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성 증명서, YES or NO

제4회 여성인권영화제(FIWOM, 피움)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Virgin>에는 다양한 차원에서의 갈등이 담겨 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갈등에서부터 남자의 가족과 여자의 가족의 갈등, 남성과 여성의 갈등,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 법률가, 종교인과 사회 운동가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에서의 대립. 이 총 없는 전쟁의 원인은 ‘처녀성 증명서’라는 이란의 전통 때문이다.

45분이라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동안, 카메라는 지속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결혼 이후 아내가 처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이 울분을 토한다. 이혼 소송에 휘말린 아내들은 남편을 비난하지만, 병원의 증명서를 믿으라고만 할 뿐 사회의 문화가 잘못되어 있다는 지적은 잘 하지 않는다. 남편의 가족들은 의사가 돈을 받고 처녀성 증명서를 거짓으로 떼어줬다는 둥 며느리의 질이 ‘고리형’이어서 성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녀막이 파괴되지 않은 것이라는 둥, 며느리가 처녀막 재생수술을 불법으로 시술받았다는 둥 끊임없이 며느리를 의심한다. 사회 운동가는 이란 사회가 전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악습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법률가는 그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영상의 초반부에서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타헤레 하싼자데 감독은 이렇게 매우 건조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나레이션이나 자막은커녕, 양 측의 의견을 기계적으로 번갈아 보여주기만 하는 편집 방식은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감독이 어느 편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없게 만든다. 감독은 처녀성에 집착하는 남성들, 성 경험을 속이려는 여성들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관객들로 하여금, 본인이 가지고 있던 사안에 대한 기존 입장을 강화하거나 재확인하도록 만든다. 다시 말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관객의 몫으로 두는 것이다.




질문을 통해 관객들의 사고를 확장하다

영화 후반부에 드디어 감독은 영상 내부에 개입을 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 다큐멘터리가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이 여기에 있다. 목소리를 내는 방식에서의 독특함이다.  감독이나 ‘신의 목소리’가 등장하여 권위적 방법으로 처녀성 증명서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후반부에서 감독(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스스로 영상에 자신의 뒷모습을 등장시킨다. 그의 목소리는 다큐멘터리 속의 다른 인물과의 대화를 통해서 관객에게 드러난다. 등장인물에게 질문을 하는 방식이다.

감독의 질문은 인터뷰이들의 답변이 놓치고 있는 논리의 측면들에 대해서 짚어낸다. 그 동안 영화의 구성 자체 속에서 전혀 소통되지 못했던 양측의 의견을, 감독이 스스로 매개자가 되어 (나름대로) 제3자의 입장에서 교류시킨다. 이러한 방식은 마치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연상시킨다. 인터뷰이들이 새로운 질문에 대해서 새로운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양측의 의견이 교류됨과 동시에, 서로의 허점이 더 확실히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감독의 방식은 영상 속의 인물뿐만 아니라, 영상 밖의 관조자인 관객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영상 속에서 논쟁을 펼치는 양측의 논리를 비교하며 자신의 의견을 조율하던 관객들은, 감독의 질문을 통해 어떤 지점에서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획득하게 된다. 감독은 등장인물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통해,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관객들의 생각의 지평을 넓혀 준다. 이 과정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 나레이션을 통해 다분히 권위적인 목소리를 내는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효과를 창출한다.

어쩌면 이러한 방법이 처녀성 증명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녀성 증명서에 대해 일상적인 비판이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에서 감독이 고안해내야 했던, 수많은 생각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권위적인 목소리를 등장시키지 않고, 질문을 사용한 감독의 이 방법은 이란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효과적이다. 이미 완고하게 특정한 입장에 고착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쪽 입장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효과가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관객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물음표들

‘처녀성 증명서 논쟁’의 단계를 지난 상대적으로 진보된 사회에서 살아 온 우리들은 이란에서 벌어지는 처녀성 증명서 논쟁이 사실상 우습게 보일 수도 있다. 과학적으로 성 경험이 없어도 처녀막이 상실될 수 있고, 성 경험이 있어도 처녀막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상식적이다. 이란에서 이러한 과학을 무시하면서 여성들이 ‘처녀막 재생 수술’이나 ‘처녀성 증명서 위조’ 등의 선택을 하게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비용을 유발하고 있는 이란의 상황이 매우 코미디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냥 웃기지만은 않는 것은 상대적인 진보가 절대적인 선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안에서 인터뷰이들에 대해 자막이나 나레이션을 통한 어떠한 설명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에도, 그 사람들의 배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짐작을 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이란 사회의 모습이 한국 사회의 모습과 어느 정도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처녀성 증명서’라는 실물적인 관습은 아니지만, 여성의 성 경험과 남성의 그것, 즉 ‘처녀성’에 대한 수많은 암묵적인 차별적 담론이 존재하는 것이다. 여성에게는 순결을 강요하고, 남성의 성 경험은 오히려 자랑거리가 되는 게 여전한 현실이다.

<Virgin>의 감독이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이러한 한국의 차별적 담론들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고 있다. 이란인들에게 하는 질문들, 그리고 답변들은 한국적 상황에 맞추어 여과하여 다시 해석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이란이라는 생소한 나라의 문화를 담은 해외 영화가 한국사회에서도 유의미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