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를 제외하고 고작 2학기만을 남겨두고 있는 3학년 2학기 재학생으로 살다 보면 종종 ‘뭐 먹고 살지?’하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수시 지원서를 쓸 때 기자가 되겠다며 잘 알지도 못하는 신방과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하며 썰을 풀고, 야무지게 대학 4년 계획을(심지어 도중에 휴학 계획 한 번 없었다) 짰던 당당함은 어디로 갔는지. 그저 내가 원하는 일 비슷한 것만이라도 하면 좋겠다, 하고 자꾸만 꿈의 크기를 줄여나가기 바쁘다. 뭘 좋아하고 잘 하고 싶은지 알고 있고, 관련된 활동에 하나라도 끼어들려고 노력했다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상황이랄까. 그러다 우연히 뒤통수를 세게 치는 ‘얼얼한’ 이야기를 보게 됐다.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취해 멍해진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것은 사회부 수습기자들의 취재과정을 다룬 EBS <극한직업>이란 프로그램이었다.


출처 : 독설닷컴 http://cfs11.tistory.com/image/14/tistory/2009/01/05/11/30/496170bb4f5e6


 
 수습이 있어야 할 곳, 현장

 첫 장면은 현장에 투입된 수습기자들이 한 사건에 관련된 취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경찰 브리핑은 기본이고, 주변인들의 멘트를 하나라도 더 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사건 발생 이후에도 관련된 자료 수집을 하려고 사방팔방을 발로 뛰는 것. TV에서 드라마 방영하듯 고정된 시간이 있는 게 아니어서,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곳이라면 수습들은 언제 어디서든 달려가기 바빴다. 자살 사건 이후 쑥대밭이 된 침울한 빈소도, 흉악범이 잡혀 시끌시끌한 경찰서도, 아직 동도 트지 않을 즈음에 열리는 인력시장도, 그들에게 일터가 아닌 곳은 없었다.

 수습을 마친 정기자(소위 ‘일진’이라고 한다)들은 현장에 수습을 투입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제나 사건은 일어나요. 현장에 자주 가 봐야 분위기 파악도 잘할 수 있고, 짧은 시간에 기사도 쓸 수 있어요. 그거 연습시키는 셈이죠.” 물론 어떤 것도 쉽지는 않다. 한참 인터뷰를 해 놓고도 신원을 밝히기 꺼려하는 분위기 때문에 멘트를 딸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아예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은 까닭이다. 일단 현장에 다녀오면 자신의 취재를 토대로 기사를 써서 마감 전까지 제출해야 하는데, 기사 구성에서부터 헤맬 때도 있다. 심지어 그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있는 그대로 기사를 쓰지 못하기도 한다. 익숙지 않은 일을 할 때 따르는 서투름으로 치부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결국 답은 하나, 잘 쓰인 기사를 체화시키고 꾸준히 연습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가장 오래, 깊이 취재한 사람이 좋은 취재를 한 것’이라고 하는 어느 수습기자의 말은 왜 수습기자가 현장에서 떨어져 있지 않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눈물 쏙 빼는 혹독한 수습기간


 수습기간은 정기자가 되기 위해 거치는 단순한 코스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본격적으로 기사 쓰는 연습을 하고, 선배와 짝지어 다니면서 현장 분위기 읽는 법을 배우고, 언론사가 돌아가는 구조를 알게 된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취재원이고 발걸음 닿는 곳곳이 현장이라는 것을 깨우치는 때도 이 시기다. 하지만 체력적,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 때이기도 하다.

 우선 ‘미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영상 속의 수습기자들은 개인시간이라고는 단 1분도 없어 보였다. 사건이라는 게 예고 후에 터지는 것이 아니다 보니, 새벽까지 구역 경찰서, 소방서를 돌고도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은 기본이다. 그뿐이랴? 분초를 다투는 특종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빨리 이동하고, 마감 시간에 맞춰 기사 전송도 해야 한다. 선배들과 함께 하는 아이템 회의 참여하고 추가 취재건이 생기면 다시 나가야 한다. 본인이 생각한 아이템을 기사화하는 데 드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24시간은 한낱 찰나로 느껴질 뿐이다. 이래서는 밥은 고사하고 빵 한 조각 먹을 새가 없어 보였다. 영상 속의 한 기자는 새벽 3시가 되어서야 경찰서 당직실에서 잠을 청했지만, 새벽 인력시장 취재 때문에 1시간 만에 깨야 했다. 

 취재와 기사만으로 냉엄한 평가를 받는 것 역시 감내해야 한다. 기사가 좋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낙종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분명 일말의 언급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아무 소식이 없으면 해당 장소에 가서 뻗치기(오랜 시간 버티기)라도 해서 기사화될 ‘무언가’를 물어 와야 한다. 그뿐인가, 기사쓰기도 만만치 않다. 수습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꼼꼼하게 취재를 해도 분명히 책잡힐 부분이 있다는 것을 미리 짐작한다. 호랑이 같은 선배들은 수습 곁에 붙어 가르치고 충고하고 격려한다. 기사에서 어떤 부분을 강조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더하고 빼야 하는지, 세세한 맞춤법과 문장 호응까지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훑지 않는 곳은 없다. 일진들은 볼 수 있는 기사 속의 균열을 아직 발견하지 못하는 건, 그들이 햇병아리 같은 신입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 http://www.tvnews.or.kr/bbs/zboard.php?id=jour_bbs&page=10&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it&desc=desc&no=2181



 나는 과연 기자가 될 수 있을까

 
교수님이 알려주시는 적중률 100%의 족집게 시험문제인 것마냥, 영상에 나오는 많은 글자들을 받아 적어가며 집중해서 보았다. 보면서 머리가 띵-해졌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얼마나 어린애처럼 철모르게 굴었었는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이상적인 기자상에 다가가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다. 평소에는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잰 체는 다 해 놓고, 겁도 없이 글로 먹고 사는 소리를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저 자리에 앉아서 키보드나 두드려 나오는 게 ‘기자가 쓰는 글’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품을 들여 써야 하는 기사거리는 외면해 오지 않았나 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20대가 직접 발언하며,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대표 20대 언론이 되길 꿈꾸며 고함20과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머무른 기간과 글의 질은 전혀 관련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연륜에서 나오는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제대로 된 노력조차 하지 않고. 오늘 얻은 깨달음은 난 기본자세조차 흔들리고 있었다는 자명한 사실이다. 월급을 뛰어넘는 택시비를 꼬박꼬박 지불하면서도, 선배기자에게 혼이 나 처진 어깨로 기자실로 들어오면서도, 현장에 오래 있을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어느 기자의 말을 듣고 문득, 내가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뭐였을까 생각하게 됐다. 이름을 달고 쓴 자신의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는 기쁨, 남들보다 빨리 사건의 속살을 볼 수 있다는 기대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것은 아닐까. 생동감 넘치는 현실을 간접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난 내 앞길에 대해 진지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