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내기도 했던, 정운찬 교수가 MB 정권의 새로운 국무총리로 내정되면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MB 정권의 많은 정책에 반대해 온데다가, 끊임없이 정치권으로부터 러브 콜을 받았지만 평소 ‘학교에 계속 남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해왔던 그였기에 충격의 강도는 크다.


▲ 정운찬 교수 (국무총리 내정자) 프로필, 출처 : 싸이월드 인물정보

이번 총리 내정 건으로 인해 가장 많은 담론이 전개되고 있는 곳은 단연 정운찬 교수를 정치계로 떠나보내게 된 서울대학교이다. 서울대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는 총리 내정 직후였던 3일 이후 이 사안에 관한 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번 총리 내정의 정치적인 의미를 분석한 글이 있는가 하면, 한 학생은 ‘정운찬 교수는 애당초 기회주의자였다’라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 서울대학교 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 정운찬 교수의 총리 내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정운찬 교수의 이번 총리 내정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해 보았을 학생들은 그의 강의를 수강 신청했던 학생들이었다. 정운찬 교수가 열었던 학부 2과목, 대학원 1과목의 강의는 개강 첫 주에 폐강되고 말았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인 안민경(가명)씨는 정운찬 교수가 신입생세미나로 개설했던 ‘경제학과 나’ 강의를 수강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이메일 인터뷰까지 통과해서 해당 과목에 등록할 수 있었다. 2학기 시간표를 짤 때 이 수업을 가장 우선에 놓고 교재까지 구입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첫 수업이 있던 날, 정운찬 교수 대신 강의실에 들어온 조교가 ‘교수님의 총리 내정으로 수업이 폐강되었다’라는 말만 남기고 수업이 사라져버렸다. 유사한 다른 강의에 대한 대책도 없었고, 결국 1학점(게다가 신입생세미나는 1학년 때 단 한 번만 들을 수 있다)을 포기하게 되었다.

“배워 익힌 것,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위치인데 안 행하는 게 오히려 잘못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교수님이 본인의 선한 의지로 총리을 수락하신 것일 테니 비난하기 보다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정부가 교수님을 총리로 지명한 것에 순수하지 않은 의도, 그러니까 정부의 지략적인 부분이 깔려있는 것 같아서 조금 걱정스러워요. 한 마디로 ‘동상이몽’이라고나 할까요?”

그는 대체적으로 ‘일단 지켜봐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번 일로 폴리페서(Polyfessor)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이슈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우리 학교에는 그런 일이 많거든요. 지난 해 법대의 양창수 교수님도 갑자기 대법관으로 가시면서 강의가 폐강된 적이 있다고 해요. 스누라이프에 가보니 경제학부의 어떤 학생은 전공 강의 폐강 때문에 시간표를 모두 갈아엎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학생들과의 약속을 어기게 되는 것도 불만이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와 교수를 겸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정운찬 교수의 경우, 교수직을 사직할 뜻을 밝혔으므로 기존의 폴리페서(Polyfessor) 개념과는 약간 다른 경우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 역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교수의 책임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폴리페서 문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 서울대학교 온라인 수강편람, 정운찬 교수의 강의가 폐강되어 '정운찬'을 검색해도 아무런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

교양과목인 신입생세미나 뿐만 아니라 경제학부 전공과목인 ‘경제학연습 2’ 역시 정운찬 교수의 국무총리직 내정으로 인해 폐강되었다. 첫 시간 강의 후에 갑자기 폐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서울대 경제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윤희철(가명)씨는 “명성이 높은 교수님이라서 많은 학생들이 그의 강의를 수강하고 싶어 했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사실 자신과 경제적 소견이 다른 MB정권에 들어가시는 것이 학자로서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 행동이긴 해요. 하지만 이해받지 못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강의가 폐강되어 학생이 손해를 보게 되는 점이 있지만, 이런 일이 없을 수 없는 건 아니고 이건 대책을 세워주지 않는 학교 행정 측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또한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성적, 객관적이지 않은 사고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커뮤니티에 가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냐’라는 의견을 던지면, 많은 사람들이 ‘니가 경제학부생이라서, 니가 서울대라서 옹호하는 것 아니냐’고 원색적인 비난을 해요. 사람들이 문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켜보았으면 해요. 특히 서울대 학생들은 더욱 말이죠. 본인이 서울대라는 의식에 갇혀 필요 이상으로 비난하거나 옹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서울대학교 정문

그가 총리직을 수락한 것과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일단 주사위는 던져졌다. 서울대 학생, 즉 정운찬 교수의 제자들이 바라는 것은 그가 본래 소신대로 좋은 국정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관심만큼 앞으로도 서울대 학생들, 그리고 국민들이 그를 지켜볼 것이다.