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갑쎄요?’, ‘뭐할끼니?’, ‘찮은형’, ‘턱주가리아’, ‘쩌리짱’, ‘급당황’‥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나왔던 말들이다. 무한도전은 상황을 잘 표현해주거나 비유와 풍자 가득한 재치 넘치는 자막이 인기의 한 요소인데, 그 중 일부가 우리말을 해치는 바르지 못한 표현이라서 방통위로부터 몇 회 경고를 받은 바 있다. 무한도전만이 지닌 신선하고 감각적인 자막을 너무 박하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냐고 는다면 다른 예시를 들 수 있다. 2007년 6월 3일 방송분에서 드러난 자막 실수는 무한도전의 빛나는 감각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웃길려고(웃기려고)’, ‘꽁트(콩트)’, ‘금새(금세)’. ‘희노애락(희로애락)’, ‘깜해서(깜해서)’ 등은 잘못된 우리말 표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무한도전>을 예로 들긴 했지만 혼자 뭇매 맞기에는 다른 프로그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웃음과 재미를 우선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우리말 훼손은 이미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었다. 단순히 문법적으로 틀린 표현을 방송에 내보내는 것 외에도, 신체/외모 비하성 발언 등 ‘내용에 문제 있는’ 발언도 쉽게 나온다. MBC 라디오스타 역시 지난해 “돌아버리겠어”, “쪽팔리잖아” 등의 비속어와 “그룹 중에서는 가장 평균학력이 낮을 수도 있겠네?” 등 인신공격성 발언 등으로 방통위의 경고를 받은 바 있다. ‘삼가해 주세요(삼가 주세요)’, ‘가르키다(가르치다/가리키다)’ 같은 경우 너무 빈번히 등장해 이제 어느 것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이다. 'TREND REPORT Fiㄹ4'처럼 정체불명의 제목을 단 프로그램이 생기는가 하면, ‘King of 대단’, ‘막춤 大작렬’ 등 한자와 영어가 뒤섞인 혼란스러운 표현들도 자주 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렇게 우리말이 끙끙 앓고 있는 가운데, 바른 우리말 사용에 앞장서야 할 언론도 우리말 훼손에 힘을 보태고 있다. 특히 인터넷 매체들은 우리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1월 27일 현재 포털 사이트 네이트에 게재된 기사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기린예고 다이어트 식단, 실제 싱크로율 몇%?’, ‘시크릿가든 김비서' 김성오, '마이더스'서 양아치 변신’, ‘통큰 교복’될까?…롯데마트 교복 판매’, ‘LG전자에 '따' 당한 LG유플러스’, ‘수영 얼짱 정다래 말솜씨, 시상식장 빵터졌다.’ 등 은어나 틀린 표현들이 가득하다. 인터넷에서 쓰이는 유행어를 기사 제목으로 그대로 붙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류 최강’, ‘종결자’는 기사 목록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말이다. 정확한 언어로 독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해야 할 의무를 진 언론마저 우리말 훼손에 동참하는 꼴이다. 

일상생활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전 국민이 컴퓨터 한 대씩은 가지고 있는 상황인지라, 통신언어의 사용도 활발하다. 지못미, 악플, 레알, ~드립, 시망, 쉴드, 리즈시절 등의 은어를 일상에서 쓰는 것은 그리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은어뿐 아니라 비속어 사용도 심각한 수준인데, 비속어를 사용하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친구들과 통하는 그들만의 은어나 비속어를 쓰는 것이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은 탓에, 청소년들의 비속어 사용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청소년을 포함해 비속어 사용에 그다지 주저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왜 잘못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언어습관의 차이로 바라보며 우리말 파괴라고까지는 생각지 않는다. 맞춤법과 표기를 맞게 하는 데에는 크게 신경 쓰면서도, 곱고 바른 우리말을 써야 한다는 의식은 잘 정립되어 있지 않다.

우리말 파괴를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외래어, 외국어를 남용하거나, 비속어, 은어, 통신언어를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거나, 인격을 비하하는 부적절한 말을 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뒤틀린 우리말을 쓰거나, 있지도 않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는 것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유행이 되었고,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움직임도 미미하다. 이따금 나오는 방통위의 경고 기사만이 방송에서 우리말이 난도질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준다. ‘말은 그 사람을 드러내는 인격’이라는 인식은 엷어졌고 바른 우리말 사용을 호소하는 외침 역시 한글날 전후에만 어렴풋이 들릴 따름이다. 거의 보지 않는 시간에 방영되고 신문 귀퉁이에 작게 실릴 뿐인 ‘바른말 고운말’은 사람들에게 가 닿지 않는다. 바른 우리말은 이렇게 화석이 되어가는 것일까. 새삼스런 결론이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말은 위기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