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욜라 동산이라 불리는 서강대학교 도서관 옆 잔디밭은 여전히 스산하다. 이 곳은 다수의 벤치와 자판기가 설치돼있어 학생들의 휴식공간으로 애용되곤 한다. 하지만 다른 일들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과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의해서 그 흔적들은 사라졌지만 이번 학기 설치됐던 두 개의 텐트는 여전히 학생들의 기억 속에 있다. 처음은 등록금동결자라는 이름으로 단식농성을 벌였던 5명의 학우들이었다. 그들이 텐트를 제거한 얼마 후 서강대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이 텐트를 치고 단식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방법과 방향에 있어서 서로 충돌하고 갈등했지만 목적은 같았다. 대학생들의 고통, 미친 등록금 문제의 해결이었다.
 

많은 이들은 등록금 인상은 대학생들이 단결, 투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모든 이들이 반대급부에 서있어야만 타당성이 생긴다. 그러나 등록금 인상에 모든 이들이 반대하는 건 아니다. 인상에 조건부 찬성하는 단과대 학생회도 있었다. 서강대 전 사회과학대 학생회장 정민석(08)군은 몇몇 단과대 학생회는 효율성을 조건으로 인상에 찬성하기도 한다. 학교가 일방적으로 등록금을 인상하더라도 무관심한 곳도 있다. 이들은 등록금 인상되더라도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게 있다면 상관없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결국 올리고 내리는 문제보다 어떻게 쓰이느냐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한다. 등록금 문제에 대해 모든 대학생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학생 개개인도 마찬가지다. 등록금이 부담이 되지 않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경제적으로 가정 형편이 괜찮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등록금 인상에 대한 걱정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작다. 서강대 커뮤니티 사이트인 청년광장의 서강대-서울대 교류전(서서전)에 관한 글에는 진짜 서서전 연다면 전 등록금 7%올려도 낼 의지가 있음...”, “진짜 서서전이 열린다면 전 등록금 10%인상한대도 기꺼이 내겠습니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행정고시나 외무고시 합격자에 대해 등록금 혜택을 요구하는 글에는 우리가 무슨 거지도 아니고 그런 걸 요구하냐고 말하는 댓글도 달렸다. 이런 댓글들은 등록금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모두 같지 않다는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사회적 시선 때문에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예를 고려한다면 이런 생각을 가진 대학생들은 더 많을 거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고의 회로가 다르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등록금 문제에서 나아가 근본적인 경제력의 차이로 인한 심리적 괴리도 나타난다. 등록금 때문에, 생활비 때문에 아르바이트에 매진해야 되는 학생들은 해외연수나 여행은 생각하지 못한다. 사정이 나은 학생들은 친구들의 걱정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학교 2학년생인 최유리 양은 친구들과 대화에서 위화감을 느낄 때가 있다. 형편이 좋은 친구들이 해외 여행지를 이야기할 때 대화에 끼어 들 수 없다. 명품 브랜드 이야기를 할 때도 잘 모르기 때문에 말을 잘 안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거리감을 느끼고 가정 형편이 비슷해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들과 가까이 하곤 한다.”고 말했다. “가끔은 사고의 회로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대학교 3학년생인 조군의 경우, 등록금을 납부하기 위해 방학 중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3주 동안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하는 다른 일을 병행하기도 했다. 비정기적으로 체형에 맞는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피팅모델 아르바이트도 했다. 재학 중인 지금은 방과 후와 공강 시간을 활용해 학교 도서관과 조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번 돈의 일부는 생활비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학자금 대출금을 갚는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학생들은 같은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해외여행을 다녀온다. 그렇지 않으면 친구들을 만나거나 휴식을 취한다. 부모님의 경제력에 의해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건 경제력에 의해, 세대로 취급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심리적 격차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조군은 마트나 바에서 일을 하다 보면 대학생들도 보인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에 쇼핑을 하거나 술을 마신다. 고객으로서 그들을 직접 대면 할 때 감정적인 부분에서 고통을 느끼는 건 아니다. 하지만 힘들 때면 서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내가 왜 일을 해야 하지? 같은 생각도 든다.”고 말한다. 물론 경제적으로 형편이 괜찮은 학생 중에서도 조군 같은 대학생들을 이해하고 동조하는 학생들도 존재한다. 김용탁 군(서강대 3학년)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이나 다른 대학생들을 보면 나도 해봐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대한 괴리감은 크다. 진종희 군(한국외대 3학년)후배들이 패스트푸드 배달원이 불친절하다고 매장에 전화하더라. 몇 분 후에 배달원이 다시 와서 사과했는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한 대학생은 아르바이트해서 돈 좀 벌었으니 한 턱 쏘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부모님께 용돈 받는 너희들이 쏴야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下記)

110일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G20세대 젊은이들이 세계국가 대한민국의 주역이라고 말했다. G20세대 외에도 88만원세대, G세대, P세대 등 20대를 지칭하는 용어들이 광범위하게 언론과 유명인사들의 입을 통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용어들에 대해 세대에 대해 명명하는 것은 세대 내에 있을 수 있는 차이나 갈등을 보지 못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모든 대학생들이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등록금에 대한 개개인의 입장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실 연봉이 1억 원인 부모의 자녀와 2000만 원인 부모의 자녀가 느끼는 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차이가 학문과 꿈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대학생들이 취업에 매진하게 만드는 이유라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미국 하버드 대학교는 가정형편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 적용하고 있다. 이 제도는 모든 학생들이 등록금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하게 만들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갈 길은 멀어 보인다. ‘학생들을 위해서’, ‘미국 대학 등록금은 훨씬 비싸다등의 근거를 대며 명확한 요인 없는 등록금 인상은 계속되고 있다. 등록금 심의 위원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자신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대선 공약인 반값 등록금또한 요원하다. 기성세대들은 너희들이 투쟁도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대학생이 너희일 수 없다.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모르는 너희와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사이에서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무서운 소리가 들려와서 발을 헛디디면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강이. 그러나 연암 박지원은 일야구도하기에서 무섭게 들리는 강물소리는 자신이 흉중에 품고 있는 뜻 때문이라고 말한다. 깨달음을 얻은 박지원은 하룻밤에 아홉 개의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고민과 성찰이 있다면 우리들 사이에 있는 그것도 건널 수 있다.



나는 등록금이 오르더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등록금 인상분 때문에 누구는 고작 20만원, 30만원이라고 얘기하는 돈 때문에 대출을 하거나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난 그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등록금동결자중 한 명이었던 서강대 사회과학대 학생회장 김윤영 양이 자신의 선배가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단식농성이 있었던 로욜라 동산에는 광주민주화항쟁을 알리기 위해 투신한 김의기 열사의 기념비가 있다. ‘동포여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김의기 열사의 외침은 아직 고요하다. 기념비 위로 쏟아지는 이 비 때문인지,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인지. 봄은 내밀었던 얼굴을 숨기고 여름이 자신을 드러내고 있지만 로욜라 동산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 로욜라 동산에도 봄은 찾아온다. 강을 건널 때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