. 어깨로 상대의 공격을 무효화 한 뒤 카운터를 날린다 ⓒYou Tube


반면 파퀴아오는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상대의 가드를 두들겨 부순 뒤 안면과 복부에 무자비한 펀치 세례를 퍼붓는 선수다. 옆집 사는 순박한 필리핀 아저씨같은 외모에 속았다가는 살아있는 샌드백이 되기에 십상이다. 상대 선수에게 파퀴아오의 주먹이 꽂히기 시작하면 벌집을 건드린 사람의 얼굴이 되거나 KO를 당하거나 둘 중 하나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맷집도 그의 장점이다. 상대 선수에게 끊임없이 달려들다 보니 가끔은 타격을 허용하지만 정말 ‘가끔’이다. 파퀴아오같은 유형의 여타 선수들과 비교해 보면 파퀴아오의 경기 후 모습 역시 꽤 ‘프리티’한 편이다.


파퀴아오 vs 델로 호야, 파퀴아오의 저돌성과 순발력이 돋보인다. 델라 호야가 유달리 약해보이지만 WBO 미들급 챔피언 출신이다


가난했던 유년기, 전설적인 복싱 커리어


두 선수 모두 유년 시절에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먼저 메이웨더는 아버지가 마약상이었고 어머니는 마약중독자로 아버지는 마약 판매 때문에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중 다행은 복싱 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삼촌이 메이웨더에게 계속해서 복싱을 시켰다는 점이다. 파퀴아오 역시 5살 때부터 홀어머니를 도와 일을 했다고 한다. 이후 길거리에서 담배를 팔기도 하고 막노동과 거리 복서 생활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열악한 유년 시절에 비교하면 두 선수의 프로 생활은 전설의 연속이다. 메이웨더의 47전 47승(26KO)이라는 무패 전설은 영화 ‘록키’의 배경이 된 록키 마르시아노 선수의 49전 49승(43KO)을 떠올리게 한다. 메이웨더는 슈퍼페더부터 슈퍼웰터까지 10kg을 넘나들며 5체급의 타이틀을 석권했다. 반면 파퀴아오는 ‘불패’라는 타이틀은 없지만 5체급을 넘어서서 8체급 타이틀 석권이라는 유일무이한 기록 보유자다. 50.80kg 이하의 라이트 플라이급부터 69.85kg 이하의 슈퍼웰터급까지 약 20kg을 넘나들며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8개나 따냈다.


사실 무게를 늘려가며 여러 체급의 타이틀을 석권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체급에서 체급을 올릴 때마다 상대 선수의 체격도 점점 커지고 상대 선수가 펀치를 뻗을 수 있는 거리(리치)도 늘어난다. 또한 체급을 늘리는 선수들은 선수 자신의 몸이 무거워지다 보니 순발력과 체력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파퀴아오는 8체급을 초월하다 보니 자신보다 키가 12cm가 크고 리치가 15cm가 긴 안토니오 마가리토라는 거대한 선수를 자신의 최저 몸무게였을 때보다 20kg이나 늘린 상태로 상대하기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두 선수의 5체급, 8체급 석권은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일이다.

좌 파퀴아오, 우 마가리토. 키 차이가 상당하다. 경기 이후 마가리토 얼굴은 알아볼 수 없게 되고 안와골절로 수술을 받는다 ⓒEPA연합뉴스


악동 vs 필리핀의 영웅


두 선수의 대결이 재밌는 또 다른 이유는 두 선수의 이미지 차이 때문이다. 메이웨더는 전형적인 악동 이미지를 가진 선수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상대 선수 도발은 물론 자화자찬도 수준급이다. 복싱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알리’같은 전설적인 선수를 언급하며 “내가 그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번 경기가 있기 전에도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와의 대결이 성사될 뻔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경기가 무산된 이유 중 하나가 메이웨더의 도발성 발언 때문이었다. 당시 메이웨더와 메이웨더 측은 파퀴아오가 약물을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며 과도한 혈액 검사를 요구했고 결국 파퀴아오 측에서 경기를 무산시켰다.


메이웨더는 ‘프리티’라는 별명 외에도 ‘머니(Money)’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복싱으로 인한 수입이 엄청나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스포츠 스타 수입 1위를 독점했다. 이번 경기 그의 대전료만 파퀴아오보다 3,000만 달러 많은 1억 5,000만 달러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추신수 선수가 텍사스와 계약을 맺을 때 7년 계약금이 1억 3,000만 달러 수준이었다. 추신수가 7년간 야구를 해서 벌 돈을 메이웨더는 2160초도 안 되는 복싱 한 경기로 벌어들이고 추가로 3000만 달러를 더 번다. ‘머니’라는 별명에 걸맞게 SNS에 고급승용차, 자가 비행기 등의 ‘스웩’가득한 사진을 올리며 악동의 이미지를 굳혀나가고 있다.


메이웨더의 자가 비행기 ⓒRex Picture


파퀴아오는 메이웨더와는 달리 순박하고 성실한 이미지이며 필리핀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해 국회의원직에도 올랐다. 2012년에 메이웨더의 팬인 저스틴 비버가 파퀴아오를 조롱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 필리핀 국회에서 저스틴 비버의 사과 요구와 입국 금지를 진지하게 논의했을 정도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필리핀 일부 지역 전기협동조합에서는 정전 사태까지 걱정하고 있다. 전기협동조합은 지난 4월 30일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세기의 대결이 펼쳐지는 다음 달 3일 2~3시간 동안 냉장고 등 전자제품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파퀴아오는 타임지 선정 영향력 있는 100인 중 골프의 타이거 우즈, 테니스의 라파엘 나달을 포함한 세 명의 스포츠 선수 중 한 명으로 뽑힐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과 인기를 가졌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축구선수 드록바가 1주일이라도 내전을 멈춰달라고 이야기하자 실제로 그 기간에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이 멈췄던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파퀴아오 역시 같은 걸 해내고 있다. 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필리핀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멈추며 정치적 갈등과 노사 갈등 역시 모두 중단된다. 메이웨더 때문에 눈에 띄지는 않지만 파퀴아오 역시 매년 스포츠 스타 수입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기부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경기를 앞두고 나온 말말말


전문가들의 전반적 의견이 메이웨더 쪽에 조금은 우세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마이클 타이슨, 델라 호야 같은 전설적인 과거 복싱 선수들 사이에서도 이번 경기를 앞두고 예상이 갈리고 있다. 마이클 타이슨은 “메이웨더가 자신의 방어적인 스타일을 고수했다가는 파퀴아오를 이길 수 없다”고 했지만, 과거 메이웨더, 파퀴아오 두 선수 모두와 경기 경험이 있는 델라 호야는 “강하고 빠른 잽을 가진 선수가 아니면 메이웨더를 이길 수 없다”며 메이웨더의 승리를 점쳤다.


라스베가스에서의 공동 기자회견 ⓒTime


지난달 30일 경기를 앞두고 열린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메이웨더가 평소와 달리 유난히 예의를 차렸다. 그간 보여 왔던 상대 선수에 대한 도발보다는 “파퀴아오는 명예의 전당에 오를 선수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훌륭한 상대다”라며 상대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파퀴아오 역시 자신과 메이웨더의 대결을 선과 악으로 나누지 말 것을 요구하며 “이번 경기는 내 복싱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다”라고 밝혔다. 파퀴아오 역시 메이웨더에 대한 존중을 보인 것이다.


그렇지만 승리를 이야기할 때는 두 선수 모두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메이웨더는 “내가 키도 더 크고 기량도 더 뛰어나다”며 “링에서 최상의 경기력만 보이면 된다”고 말했다. 파퀴아오 역시 “메이웨더가 무패 복서지만 나는 그가 싸운 47명의 상대와 다르다. 메이웨더는 생애 처음으로 패배를 경험할 것“이라며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