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여성주의 학회 주디를 알게 된 건 한국외대 교지에 실렸던 글을 통해서였다. 글에는 주디와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담겨 있었는데, 주디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이후 학회의 소식을 찾아보니 여성의 노동에 관한 깊이 있는 세미나를 진행하고 비교적 생소한 영화를 같이 보는가 하면, 각종 대외적인 사안에 연대성명을 하는 등 나름대로 빡세게(?)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느슨한 연대의 구성’이라고 말하지만 알찬 활동을 하는 주디 사람들을 만나봤다. 여러 사람과 함께 인터뷰했지만 편의상 그리고 요청상 답변은 하나로 통일했다.


한국외대 여성주의 학회 주디의 SNS 프로필 사진


먼저 학회가 생긴 지는 얼마나 되었고,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질문 때문에 구성원들끼리 세어봤어요. 만든 지 거의 2년 정도 되었더라고요. 그전에는 다른 사회과학학회를 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몇 구성원이 여성주의에 관심이 많았어요. 당시 학생회 활동을 포함해 학내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여성 활동가로서 불편한 것도 있고 여성차별 문제도 심각한 것 같다고 느꼈어요. 무엇이 차별인지 모르는 게 더 문제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여성학 쪽으로 공부를 해보자고 얘기를 했는데, 여성주의 학회를 아예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죠. 주변에 이야기를 해보니 몇 사람이 ‘그런 학회라면 참여를 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고, 처음 사회과학 학회를 하던 초기 멤버들이 국방부에 끌려가고 (웃음) 그런 일들이 있어서 사람이 얼마 안 남아 있었어요. 여성주의 학회로 바꾼 건 생존을 위한 전략이기도 했죠. 그래서 2년 전에 아예 학회를 해소하고 지금의 주디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혹시, 외대 분들이 아니신 경우에도 참여하시나요?

한국예술종합학교 다니는 친구도 있어요. 한국외대 학생이었는데 (웃음) 적성에 안 맞아서 다른 학교로 갔어요. 얼마 전에는 숙명여대에서도 왔고, 성균관대에서도 왔고. 다 지인을 따라온 뒤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그랬는데,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 보니 주로 참여하게 되는 건 이 근처, 한국외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사람들이죠.


작년에 외대 교지에서 주디를 처음 봤어요. 그때 글은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기억을 더듬어 보겠습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웃음) 저희가 세미나를 하면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화 상영회도 하고 그걸 홍보하기도 했어요. 그때 교지에 계신 분이 관심을 가지고 오셨어요. 그분도 학내의 여성 관련 문화에 문제의식을 많이 느낀다고 했어요. 그래서 교지에 주디가 글을 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죠. 예를 들어 학생회 문화가 여성을 배제하거나 여성에 폭력적인 그런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에 대한 비판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비판뿐만 아니라 여성주의가 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포함해서 교지에 싣게 되었어요.


주디라는 이름의 유래를 봤는데 인상적이었어요. 얘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생각 없이 지었는데… (웃음) 여기에는 지금 없는 멤버 두 명이 있는데, 그 친구들과 같이 지었어요. 일단 구성원들이 주디스 버틀러를 되게 좋아했어요. 잘생겼거든요. 중요해요. (웃음) 퀴어나 이런 주제에 관심이 아주 많았고, 주디스 버틀러의 퀴어 이론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보고 싶다는 그런 의지가 있었어요. 하나는 경상도 방언으로 주둥이잖아요. 요즘 ‘설치고 말하는’ 여성을 싫어하는 게 있는데, 우리는 그때 설치고 말을 하겠다, 주둥이를 마구 놀리겠다고 지은 것도 있어요. 굉장히 선구자적이죠. (웃음)


세미나, 영화 상영, 연대성명 등의 활동 외에 하는 활동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학회지의 경우에는 정기적으로 내는 게 아니에요. 또 낼 수 있을까요... (웃음) 그때는 지원을 받아서 낸 거고요. 사실 정기적으로 하는 건 말씀하신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영화도 세미나에 포함되는 개념이고요. 학회지의 경우에는 주디가 딱히 학과에 등록된 것도 아니고, 동아리연합회의 지원도 안 받고 있다 보니 생존을 위해 선택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해요.

계획 중인 일이기는 한데요, 지금 학회원들도 자세히 몰라요. (웃음) 논의를 하려고 했는데, 여기 도꼬마리가 이문동 청년공동체에요(주: 도꼬마리는 이문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청년공동체의 이름이자 동명의 카페 공간 이름이기도 하다). 여기서 학술 프로그램 같은 걸 진행하기도 해요. 저는 도꼬마리 회원이기도 한데, 여기서 자신의 경험을 말로, 글로 표현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내 삶의 서사 쓰기’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봤어요. 프로그램 중에서 ‘불편함을 드러내는 체험 글쓰기’라는 걸 만들었어요. 최근 데이트 폭력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사실 어떤 상황에 부닥쳤던 경험을 드러내는 게, 내가 당한 폭력에 관해 얘기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기록하고 말하는 연습을 해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정말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여기에서 그런 것들을 대처하는 역할을 하고 싶은 것도 있어요. 접근성을 높이고자 ‘불편함을 드러내는’ 이라고 쓴 거고요. 좀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프로그램 전체와도 잘 맞을 것 같았고요. 주민들과 같이하는 프로그램을 여기 공동체와 함께 해보려고 여기서 논의하려고 했어요. 구성원들이 반대하면 못하는 거지만... (웃음)


도꼬마리 앞에 붙어있는 사용 설명서


지역을 염두에 둔 활동을 계속 생각해오셨는지 궁금해요.

지역 주민들과 계속 뭔가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학교에 있으면 여성주의 공부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하고 불편한 것들을 이야기하지만, 이 지역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은 아예 접해보지도 못하고 뭐가 불편하더라도 이야기를 못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학교 안에서만 이야기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외대 여성주의 학회보다는 앞에 외대 대신 다른 거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고. 구성원도 한국외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좀 더 많은 사람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가면 어떨까 생각해요. 학교에서 학회를 하는 것도 좋지만, 여성주의 공부나 운동을 같이하는 사람의 연령대나 계층이 더 많아지면 좋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그 생각이 굳어진 계기는, 얼마 전에 여성의 가사노동에 관한 강의가 있었어요. 여성의 노동이 어떻게 저임금, 강도 높은 노동과 고착이 되는지 그리고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강의를 초빙해서 들었습니다. 그때 오신 분이 이 동네에서 다문화협동조합 활동을 하시던 분이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계급으로 나뉘는 부분에 관해 얘기를 해주셨고 이주여성이 하층계급이 되는 메커니즘에 대해 얘기를 하셨습니다. 근데 같이 활동하는 이주여성분들과 공유하고 싶은데 겁이 난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충격이 되게 클 것 같다고. 하지만 이야기는 꼭 할 거라고 말하셨어요. 그런 것들 때문에 생각이 더 굳어진 것 같아요. 더 쉽게, 재미있는 방법으로 동네에서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을 말이죠.


주로 세미나는 여기서 하시나요?

여기에서도 하고, 한국외대 생활자치도서관의 공간을 빌리기도 하고요. 생활자치도서관 구성원들이 여성주의 학회 활동에 관심이 많아 참여하기도 해요. 중심이 되는 사람들이 한국외대 학생들이어서 한국외대에서 주로 활동을 하고 있고. 한국외대 생활자치도서관의 경우 공간을 빌려 쓰기도 하지만, 사실 학회지를 내려면 갹출을 해야 하잖아요. 근데 돈이 없으니까, 생활도서관의 학회 지원 사업으로 내기도 하고 그런 관계입니다. 유착 관계라고 해야 하나. (웃음)


영화 상영회에서는 어떤 영화를 했는지 궁금해요.

가장 최근에는 “하지만 난 치어리더인걸”이라는 영화를 상영했어요. 그 영화는 퀴어 영화였고요. 그전에는 “미스 리프레젠테이션”이라는 영화를 상영했어요. 미국 미디어에서 여성을 얼마나 낮게 다루는지에 대한 다큐멘터리인데요. 장면 편집 방식이나 여성 정치인이 성적으로 희화화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어서 실제적인 사례인 만큼 많은 사람이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선정했어요. 근데 한국어 자막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학회 회원들끼리 자막 작업을 했어요. (웃음) 여섯 명 있었는데 1/6로 나눴는데, 사람에 따라 영어 실력에 편차가 있으니까 몇 군데는 재작업하고 그랬어요.


여성주의 학회 주디의 학회지 표지


외대 내에서의 페미니즘에 관한 인식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고, 학과 내에서 젠더 감수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페미니즘에 대해) 인식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최근 관심 있는 사람들이 꽤 늘어난 것 같은데, 학교 분위기 자체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학교 커뮤니티도 문제가 있고요. 그렇다고 해서 관심이 없다고 단정 짓기도 어려운 게, 일단 참여할 수 있는 장이 형성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사람들의 생각을 알기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떻게 관심 있는 사람을 만날 것인가, 어떻게 관심을 알아낼 것인가 하는 활동방안에 대해서는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타인의 관심을 단정 짓기보다는 활동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홍보 부스를 차린 적 있는데 여성으로서, 남성으로서 불편함을 느꼈던 사례를 써달라고 했어요. 학우들이 와서 많이 써주시더라고요. 교수의 성희롱 발언도 드러나고. 불편함을 많이 토로하는 걸 보고 그런 것들을 해결하는 자리를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 커뮤니티도 여러 개가 있을 거 아니에요. 동아리라든가 학회 같은 경우에도 밖에서 볼 때는 못 느끼는데 그 내부는 마초적이고 권위적인 경우가 있거든요. 여성에 대한 불이익도 크고, 직책에 올라가는 데 여성이라는 위치가 장벽이 되는 경우도 있고.


학교 내에서 주디의 인지도나 인식은 어떤지 궁금해요.

조사하고 다니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근데 의외로 잘 아는 경우도 있어요. 아마 작년에 붙였던 거로 기억하는데, 신입 회원 홍보 포스터가 매우 핫했어요. ‘그 홍보물을 보고 (학회에) 가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이야기들을 유추해봤을 때, 선정적인 문구가 있어서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특이하니까, 여성주의로 활동하는 팀이 학내에 별로 없으니까요. 학생운동 단체나 사회과학 학회에서 여성주의 프로그램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내거는 곳은 없어요. 총여학생회도 없고. 커리큘럼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여성주의를 다루는 인권동아리 이퀄리버티가 있기는 합니다.


최근 여성주의 관련 이슈가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가져다준 변화가 있나요?

연대의 수가 늘었다고 해야 하나요. 활동하는 단체들이 가시화되고 함께 할 기회가 많아지기도 했어요. 이슈가 많이 나와서 속된 말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다른 학교는 신입 회원이 20명이 들어오는 경우도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그분들이 공통으로 쓴 이야기가 최근 이슈들이었다고 해요. 이럴 때 관심 있는 사람을 많이 모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주디가 가지는 방향이 있다면?

어느 정도 공통된, 궁극적인 방향은 서로가 일치하지는 않아도 공유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예를 들면 여성에 대한 차별, 폭력 문제에 반대하며 없애나가는 것도 있고. 여성주의를 더 공부하며 다른 이들과도 공유하고 싶은 부분도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느슨한 방식을 택한 것도 있어요. 여기 와서 빡빡하게 일을 하면 아무래도 들어와서 활동하기가 힘드니까. 한 학교, 한 과 안에서 하면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게 더 좋고, 그래서 저희가 택한 방식이에요. 그럼에도 중요한 건, (활동이) 끊기면 안되잖아요. 누군가는 계속 나와서 네트워크를 유지해야 하는 거고. 그래서 느슨하지만 끊기지 않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멸을 지향하되 소멸되지 않는? 궁극적으로 뭔가를 성취해야 한다거나 하는 빡센 곳은 아니고요. 알아서 얻어갈 거 얻어가는 그런 생각도 있고. 방임주의적인 구석도 있어요. 그게 주디의 장점이자 단점이고.



인터뷰,글/ 블럭(blucsha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