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반만년 역사 중 가장 뼈아픈 시기는 언제일까? 라는 질문에 우리 국민 대다수는 1910년부터 1945년 8월15일 광복이 되기까지 일본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일제강점기'라고 답할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긴 시간동안 우리보다 못 하다고 여겨왔던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온갖 수탈을 당하고 억압을 받은 그 기억을, 광복 70년을 향해 가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여전히 잊지 못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이라 하면 무엇이든 결코 져서는 안 되는, 꼭 이겨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한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치욕스러운 역사라 불리는 36년의 암흑과 같은 시기. 우리가 역사서를 통해 그에 대한 사실을 하나씩 깨우치는 중에도 치가 떨리는데, 당시를 살던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김별아 작가의 '가미가제 독고다이'에서 당대의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소설은 작품 속 화자인 '윤식'을 통해 자신의 증조부와 조부모의 삶이었던 조선 후기 백정들의 삶이 매우 잘 묘사되며 이야기는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할아버지였던 쇠날과 할머니 올미의 언밸런스한 사랑이야기부터 아버지 훕시가 태어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아버지 훕시가 진주 하씨 성을 사서 신여성이었던 어머니와 만나게 된 과정, 그저 미천한 신분을 탈피하고자 돈과 권력과 가문에 집착하던 아버지가 도리어 그것에 속박 당하고 지배당하는 모습,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 속에서 자인된 윤식의 방탕한 삶을 살아간다. 평생의 우상으로 여기던 형 경식이 반일 행적으로 일제 경시청에 끌려가고, 면회장에서 형의 여인인 현옥과의 만남, 그리고 그 후의 일들에 의해 윤식이 갖게 되는 의문과 삶의 방향을 보여준다.


집에서 키우는 가축보다도 더 못한 대접을 받는, 즉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던 백정들의 삶을 실감나게 묘사하며,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조선시대 천민 중의 천민, 백정에 대해 작가는 세밀하게 묘사를 한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왜 신분제 철폐가 절실했던 것인지, 이것이 왜 모든 나라에서 근대적 의의가 되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또한 이는 훕시가 왜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인간의 탈을 쓴 금수마냥 돈과 권력에 집착하게 되는 지 상당한 필연성을 부여해 준다. 오로지 사랑이 아닌 자신의 신분탈피에 집착했던 아버지를 보며, 그리고 그 아버지의 재력을 사랑하여 결혼한 독립운동가의 어머니를 보며 윤식은 세상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이는 가족의 분위기가, 부모님간의 사랑과 부모 자식 간의 사랑과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해 주는 구성이다.

자신이 어렵사리 얻은 부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는 친일 행적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앞장서서 일본에 대한 충성과 태평양전쟁의 당위성 및 입대를 홍보하고 다닌다. 그런 아버지에게 더 없는 원망과 증오를 가지는 어머니와, 외할아버지 장례식에 간 나는 외사촌으로부터 친일파의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고,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이성을 잃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고 표출한다. 그렇게 돈과 명예 앞에 일제강점기의 인물들은 하나씩 하나씩 그들의 본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던 중 뜻 밖에 항상 모범적이었고 나의 우상이었으며 엘리트였던 형이 독립 운동 조직의 혐의를 받아 구치소에 갇히게 되고, 그는 거기서 형의 여인 현옥과 마주치고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로 인해 윤식은 자신의 17세 소년 난봉꾼과도 같던 처지를 청산하고 현옥을 만나 관심을 얻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사랑하는 인간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현옥을 통해 보고 듣고 알게 된 대다수 조선인들의 비참한 삶으로 인해 윤식은 점점 더 자신이 자라온 환경, 친일파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그렇게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게 되고, 형이 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아닌 어렵고 힘든 항일의 길을 걸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듯하다. 이렇게 소설은 친일에 대해 날선 비난도, 강한 비판도 하지 않은채 그 시대의 삶과 평범하지는 않은 가정을 조명하며 그 당시 우리 선조들의 삶을 은은히 조명하고 있다. 소설의 끝자락, 윤식은 가미가제 특공대로 차출되어 가게 되고 그 일련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작가는 끊임없이 묻고 있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 상황에서 어느 것이 옳은 것이냐고, 어떤 삶을 사는게 저 당시의 사람들에게 정당했느냐고, 그리고 이 소설을 읽는 우리였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겠냐고.

신석정 시인의 시 <꽃덤불>에도 이러한 구절이 있다.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 멀리 떠나버린 / 몸을 팔아버린 /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이 표현만큼 저 당시의 사회상을 잘 묘사한 말이 있겠는가. 다들 시작은 똑같았다, 망국의 백성으로. 그랬던 각자의 사람들 중 누군가는 독립군으로도, 비밀 조직의 독립투사로도, 또는 한글과 우리 것을 가르치고 보존하기 위한 학자와 교사로서 묵묵히 광복을 위해 노력해 온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친일 행적을 선택했다. 이러던 중에 일제는 무자비하게 우리를 탄압하고 짓밟았다. 그랬기에 훕시, 정선, 경식, 윤식, 현옥 등의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이고, 신석정 시인의 시 또한 적절한 묘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36년간 민족과 나라를 배신한 친일파들의 행적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고 벌 받아 마땅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친일적 삶의 선택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또 가미가제를 가는 윤식을 통해 사랑의 참의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약 이 암울한 시대를 살았더라면,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았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 다음 주는 시험 기간인 관계로 한 주 쉬어갑니다. 6월21일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