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열풍이 불면서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들을 보고 싶어 하는 대중의 열망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열망이 단순하게 가창력 좋은 가수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 가요계를 지배하고 있는 아이돌 가수에 대한 비판의 불씨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너도 가수냐’ 라는 말로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아이돌들의 가창력 부족에 대해서 대중들의 불만이 터진 것이다. 그러나 아이돌 가수들에게 왜 가창력을 요구하는지부터가 의문이다. “고음 잘 올리고, 중저음이 탄탄하며 음정이 안정적이면서 다양한 창법을 구사할 줄 아는” 이런 종류의 가창력이 대체 아이돌에게 필요하기나 한 걸까?   

 

 


 

노래 잘 불러야 진정한 가수인가


현재 댄스 음악이 중심이 되는 아이돌 음악 속에서, 아이돌 가수들이 부르는 곡들은 대체로 탁월한 가창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이돌 가수는 보통 5명에서 많게는 9명정도의 그룹으로 활동하는데, 사람이 많다보니 각자 맡아서 부르는 부분이 적고, 후렴구는 다 같이 부르기 때문에 개개인의 가창력을 평가하기조차 힘들다. 더구나 요즘엔 똑같은 가사를 반복하는 후크송이 많아지므로 굳이 노래를 잘 부를 필요가 없다. 다만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하기 때문에 호흡조절은 잘해야 한다. 이렇듯 현재 한국의 아이돌 음악은 개인의 가창력이 중시되기 보다는 외적으로 특정한 컨셉을 잘 살려서 매력을 느끼게 하고, 멤버간 조화를 통해서 춤을 잘 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노래를 부르는 ‘가수(歌手)’라고 나왔는데 노래는 기본적으로 잘 해야되지 않느냐” 고 묻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가수를 일괄적인 가창력의 잣대로 판단할 수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고음이 올라가느냐 또는 음정이 안정적이냐의 문제는 절대로 가수를 평가하는 기준이나 그 가수가 주는 감동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곡을 만드는 소위 싱어송 라이터들 역시 가수다. 하지만 그들이 전부 가창력이 뛰어나서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김광진의 ‘편지’라는 노래만 들어봐도 그가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보컬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편지’는 김광진의 보이스와 너무도 잘 어울렸고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울렸던 노래이다. 델리 스파이스의 ‘챠우챠우’ 라는 노래를 들어도 보컬이 뛰어나진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부르는 노래 중에 하나이다. 예를 들면 끝도 없다. 

미국의 록 스타인 밥딜런, 커트 코베인, 오지 오스본. 이 세명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창력으로 따지면 참 형편없는 보컬이라는 점이다. 밥딜런은 지극히 자신만의 스타일로 특이하게 노래를 불렀고, 커트 코베인은 질러대고 소리치는 듯이 노래를 불렀다. 오지오스본은 괴기스러운 목소리였고 고음은 거의 못 냈다. 그러나 이 셋은 수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엄청난 록 스타다. 이들 역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아닌가? 곡을 직접 만들든, 록을 하든 힙합을 하든 전자음악을 하든 자신이 노래를 부르면 가수인 것이다. 이 셋을 보면 가수라고 해서 전부 가창력이 뛰어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아이돌 가수의 정체성은 ‘보여 주는 것’에 있다


아이돌 가수와 미국의 록 스타들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감동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가창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자신의 노래를 자신의 방식으로 잘 소화해냈기 때문이라는 점은 꼭 강조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아이돌도 가창력과 관계없이 그들의 음악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내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감동받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좋은 곡을 만들어서 자신의 부족한 보컬 실력마저 충분히 만회하는 싱어송라이터들 같이, 아이돌도 보컬 능력에서의 부족함은 화려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면서 보완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이야말로 아이돌이 가질 수 있는 특색이자 강점이다.

아이돌 음악에서는 시각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MTV가 탄생한 이후로 음악 산업 자체가 시각적인 부분에서의 효과 역시 무시할 수 없게 되었고, 마이클 잭슨의 화려한 춤을 통해서 이제 ‘보는 음악’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 와중에 아이돌 음악은 시각적 효과의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탄생했다. 예쁘고 잘생긴 어린 미소년, 미소녀들이 나와서 노래와 춤을 추면서 특색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아이돌 음악의 고유한 특색이며, 그로인해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켜서 대중적인 인기를 몰고 온 것이다.

아이돌 가수가 뛰어난 가창력을 겸비하게 된다면 유리한 점이 많다. 클라이맥스에서 돋보일 수 있으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해볼 수도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플러스 알파의 요소일 뿐이다. 결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아이돌 음악의 본질은 ‘보여주는 것’ 이다. 음악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음악에 맞는 특별한 의상 컨셉과, 분위기, 그리고 춤이 없다면 아이돌 음악으로서의 완성도와 상품성은 떨어져 버린다. ‘나는 가수다’의 가수들이 노래를 정말 엄청나게 잘 불러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면, 아이돌 가수들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뽐냄과 동시에, 무대를 장악할 수 있는 잘 다듬어진 안무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아이돌 가수들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


자신의 음악 색깔에 맞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창력이 좋다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상관 없다. 모든 음악이 뛰어난 가창력을 필요로 하진 않는다. 과거에 비해서 지금의 아이돌 가수들은 놀라울 정도로 무대를 잘 만들고 가창력이 뛰어난 것과는 별개로 노래를 댄스음악의 스타일에 맞게 잘 부르고 있다. 격한 춤을 춘다고 해서 노래를 부를 때 힘들어하는 기색도 별로 없어 보인다. 엄청난 연습을 한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돌 가수들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아직도 곱지 않아보인다. 얼마 전, 구하라가 2년 전에 Mnet '디렉터즈 컷'에서 불렀던 ‘여자이니까’가 뒤늦게  큰 화제가 되었다. 구하라가 너무 노래를 못 불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구하라의 노래 실력을 비난했고 가수의 자격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구하라에게 굳이 가창력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라 음악 자체가 멤버들에게 뛰어난 가창력을 요구한다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구하라는 충분히 무대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 또한 카라의 깜찍하고 귀여운 이미지에 구하라는 최적화 된 이미지를 가졌다. 더 뭘 바래야 하는건가?   

우리는 그 어린나이에 외모도 출중하고, 노래도 잘하며, 춤까지 잘 추는 사기 캐릭터급 아이돌을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그건 우리의 욕심일 뿐이다. 아이돌 가수에게는 아이돌 가수한테만 느낄 수 있는 매력과 즐거움이 존재한다. 그걸 즐기면 된다. 굳이 아이돌 가수에게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감동까지 달라고 억지 부릴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