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음악 문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상업적 문화 자본에 의해 놀아나게 된 현실을 대학생과 음악 기획 첫 꼭지(http://goham20.com/610)에서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지적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음악을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음악에 대한 애정만큼은 자부하는 대학생 네 명이 모였다. 요즘 대학생들은 음악을 어떻게 즐기고,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또, 대학생들의 음악 문화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몹시 추웠던 1월 말의 어느 날, 홍대의 한 카페를 달구었던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자.

* 음악 토크 게스트
김형석 (서울대 4학년) 이재호 (연세대 2학년) 정다은 (경희대 2학년) 이세연 (이화여대 2학년, 고함 4기)



음악 토크니까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해 보자. 각자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어떤 음악을 듣나?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다면, 그것에 대한 본인의 애착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세연  장르를 가려가며 어떤 한 장르만 듣진 않지만,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장르는 있다. 바로 포크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었는데, 여름방학 보충수업 시간에 ‘재주소년’의 음악을 들려주셨다. 재주소년이 그렇게 좋은지 몰랐다. 그 때 느낀 미친 듯한 설렘 덕에 고3 신분도 잊고 포크 음악에 열광하다가 모의고사도 망치고 그랬었다.

재주소년


재호  딱히 어느 장르를 많이 듣는다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듣는 음악을 함께 듣는 건 아니다. 인디 음악을 좋아한다. 중학교 때 ‘김윤아’나 ‘시이나 링고’ 등을 들은 후부터는 TV와 라디오에 매일 나오는 노래들에서 조금 멀어지게 됐다. 한참 걸그룹 등 아이돌 음악이 유행할 땐 유행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조금씩 듣는 노력을 하기도 했는데 하도 빨리 바뀌다 보니 그것도 힘들어 이제는 그냥 포기한 상태다.

형석  굉장히 잡식성인 편이라서 남녀 아이돌 그룹부터 인디밴드 노래까지 적극적으로 소비한다. 굳이 들을 때 편안한 장르를 생각해보면 가사가 없는 노래를 남들보다 좀 더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허밍이 흘러나오는 노래라던지.

다은  중2 때 친구랑 이어폰 한 쪽씩 나눠 끼고 음악을 듣는데 ‘더 리얼 그룹(The Real Group)’의 노래가 나왔다. 그 음악이 뇌리에 꽂혀 집에 가자마자 검색을 해가며 아카펠라에 광적으로 빠져들게 됐다. 요즘에는 바빠서 자주는 못하고 있지만, 온라인 동아리에 들어가 직접 아카펠라를 하기도 한다. 연습하고, 공연도 하고.

더 리얼 그룹(The Real Group)


네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다들 꽤 취향도 확실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음악들을 주로 어디서 찾아 듣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매스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것 말고는 어떻게 음악을 찾아 듣는지 전혀 감이 안 오는 나 같은 사람도 많다.

재호  사실 듣는 음악이 주류는 아니어서 가만히 있으면 노래가 들리거나 하진 않는다. 홍대 소극장 콘서트를 보거나 하면서 아티스트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고,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하기 위해서 사운드 페스티벌 라인업을 자주 참고하는 편이다. 명단에 모르는 아티스트가 끼어 있으면 한 번씩 찾아 들어보고 이런 식으로.

세연  나도 예전에는 그런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요즘에는 그런 적극성이 좀 사라지긴 했지만, 대신에 내가 할 일들을 대신 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디씨인사이드 인디음악 갤러리를 애용한다.

다은  아무래도 아카펠라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다 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카펠라 그룹의 노래를 계속해서 검색해서 듣는 편이다. 그렇다고 아카펠라만 듣는 건 아니다보니, 온라인 음원사이트에서 Top 100 같은 순위를 보고 스크롤을 내리면서 끌리는 노래들을 클릭하곤 한다. 또 뭔가 큰 히트곡이 터져서 이 노래는 알아야 뒤처지지 않겠다 싶은 곡들도 찾아 듣는다.

형석  이건 좀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도 있는데, 스마트폰을 구입한 이후로는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노래들을 어플을 통해 어떤 노래인지 찾아보는게 매우 쉬워졌다. ‘Soundhound’ 등의 어플을 사용하여 좋은 노래가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면 찾아보는 게 습관처럼 되었다. 특히 비트가 빠른 음악의 경우에는 헬스클럽에서 그런 식으로 발견하게 되는 일이 다반사다.



재호 씨와 다은 씨는 동아리에서 직접 음악 활동을 해 본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재호  과내의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 포지션은 베이스 기타다. 사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 아니고 공연 때마다 한 번씩 그냥 하는 수준? 우리 동아리는 굉장히 다양한 곡을 연주하는 편인데 아이돌 노래에서 가사 없는 노래까지 폭이 넓다. 하고 싶은 곡보다는 정해진 곡을 연습해야만 하고 실력이 올라가는 것도 더뎌서 흥미를 크게 느끼며 했던 활동은 아니었는데, 연습 막판에 뭔가 합주가 잘 되는 느낌이 들 때 공연이 잘 끝났을 때는 정말 진심으로 웃을 수 있다. 희열이 느껴진다.

다은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온라인 아카펠라 동아리에서 활동한다. 입맞추어 노래하다라는 뜻의 'Kissing(kiss+sing)‘이라는 동아리다. 아무래도 학내 동아리가 아니다 보니 각자의 배경이 다양해서 직장인들도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재호가 말한 것처럼 어느 순간 우리가 하고 있는 음악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아카펠라의 경우에는 꽤 많은 인원이 음을 내는대도 그 목소리가 하나처럼 묘하게 조화를 이룰 때가 있다. 그 때 느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참 좋다.


오늘 모인 네 사람이 아무래도 음악에 대해 나름대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음악을 소비하는 방법이나 음악 취향 같은 게 확실히 다양한 면이 있다. 네 사람이 굉장히 일반적인 경우라면 사실 대중음악이 편향적으로 흘러가는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대학생들의 음악 소비가 단순화되고 있는지 다양화되고 있는지, 네 사람의 생각은 어떤가?

형석  단순화와 다양화, 그 사이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치면 사실 단순화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긴 하다.

재호  나의 주변을 생각해 봤을 때는 대학생들의 취향이 다양화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냥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지인들을 통해 평소에 듣던 노래와는 다른 노래들을 알게 되며 내가 듣는 음악의 폭이 확장되고 다양화되는 경험을 했다.

다은  아무래도 대중가요가 그 이름대로 대중에게 노출되는 정도가 높은 만큼 주류 음악을 사람들이 많이 듣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사이에도 각자의 스타일을 찾는 사람도 많다.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세연  대학생들 아이돌 노래만 듣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꽤 인기 있는 인디 음악도 많다는 점에서 취향이 다양화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다양화라고 하면 누구는 아카펠라, 누구는 락, 누구는 힙합 이런 식으로 각자의 영역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 같이 취향이 넓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니까 공통된 취향의 범위가 넓어진 거다. 사람들이 소녀시대만 듣는 게 아니고 장기하도 듣지만, 이걸 가지고 취향이 다양화되었다고 말할 순 없는 것 같다.

음악 토크 기념 손목 인증샷


다양화로 가는 힘도 있지만 어쨌든 취향이 전반적으로는 단순화되었다는데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다. 나만의 생각인가? 어쨌든 이러한 현상에 대해 네 사람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하다.

다은  굳이 단순한지 다양한지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취향에 고급 취향과 저급 취향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유행 타는 걸그룹 노래를 듣던, 누군가가 ‘삼류’라고 이야기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던 개인의 취향을 타인이 왈가왈부하는 건 좋지 않다. 요즘 대세라는 걸그룹 노래 중에서도 이건 참 잘 만들었다 싶어서 듣고 싶어지는 노래도 있고 그런 거다. 굳이 다양화를 지향해야 될 필요는 모르겠다.

형석  동의하는 측면이 있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난 클래식을 듣지. 난 짱이야. 난 대단해. 아이돌은 저급해. 아이돌을 듣는 너희들보다 내가 더 고급이야.’ 이건 진짜 아닌 것 같다.

세연  인디음악 듣는 사람들이 좀 그런 게 있다. 주류 아이돌 음악을 듣던 누군가가 인디음악을 듣고 있으면,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너, 인디가 뭔지는 알고 듣는 거냐?’ 식의 반응을 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리스너라는 사람들의 과한 자부심이다.

재호  그런데 이걸 아주 부정적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게 나도 약간 그런 감정이 있다. 다들 걸그룹 얘기만 할 때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음악 취향에 대한 우월감이 생기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비주류음악이 일부의 호응을 얻는 하나의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남들과 다른 취향에 대한 자부심 말이다.

형석  그런 측면에서 나만 안다고 생각했던 아티스트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면 뭔가 이상하게 슬픈 느낌이 든다. 나 같은 경우엔 ‘두 번째 달’을 정말 오래 전부터 알았었는데 드라마 <궁>의 OST로 등장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예전엔 내가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두 번째 달’을 걸어놓으면 사람들이 와서 좋다며 이 노래 뭐냐고 물어보고 그랬었는데 궁 이후에 내 미니홈피, 버려졌다.

세연  비주류에서 배고프게 음악하던 아티스트들이 대중화되면 뭔지 모를 배신감을 느끼게 될 때도 있다. 뭔가 얘들은 이제 음악성이 떨어졌다거나 대중들에게 굴복했구나 싶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비주류라고 언제까지 비주류라는 법은 없는데 말이다. 머리로는 이런 감정이 정상적인 거 아니라는 거 알지만 왠지 모르게.

다은  나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아카펠라가 어떻게 보면 비주류 장르다보니 누군가가 좋아하고 관심을 가져주면 내가 너무 신나서 더 들려주고 이런 게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런 감정이 공감도 되는게, 아카펠라가 뭔가 나만의 상징이었으면 하는 자부심 섞인 감정도 있다. 정다은 하면 아카펠라를 떠올려주고 이렇게 기억해주길 바라는 건 있다.


대학생들의 취향이 다양화되었느냐의 문제는 이제 접고, 대학생들이 음악 문화를 주도하지 못한다는 문제에서 이야기를 풀어보자. 과거와는 달리 대학생들이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게 아니라 상업 문화에 대학생들이 물들어가는 게 너무 익숙하다. 왜 그런 걸까?

형석  아무래도 대학 내에 노래패 같은 전통이 대부분 끊겼다는 점이 한 몫 할 것 같다. 옛날에는 과마다 노래패가 있고 대학생이라면 노래패가 하는 노래들을 몇 개 씩은 알고 있었다고 한다.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노래패가 흥하던 시절에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노래면 노래, 코드면 코드 외우게 하고 시험 보고 이렇게 대학생의 독특한 음악 문화를 이어가는 게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시대 자체가 저런 식의 선후배 관계를 허용하지 않지 않나.

세연  대학생들이 노래 말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문화가 많아졌다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어떤 정서를 노래를 통해서 느끼고 공유했다면 요즘은 각자 보는 영화, 드라마 등다른 것도 많다. 또한 노래만이 가진 설득력이 없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취향 이전에 아티스트들이 생산하는 노래 자체가 뭔가 획일화된 것 같은 느낌이다.


브로콜리 너마저


조금 철 지난 느낌도 있지만 ‘장기하’와 ‘브로콜리 너마저’ 등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그들을 통해 대학생들, 청춘이 현재 가지고 있는 정서들이 사회적으로 분출된 느낌이 있다. 이런 사례가 많아진다면 음악 문화를 만들어가는 역할이 대학생들에게 돌아올 수 있을까?

형석  낙관적으로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개인적인 느낌인데, 장기하나 브로콜리 너마저는 시대를 잘 탄 결과로 대중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특히 장기하의 경우는 청춘이 가지는 세대 정서를 노래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도 흥미로운 점이 너무 많은데 그 점들이 부각되어서 성공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미미 시스터즈가 추던 알 수 없는 춤이라던지, 비주얼적인 측면도 그렇고, 서울대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도. 인디 레이블을 통해 올라오긴 했지만, 그들이 소비되는 방식은 철저하게 주류적이다. 최근에 장기하의 다이어트 전 사진이 온라인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걸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세연  브로콜리너마저의 경우에도 대학생들이 많이 듣는 음악이긴 하지만, 사실 이들이 순수하게 대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면서 인기궤도에 오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스미디어의 힘이 컸다. 이하나의 페퍼민트에 정말 자주 나왔고, 특히 많은 광고에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이들이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주류에 포섭되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이지 이들이 젊음이 만들어낸 스타라고 보기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다은  너무 많은 가수들이 등장하고 퇴장하고를 반복한다. 그런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서 대중적 인기를 얻는 곡들을 보면 그 인기가 아티스트 자체가 가진 능력이나 매력보다는 대중에게 노출된 빈도가 높다는 점에서 나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