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너무 많이 신경 쓴다. 연예인들의 각종 대소사부터 아들 친구네 가정사까지 정말 다양한 곳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렇게 본인들이 다른 사람을 신경 써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 역시 나를 신경 쓸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행동거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예의는 꼭 지키려고 한다. 그 예의가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인지, ‘면종복배’ · ‘감언이설’의 그것인지는 상관없다. 사람들은 항상 웃으며 인사하고 조금 바쁘더라도 친절히 대하려 노력하며,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 믿는다. 설사 예의를 지키지 못 한 사람들조차도 최소한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진다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정(情)’이 있는 사회의 모습이 유지되는 것은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예의에만 너무 신경쓰다보니 ‘자신에 대한’ 예의는 지키기는커녕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실제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이렇게 ‘자신에 대한 예의’를 언급하지 않았을 경우 그 것의 존재조차 모르거나 까맣게 잊고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우선은 이것이 첫 번째 문제이자 가장 큰 문제이다. 문제가 문제인 것조차 모르는 것은 가장 심각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자세히 나가보자.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예의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은 사회에 팽배한 ‘자신감’ 또는 ‘자존감’ 결여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개인의 현실이나 미래에 대해 조금 진지한 얘기가 나올 때면 항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있다. ‘휴, 나는 안 될 거야’, 혹은 ‘뭐, 그 정도면 다행이지’. 정말 문제이다. 진취적인 목표를 향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지는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한다.

이러한 문제는 도전정신의 결여로 나아간다. 자신감이 존재하지 않다보니 당연히 어려운 일이나 위험부담이 큰일에 도전하려는 용기를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최종적으로 ‘신념의 상실’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하고 만다. 신념과 도전의 관계는 단순히 ‘신념으로 도전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 이보다는 ‘신념으로 도전하고, 도전으로 신념을 강화하는’ 양방향적 관계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도전정신이 사라지면 결국 남는 것은 현실 안주뿐이고, 신념은 상실되기만 한다. - 특히 20대에게 신념의 상실이 얼마나 큰 문제인 지는 굳이 더 서술하지 않아도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예의를 잊은 것은 맹목적인 ‘자기 겸손’의 강요 때문이다. 물론 겸손한 모습은 중요하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자만에 빠지지 않게 해주기도 한다. 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도 ‘제대로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종종 ‘비굴’을 ‘겸손’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맹목적으로 자신을 깎아내리거나 윗사람이라고 무조건적으로 굽실거리기만 하는 것을 겸손으로 착각하는 모습 말이다. 모든 것은 이 때문이다. 자존감 없이 자신을 낮추다보니 정말로 자신이 낮아져 버리는 것이다.

질문 하나 던지겠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존중하는가.

항상 이런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대는 얼마나 자신감으로 뭉쳐있는가”, “사람을 대할 때 얼마나 비굴하지 않을 수 있는가”, “자신을 낮추는 행위 그 자체로 자신을 높일 자신이 있는가”. 종래에는 모두가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