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종 드 히미코> 리뷰(http://goham20.com/751)에서 처음으로 아지트의 개념을 살펴보았다. 아지트의 개념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현대인의 안식처’이다. 공유하는 가치가 사라진 이 사회에서 개인의 개성은 존중받기 힘들어졌다.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꼽아보라 하면 모두 다른 것을 지목한다. 사회가 세분화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장, 위치를 기준으로 사회를 바라보기 때문에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이해가 힘들어졌고, ‘보편’과 다른 ‘소수, 특수’는 소외돼버리고 만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이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신만의 공간으로 숨어들기 시작했고, 이것을 ‘현대 사회의 아지트화’라고 이름 붙였다. 여기, 사람들의 아지트를 엿볼 수 있는 드라마가 있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이다.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 아지트

다소 쓸쓸하게 느껴지는 OST와 함께 드라마는 시작한다. 자정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열어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라 부른다.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모두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 사연들 속에는 각각 하나의 음식이 연관되어 있는데, 한 편의 에피소드 당 하나의 음식을 소재로 하여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음식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사람들도 노숙자부터 AV배우까지 각계각층에서 모였고 그들이 가진 이야기 또한 다양하다. 이들은 심야식당에서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긴 음식을 먹으며 위로를 받는가하면, 자신의 고민거리를 털어놓기도 하고 혹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스토리’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8화에 나오는 카자미 린코의 야끼소바 이야기. 카자미 린코라는 아이돌 출신 배우는 심야식당에 오면 항상 야끼소바(볶음면)을 주문한다. 야끼소바는 린코가 어렸을 적 아빠가 자주 만들어 주던 음식이다. 지금 린코의 아버지는 그녀의 곁을 떠나가고 없다. 린코는 아버지를 추억하며 이 음식을 찾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에서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의 배역을 맡게 됐다. “아빠, 그 때 왜 날 버린거야? 나는 아빠 원망 안 해.” 이 대사의 감정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다며 감독의 꾸중을 들었다. 여느 날과 같이 심야식당에서 야끼소바를 시켰는데 아버지가 늘 뿌려주던 시만토가와의 파래김이 뿌려져 나왔다. 아버지도 심야식당에 다녀갔던 것이다. 부녀가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심야식당이라는 공간을 통해 둘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고, 아직도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캐릭터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되어 린코는 이 영화로 상을 받았다. 카자미 린코에게 심야식당은 사랑과 위안의 아지트인 것이다. 종종 와서 야끼소바를 먹으며 아버지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느끼며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 말이다. 노숙자인 린코의 아버지가 딸이 승승장구하는 기사를 오려 가슴에 간직하는 마지막 장면은 가슴을 찡하게 한다.


나를 위해 너를 밀어낼 수 밖에 없어

한 유명 뮤지컬 배우가 심야식당에 와서 학창시절 동창인 마리링을 만났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두고 사람들 앞에서 으스댄다. 마리링은 스트립 댄서. 이 남자는 은근하게 마리링을 무시한다. 아는 여자가 그런 곳에서 춤추는 게 충격적이라면서. 그리고는 함께 있던 다른 이에게 뺨을 맞는다. 스트리퍼가 나쁜 것이냐고, 뮤지컬을 하고 있으면 훌륭한 거냐고. 이 배우는 반강제적으로 심야식당에서 나가게 된다. 주인장은 밖에 있는 뮤지컬 배우에게 한 마디 한다. “우리 가게에 왔다면 신분 같은 건 버리게.”

아지트는 위로 받기위한 ‘우리들 혹은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서 계급도 신분도 차별이나 무시도 없어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는 밀어내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바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세상에 대한 소심한 반항이다. 나의 아지트로 들어오려면 내게 맞춰줘야하고 그렇지 않다면 너는 내 아지트에 들어올 수 없다고 울타리를 쳐버린다.



한 편당 25분, 총 10회로 드라마치고는 짧은 분량이지만, 이 드라마가 던지는 감정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소위 말해 소외된 이웃이라 불리는 그러나 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이들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는 나의 모습에 좀 더 공감하고, 더욱 빠져든다. 고요한 OST와 낮은 채도의 영상, 그리고 주인공이 만들어 내는 묵직한 감정선까지. 당신의 마음을 은근하게 흔들어 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