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기 위해서 형광등을 끄려는 순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별 일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무시하고 자려고 했으나 벨은 오랫동안이나 울려왔다. 잠이 확 깨자 짜증을 내며 친구의 전화를 받자마자 왜! 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소리친 것이 무안 할 만큼 들려오는 친구의 울음소리. 당황하여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조용히 들려오는 충격적인 소식. “우리 엄마, 아빠 이혼 하셨어. 어떡하지?”

점차 증가하는 한 부모 가정

수업시간에 우리나라의 가족 형태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하여 현대에는 핵가족이 보편화 되어 있다고 배웠다. 그러나 이러한 수업 내용이 변해야 하는 실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핵가족 비율은 뚝 떨어진 반면 한 부모 가정(한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 비율은 오히려 늘고 있다. 한 부모 가정의 비율이 늘고 있는 이유는 개인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적 성향 증대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결혼의 영속성에 대한 개념이 와해되면서 성격 차이, 경제 문제 등의 이유로 현재 부부 10쌍 중 한 쌍이 이혼 할 정도로 이혼건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혼율이 점차 늘고 있어 한 부모 가정의 증가는 가족 변화에 있어 거부할 수 없는 현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가족 해체와 그 후

전통적인 대가족이 산업화를 거치면서 핵가족으로 분화하였다. 그러한 핵가족이 이혼율의 급증으로 한 부모 가족, 조손 가족 등으로 나타나면서 ‘해체에 따른 재탄생’이 이뤄지고 있다.

여자가 원룸형 아파트에서 혼자 살며 형광등 가는 것은 물론 망치질도 거뜬하다. 남자가 원룸형 아파트에서 혼자 살며 요리로 간단한 식사를 차리고 설거지, 청소, 빨래까지 가능하다. 위의 모습은 1인 가족(혼자 사는 사람)의 모습이다. 1인 가족의 가장 큰 비중은 독신남녀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이혼 건수가 많아지고 이혼남·녀의 비율 증가로 과거에 비해 큰 폭으로 1인 가족이 증가했다. 이혼 후의 공간적 가족 해체 현상을 엿볼 수 있는 가족 유형이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는 문구를 쓰라고 했을 때, 유치원생들 중에 손을 들고 “엄마는 없고 할머니는 있는데요?” 라고 질문하는 유치원생들이 있다고 한다. 선생님들은 그러한 질문에 익숙하여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문구를 수정해준다고 한다. 이혼·재혼율의 높아지면서 조손 가족(조부모와 손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 가족 형태는 정부나 공공 기관의 지원금에 의존하거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단순직으로 어렵게 생활비를 벌고 있다. 새로운 가족 유형이지만 복지정책이 필요한 가족 유형이다.


가족 해체와 재탄생

과거의 풍습대로 라면 남편이 죽은 뒤 아내가 재혼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겨 과부의 재혼을 금지 또는 제한하던 풍속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현재 사고방식이 사라지게 되면서 재혼율이 증가하고 있다.

재혼율이 늘어나며 생기는 새로운 가족 형태로 ‘패치워크 가족’이 있다. 재혼으로 인해 성이 다른 가족들이 모여 산다는 뜻에 붙여진 패치워크 가족은 다양한 헝겊 조각을 여러 개 이어 만든 패치워크를 연상시킨다 하여 붙여졌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현대 재혼가정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패치워크 가족은 사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 파트너에서 저 파트너로 전전하는 방랑자들 때문에 부각된 것이 아니다. 다양한 존재를 인정하고 조화를 추구하려는 성향을 잘 대변해주는 가족 유형이다.

당신의 가정은 안녕하십니까?


짧은 문장이지만 무의식을 꼬집은 표제어였다. 내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면 딱히 관심 갖지 않고 쉽게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하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담은 표제어다. 실제로 내 가족이 아니어도 가족 해체로 인해 고통 받고 상황이 막막한 주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다만 관심을 안 갖고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단란한 가족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가족 유형을 받아들이고 대비 할 때” 라고 말했다. 증가하는 이혼율·재혼율에 따라 가족형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가족 해체 뒤에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고 해서 비판적인 시선과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몰아가기 보다는 이들에 대한 좀 더 따뜻한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존중해주고 ‘그들 나름의 삶’을 지켜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