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체벌 요구는 노예 근성의 발현

상벌점과 같은 것 역시 일방적인 길들이기라는 면에서는 체벌과 다를 바 없어

소통을 통한 궁극적인 교육 방식 마련 필요





요즘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이슈는 단연 체벌이 아닐까. 지난 11월 1일 전국 초․중․고교에 체벌이 전면 금지되는 학교 체벌 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체벌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체벌이 수면 위로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체벌과 관련한 사건이 잊을만하면 터지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고 학생인권조례가 선포된 초반에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모든 학교에 체벌 금지 조항이 내려질 때에는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특히나 체벌과 함께 교육을 받아온 기성세대들은 ‘애들이 통제가 되겠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그것을 입증해주기라도 하듯 연이어 사건이 터졌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체벌 금지에 관한 논쟁이 점점 반대의 입장으로 가중되는 듯하다.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하다. 교권이 무너진다는 것. 교권뿐 만 아니라 학습권마저 침해될 수 있기 때문에 체벌은 폐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체벌은 폭행과는 엄연히 다르고 체벌은 엄연히 학습을 촉구하는 효율적이고 근본적인 수단이라는 것이 체벌을 찬성하는 주장의 근거이다.

그런데 여기서 체벌과 폭행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너무나도 모호하다. 기성세대들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맞으면서 컸기 때문에 그것을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구타의 학습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교육개발원(KEDI)은 지난 6월과 7월에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의하면 ‘필요시 가벼운 체벌은 좋다’에 시민 59.4%가 찬성했고 ‘체벌이 꼭 필요하다’에 8.3%가 찬성하면서 체벌을 허용해도 괜찮다는 응답이 총 67.7%에 달했다. 가능하면 체벌하지 않는 것이 좋다(25.9%), 어떤 경우에도 체벌은 안 된다(6.1%)보다 훨씬 많은 수치이다.

기성세대는 그렇다 쳐도 요즘 학생들마저 체벌에 점점 무뎌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얼마 전 오장풍 교사사건에서도 그렇다. 학생이 교사에게 발길질을 당하며 두들겨 맞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심지어는 ‘학교에도 민주주의’를 외치던 학생들마저 인권조례를 없애달라는 추세이다. 얼마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서울특별시교원단체총연합회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서울 학생의 과반수가 ‘체벌 전면금지 이전이 더 좋다’고 답했다. 체벌을 반대해야 마땅한 학생들이 오히려 체벌을 찬성한다? 이야말로 진정한 노예근성이 아닌가한다.


물론 체벌을 금지한 후의 부작용들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교육계 안팎에서는 여전히 체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장풍 교사와 같은 사건이 그간 꾸준히 있어왔던 것 역시 사실이다. 체벌금지는 시대적 추세이다. 더 이상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정당화되고 합리화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체벌이라는 악순환의 무한 연쇄를 반복할 뿐이다.
사랑의 교사로 알려져 있는 페스탈로치도 매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그 매는 학생이 교사를 전적으로 신임하고 있을 때, 학생이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응분의 벌을 받음으로써 마음의 짐을 벗을 수 있을 때, 아이를 고무해 줄 때 비로소 정당해진다. 그러나 어디 교육현장에서 이러한 체벌이 이루어지던가. 사랑의 매라는 어여쁜 포장을 한 감정적인 폭행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지금 교육현장에서는 학교체벌이 전면 금지되면서 대체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다. 상벌점제도가 가장 큰 대안으로 논의되었고 시행된 곳도 적지 않지만 상벌점제도가 체벌과 다를 게 무엇인가 싶다. 학생들을 소통과 참여의 주체로 바라보지 않고 통제와 길들임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상벌점제도는 체벌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상벌점제도 역시 체벌과 마찬가지로 교육의 목표를 자치의 체험과 자율적 인격에 두기보다 권력의 기준에 순종하고 경쟁하도록 만드는데 일조할 뿐이다.




이처럼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는 시점에서 몇 학교들에 눈에 띈다. 용인 흥덕고에서는 벌점을 받은 학생은 교사와 1시간 동안 운동장을 산책한다. 인성교육도 강화해 함께 텃밭을 가꾸고 굿네이버스와 연계해 봉사활동을 함께한다. 서울 한울중에서는 사랑의 쪽지가 오간다. 서울 구로고에서는 비전업(Vision Up) 교실이 열린다. 일종의 성찰교실이다. 정치에서만 소통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교육현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소통이다. 체벌금지에 대해 칼날 같은 찬반론을 팽팽히 유지시키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 지금은 체벌금지 그 이후에 어떠한 대안들을 만들고 학생들의 인권을 어떻게 신장시킬 것인지에 대해 의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